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째 기사를 올리면서

오마이뉴스에 남아있는 삶의 기록을 되돌아봤습니다

등록 2006.01.30 14:44수정 2006.01.31 11: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민수
2003년 1월 18일, 시골 농어촌 마을로 이사하고 1년이 되어가던 때였습니다.
그 동안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도시문명에 치여 살다보니 세상소식을 단절하고 살아가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시골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세상소식도 궁금해졌습니다.

신문보급소에 전화를 해보니 아직 제가 원하던 한겨레신문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고 지역신문이 아니라면 조중동 중에서 택하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열 받을 일 있나 싶어 조중동을 보느니 세상소식을 끊고 사는 게 좋을 듯했습니다. TV는 거의 보지 않아서 뉴스시간도 놓칠 때가 많았고, 아이들 심심할까 스카이라이픈가 뭔가를 설치했더니 지금도 혼자서는 TV도 켜지 못합니다.


서울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야, 조금 답답해지기 시작하는데 볼 신문이 없다."
"뭐가 고민이냐? 오마이뉴스가 있는데."
"오마이뉴스?"

이것이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입니다.
찬찬히 들여다보다 눈에 확 들어온 섹션은 <사는 이야기>코너였고 이 정도라면 나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1월 18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첫 기사를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첫 기사는 보기 좋게 생나무를 먹었습니다. 기사를 올려놓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생나무에서 변동이 없더군요. 그 날 '나무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두 번째 기사를 올리면서 첫 번째 정식기사인 메인서브에 등록이 되었고 1890건의 조회수를 올렸습니다. 1890명이라는 숫자, 인터넷과 소통을 별로 하지 않던 나에게는 참 놀라운 숫자였습니다.

첫 기사를 포함한 생나무기사 4건은 이렇습니다.

1. 제주로의 여행-오름과 바다(2003년 1월 18일)
2. 묻고 또 물어도 생소한 질문(2003년 2월 14일)
3. <오마이뉴스>게릴라들께 제안합니다(2003년 2월 27일)
4. 농민만 죽어라 죽어라 하는군요(2004년 9월 11일)


지금 생각해 보면 첫 기사는 여행기사로서의 요건을 갖추질 못했고, 묻고 또 물어도 생소한 질문은 주관적인 사유가 너무 깊었으며, 나머지 기사들은 감정이 너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김민수
오마이뉴스를 통해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꽃에 대한 글을 쓰는 기자'라고들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꽃에 대한 기사를 언제 처음 썼는가 보았더니 2003년 1월 19일 '추운 겨울에 피어나는 수선화'가 시초였고, 자체 연재기사로 128회까지 이어갔던 여행섹션의 '꽃을 찾아 떠난 여행은' 2003년 3월 18일부터 시작되었더군요.


그런데 이 기사를 꾸준하게 연재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을 4회 정도 연재했을 때 어느 출판사로부터 출판제의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한 군데서 들어왔다면 그냥 지나쳤을 터인데 서너 군데서 동시에 출판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 중 한 군데 출판사를 선택을 했는데 결국 출판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꽃을 찾아 떠난 여행(화행)>이라는 제목으로 필름인쇄까지 마치고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의로 인해 책을 낼 수 있다는 기쁨으로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 이름름 석자 박힌 책을 다섯 권이나 내게 되었습니다.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 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이 그것이며 이번 입춘을 맞이하면서 비주얼에세이집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가 나올 예정입니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그간에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을 중심으로 몇 차례 출판제의들이 있었지만 조금씩 내 쪽에서 주도권(?)을 잡고 출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출판제의 뿐만 아니라 방송출연제의도 많았고, 결국 모방송국 생방송 패널로 몇 개월 고정출연까지 하는 통에 매주 화장을 하고 지우느라 애도 먹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시골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맨 처음에도 외도한다고 아내도 걱정하고, 교인들은 취미생활을 넘어서는 것을 보고 걱정을 했고, 어떤 분들은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서 목회나 하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도 목회의 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독교신앙에서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창조물 중 하나인 들꽃을 통해서 명상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은 외도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정도를 가고 있는 것이지요.

꾸준히 기사를 올리는 동안 파급효과로 교회도 알려지고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고, 시골 작은 교회에서 문화행사를 해도 외지에서까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종달교회는 많은 부흥을 이뤘습니다.

저는 <사는이야기>에 주로 글을 쓰면서 맨 처음 송성영 뉴스게릴라에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메인톱에 오른 사는이야기, 그 기자의 이름은 송성영 뉴스게릴라였습니다. 정치기사나 경제기사만 메인톱에 오른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신선한 도전이었던 것이죠. 그래, 나도 사는이야기로 메인톱을 장식해 보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는 이야기로 메인톱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메인톱에 올랐던 기사, 그 중에서 조회수가 많은 기사 5건을 찾아보았습니다.

