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안식은 정녕 꿈이런가!

죽어서도 편치않은 월산대군의 삶

등록 2006.01.27 14:36수정 2015.05.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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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바와 같이 월산대군은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친형으로 유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예종 사후 왕위승계 서열 제1순위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세조의 유명이라는 이유를 들어 할머니 정희왕후는 동생인 자을산군을 당일로 즉위케 하니 왕후에 의해 다음 왕이 지명되는 조선왕조 최초의 선례가 된다.

 

강변되는 명분과는 다르게, 특별한 흠결이 없었던 형을 제치고 동생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성종의 장인이었고 당대의 권세가였던 한명회의 수완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이고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산대군은 요절한 아버지(의경세자 추존왕 덕종)를 대신하여 할아버지 세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시가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학문에도 능통했기 때문이다. 왕가의 필수덕목이라고 할 효성 또한 지극했으며 인품 역시 훌륭해 마땅히 보위를 이을 적임자로 여겨지던 터였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왕권에 위협이 되는 형은 반역의 누명을 쓰고 제거되는 것이 권력의 비정한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형도 동생도 자신들이 취해야 할 바를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이를 잘 지켜 나갔다.

 

동생은 형을 위해 덕수궁을 지어 주고 자주 들러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형 또한 모든 것을 잊고 자연과 학문에 심취해 권력에 뜻이 없음을 입증했다. 한강 양화도 북쪽에 있는 희우정을 개축해 망원정이라 이름짓고 시와 문장을 논하며 시름을 잊기도 했다.

 

허나 다정도 병이런가! 어머니 인수대비의 병환을 간호하다 불과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니 죽어서도 동생에게 부담이 된다하여 봉분의 좌향도 파격적으로 북쪽을 향했다 한다.

 

요절한 형에 대한 동생의 정성은 지극했다. 월산대군의 묘에는 이러한 성종의 애틋한 마음이 오롯이 배어 있다. 왕릉에 버금가는 봉분이며 석물들, 시원하게 트인 전망 등은 풍수를 전혀 모르는 이의 눈으로 보아도 가히 일품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대군의 조용한 안식을 시샘이라도 하려는 듯 그 앞을 지나는 국도 39호선에서 나오는 소음이 공명되어 정숙해야 할 묘역은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아예 묘역의 일부를 잘라먹는 새로운 고양-구리간 수도권외곽순환도로가 공사중이다. 길 건너편에 있는 월산대군의 사당과 이곳 묘역은 자동차도로로 인해 완전히 생이별을 한 셈이다.

 

그뿐인가! 고인이 생전에 산수를 벗하며 문인들과 교우하던 망원정 앞으로는 자유로와 연결되는 북부강변로가 지나고 있어 자동차 홍수를 이루고 있다. 양택이었던 덕수궁은 임진왜란 와중에 왕실에 넘어갔으며 이후 외세의 입김에 이리 잘리고 저리 잘려 간신히 궁궐의 명목만을 유지하고 있으니 죽어서까지도 그의 삶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는 셈이다.

 

한 술 더 떠 무덤 속에 있던 그를 뛰쳐나오게 할 정도로 분노케 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카 연산이 자신에게는 큰어머니가 되는 월산대군의 처 승평부부인 박씨를 범해 자결케 한 사건이 그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전한다.

 

"월산대군 이정(月山大君李婷)의 처 승평부부인(昇平府夫人) 박씨가 죽었다. 사람들이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죽었다고 말했다."(○丁酉/月山大君^婷妻昇平府夫人^朴氏卒。 人言見幸於王, 有胎候, 服藥死。)

 

중종실록에는 보다 더 구체적인 대목도 보인다.

 

"항상 대궐 안에서의 연회에 사대부(士大夫)의 아내로서 들어가 참여하는 자는 모두 그 남편의 성명을 써서 옷깃에 붙이게 하고, 미모가 빼어난 이는 녹수를 시켜 머리 단장이 잘 안되었다고 핑계대고 그윽한 방으로 끌어들이게 해서는 곧 간통했는데, 혹 하루를 지난 뒤에 나오기도 하고, 혹은 다시 내명(內命)으로 인견(引見)하여 금중(禁中)에 유숙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월산대군(月山大君) 부인은 세자의 양모라는 핑계로 항상 금내(禁內)에 머물게 하였고, 성종의 후궁 남씨(南氏)도 대비의 이어소(移御所)에 있으면서 자못 총행(寵幸)을 입어 추한 소문이 바깥까지 퍼졌다."

 

(혹자는 연산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 실록이 의도적으로 연산군을 폄하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가 쓰여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고 승평부부인과 연산군과의 나이 차이를 계산해 위 기록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마치 살얼음판과도 같았던 미묘한 처지속에서도 세인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월산대군. 그러나 혼신을 다했던 그의 노력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서 까지도 편안한 안식을 얻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월산대군의 묘는 조선시대 대군묘제의 전형이자 파격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공사 때문인지 고양시의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묘역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공사가 끝나면 부디 제대로 된 안내판을 설치하고 진입로도 정비해 그를 찾아 위로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 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월산대군묘역은 국도 39호선을 따라 의정부쪽으로 약 2㎞ 정도에 있는 일명 '낙타고개'를 지나 지나치기 쉬운 마을길로 접어 들어 공사중인 도로를 통과해 길도 없는 오른쪽 산비탈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2006.01.27 14:36ⓒ 2015 OhmyNews
덧붙이는 글 월산대군묘역은 국도 39호선을 따라 의정부쪽으로 약 2㎞ 정도에 있는 일명 '낙타고개'를 지나 지나치기 쉬운 마을길로 접어 들어 공사중인 도로를 통과해 길도 없는 오른쪽 산비탈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월산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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