"몇 번 울어야 아들을 만나?"

아들을 공군사관학교 가 입교 훈련에 보내면서

등록 2006.01.22 10:16수정 2006.01.2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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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의 위용을 자랑하는 공군사관학교 정문 ⓒ 박인선

"아이구, 멋지네. 역시 아들은 이 모습이 최고야."
"어디서 깎았어? 단골 이발관? 이발관아저씨 지난번에 합격했냐고 묻던데 너에겐 묻지 않던?"

"물었어요. 합격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뭐래?"
"……"

아들이 단골로 머리를 깎던 이발관 아저씨는 누구는 어느 대학을 가고 누구는 어떻게 되고 하면서 동네 소식통으로 통하는 아저씨입니다. 삼수를 한 아들의 공군사관학교 합격소식도 이발관에서부터 점차 알려집니다.

그러나 아들은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뿐 신나하진 않았습니다. 며칠 간 한의원을 다니면서 운동과다로 인한 테니스엘보(동통성주관절증후군) 때문에 침술치료를 하는 참이라 가입교전까지는 나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아들, 괜찮아?"
"아프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참고 견뎌야지."

"못 견뎌서 쫓겨나면 어떻게 해?"
"삼수해서 들어갔으니 나가라고 하면 내 인생을 책임져야지요."

아들은 앞으로 다가올 가입교의 혹독한 과정이 조금은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운동도 적당히 해 가지고 가야하는데 치료 때문에 하지 못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운동을 테니스엘보 때문에 그만 둬야 했으니 마음의 상처 또한 컸을 듯싶습니다.

아들은 입교날짜가 가까워오자 자신보다 아내의 건강을 더 걱정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건강해야 훈련받는데 만 전념할 텐데. 엄마, 언제 병원 갈 거야?"
"너 가입교하고 나면 갈게. 걱정 말고 네 건강이나 잘 챙겨."

"난 괜찮아. 엄마, MRI인가 통속에 들어가서 검사하는 것 있잖아, 그거 한번 해봐."
"그거 돈 많이 들어."
"나 용돈 받은 것 줄 테니까 그걸로 해. 난, 돈 필요 없잖아요."

아들은 아내가 자꾸 아프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재수할 때까지만 해도 안 그러던 아들이 삼수하면서부터는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용돈도 절약하고 시간도 절약하고 그러다 보니 성적도 비교적 잘 나온 셈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가 입교 전날 엄마 헬스클럽 다니라면서 헬스클럽 회원비용을 용돈에서 꺼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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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습니다 ⓒ 박인선

"엄마, 꼭 운동 잘하고 건강해야 해." 고집쟁이면서 까다로웠던 삼수생 아들은 공군사관학교 합격을 선사하더니 엄마를 이렇게 감동시키고선 가 입교 훈련을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 아빠 내 걱정 마세요."
"나 보다도 네가 안 아파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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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악대가 가입교 생도들을 맞습니다 ⓒ 박인선

1월20일 공군사관학교 정문에선 새로운 신입예비사관생도를 맞이하기 위한 선배사관 생도와 공군 헌병대가 분주히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군사관학교 58기 가 입교를 위한 접수도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아들딸들의 가 입교를 배웅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인문조종인가?"
"네."

"야, 인문조종, 인물이 잘생겼네."
"……"
"아들, 너 잘 생겼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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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습니다 ⓒ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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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부분에 아들이 통제관의 지시를 듣고있습니다 ⓒ 박인선

아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관심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는지 안내관의 칭찬에도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오는 낯가림은 여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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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사관생도들이 도열하여 환영의 박수를 받으면서 가고있는 모습 ⓒ 박인선

잠시 후 안내방송이 있고 아들과 작별의 악수를 나누웠습니다. 공군 군악대의 팡파르 속에 아들은 대열 속에서 가끔씩 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눈빛만으로 작별을 하고 선배 사관생도들이 길게 도열한 사이를 걸어들어 갔습니다.

아들을 나라에 넘긴 허전함이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수많은 가족들도 그렇게 뜨거운 작별을 했을 것입니다. 아직은 철부지 같은 아들의 뒷모습을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던 아내에게도 시린 마음을 어떻게 추슬렀는지 묻기가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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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사용할 내무반 입구에 걸린 명패 ⓒ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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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침대위에 놓인 보급품 ⓒ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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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가족들에게 공개한 아들의 책상위에 놓인 보급품 ⓒ 박인선

아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허전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아들이 공부하고 수련 할 교내 시설을 둘러보았습니다. 잘 정돈 된 캠퍼스와 사관생도를 길러내는 공간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듯했습니다. 아들이 이곳에서 공부한다니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미 배정된 가 입교 생도 내무반에는 보급품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아들의 침대 위에 놓여진 보급품과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보였습니다.

땀이 얼마나 배어야 보라매가 될 것인지, 모든 가족들은 나처럼 아들딸들의 명패를 보면서 힘찬 응원을 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은 이제 나의 아들보다는 나라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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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습니다 ⓒ 박인선

삼수를 하면서 힘든 과정을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언짢아해 하면서 아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적도 참 많았습니다.

"지금 밥 먹을 시간이네."
"어젯밤 잠은 잘 잤을까?"

아내는 혼잣말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접지 못합니다. "몇 번을 울어야 아들을 만나?"냐고 물어 볼 것 같은데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합니다. 이 시간에도 공군사관학교 가 입교 게시판에는 아들딸들을 그리워하면서 성원하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마음들이 강을 이룹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아들아."
"너의 집념은 백만불짜리야."

이렇게 해서 공군사관학교 58기 사관생도는 가 입교라는 5주 동안의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 2월 24일 정식으로 영광스러운 새내기 사관생도로 태어나 입교식을 합니다. 대한민국의 영공을 지키겠다는 야심 찬 포부의 힘찬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희망이 그들을 강철처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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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서 8년, 예술작업공간을 만들고, 버려진폐기물로 작업을하는 철조각가.별것아닌것에서 별것을 찾아보려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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