1위 최병렬 조순형 대표, 여론이 곧 좋아질 거라고요?(조회 7만8504건)
2위 광주학살 정권은 왜 탄핵 안 했나. 그땐 무서웠죠?(조회 4만5059건)
3위 '빨간' 비디오요? 저는 안 봤는데요(조회수 2만3958건)
4위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2만3040건)
5위 김홍도 목사는 자기 생각과 하나님 뜻 구별해야(1만9062건)

주로 정치면이나 사회면 기사가 조회수가 많았고, 2003년 3월 탄핵정국에서 1,2,4위의 조회건수를 올린 메인톱기사를 생산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메인톱에 오르지 않고도 1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도 3건이나 있었습니다.

1. 몰래 찍은 부끄러운 사진들(1만5930회)
2. 땅강아지, 너 몇 년 만이냐?(1만3008회)
3. 아내도 편하고 나도 편한 '윈윈밥상'(1만409회)

조회수가 많아지면 당연 댓글도 많아집니다. 그 중에서는 상처를 주는 댓글도 많아서 어떤 댓글을 보는 순간 다시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어느 시민기자 한 분이 "그 분들도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요. 목사님이 안 받아주면 어떡해요. 불쌍한 사람들, 악플을 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불쌍한 사람들이에요"하시며 위로를 해주셨고 이후 댓글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었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은 128회까지 연재를 했지만 자체연재였고, '텃밭에서 캔 행복한 이야기'도 40여 회 연재했지만 공식적인 연재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자체연재기사였던 '꽃을 찾아 떠난 여행'보다 인기는 적었습니다.

1. 김민수의 <강바람 포토에세이>
2. 김민수의 <내게로 다가온 꽃들>
3. 김민수의 <어른들을 위한 포토동화>

2003년 1월부터 글을 쓰면서 이 달의 뉴스게릴라상을 두 번 받았고, 2004년에는 2월 22일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년 2월에 사는이야기부문 뉴스게릴라상을 받을 예정입니다. 느지막한 나이에 상복이 터진 것이죠.

기사 1000건과 사는이야기부문 뉴스게릴라는 사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서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목표로 세웠던 일이 잘 이루어져서 좋긴 하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현재로서는 등록기사 말고 채택기사 1000건이 되는 시점(앞으로 4꼭지)까지는 이전처럼 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월 22일 이후에는 좀더 정제된 글들과 사진들로 독자들을 만날 계획입니다.

뉴스게릴라상 인터뷰가 나간 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습니다. 얼마나 벌었기에 많이 벌었냐고 하는지 물어오십니다. 원고료와 특별원고료를 합해 지난 3년간 1171만3900원(1월 30일 현재)을 모았습니다. 그간의 수고를 생각해보면 결코 많지 않은 원고료지만 사실 그로 인해 생긴 부수입(?)이 더 많았고, 실질적인 기사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사보, 월간지, 주간지, 일간지 등에서 오마이뉴스를 보고 원고청탁이 들어오고 방송출연 및 인터뷰 등의 제의가 들어왔으며 출판 때마다 인세를 받았습니다. 이런저런 제의를 다 받아들였다가는 정말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이후 글 쓰고 사진 찍는 일을 제외하고는 대외활동을 모두 접겠다고 결정한 이후에 다시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부수입(?)을 올렸으니 기사료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했고 대부분 그렇게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잔액은 30여만 원 정도인데 올해는 눈 딱 감고 기사료를 모아 좋은 사진을 위한 카메라를 장만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혹 제 기사를 보다가 다른기사보기를 가끔씩 눌러봅니다.
그러면 시골생활을 하면 느꼈던 일들, 그때의 느낌들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내 인생의 일기장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나 혼자만의 일기장이 아니라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보는 일기장이었기에 조금은 포장도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가졌으면 하는 희망사항은 사실 나에게 한 말들이었습니다.

1000번째 등록기사, 채택기사 1000건보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 1004번째 기사에 이 글을 쓰려하다 1000번째 등록기사로 그간의 행적을 정리해 봅니다. 새해에는 좀더 깊이 있는 글과 사진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쌍방울 핵심 관계자 "박상용 검사, 이화영 좀 빨리 설득하라더라" [단독] 쌍방울 핵심 관계자 "박상용 검사, 이화영 좀 빨리 설득하라더라"
  2. 2 [단독] 쌍방울 김성태의 자백 "이재명한테 돈 줬다고, 있으면 줬다 하고 싶다" [단독] 쌍방울 김성태의 자백 "이재명한테 돈 줬다고, 있으면 줬다 하고 싶다"
  3. 3 "새벽 3시부터 굴 까도 월 23만원"... 현대판 노예제 의혹 공방 "새벽 3시부터 굴 까도 월 23만원"... 현대판 노예제 의혹 공방
  4. 4 속마음 들킨 트럼프의 다급함...이러다가 미국 무너진다 속마음 들킨 트럼프의 다급함...이러다가 미국 무너진다
  5. 5 '김성태 녹취록' 속 1313호실 검사의 엉뚱한 해명 '김성태 녹취록' 속 1313호실 검사의 엉뚱한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