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6.01.30 16:49수정 2006.01.3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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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 - 명절 전후에 겪게 되는 정신적, 신체적 피로에 대한 스트레스'
설 명절을 전후로 신문, 방송, 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명절증후군의 원인과 실태가 구체적인 수치로 표시되고, 수도 없는 대책이 소개된다. <오마이뉴스>에도 명절증후군을 없앤 모범사례가 기사로 소개되기도 한다. 30대 이상 남녀의 95%가 명절증후군을 한번쯤 겪는다고 하니, 사회 문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제사를 지내는 30대 장손인 나의 경우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이 명절증후군에 대한 언론의 보도 자체가 스트레스다. 안그래도 가족 많은 집안의 맏며느리인 아내에게 명절만 되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데,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죄책감을 강요받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그래서 올해는 명절증후군 이야기가 나와도 아내 앞에서 당당해 질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로 했다. 시장 보는 것부터, 음식 준비 과정, 설거지에 청소까지 아내가 하는 것 이상으로 하기로 했다. 결혼 초기에는 아들이 주방에서 서성거리는 걸 못마땅해 하시던 아버지께서도 최근에는 달라진 요즘 세태에 대해 억지로라도 이해해 주시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콩나물 다듬고, 전 부치고, 떡 썰어내는 게 방안에 들어 앉아 아내에 대한 미안한 감정만 잔뜩 쌓고있는 것 보단 훨씬 편했다. 역시 몸 보단 마음이 편해야 진짜 편한 것이다. 덕분에 한나절씩 걸리던 차례 준비가 반나절 만에 끝났고, 오후에는 온 가족이 동네 찜질방에도 갈 수 있었다.
찜질방에 나란히 누운 아내에게 예년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한마디 했다.
"나도 나름대로 할만큼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까 명절 지내고 나서 혼자 고생한 것처럼 유세 부리지 마. 올해 당신한테는 명절증후군이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나 유세 부리는 게 싫어서 주방에 들어온 거야? 뒤늦게 철든 게 아니고? 어이구, 말이나 안 하면 고맙기나 하지…."
속을 들켜버렸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만 고생시키는 명절에 대한 부담은 덜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다. 설날 차례를 지내고, 손님맞이 할 때도 난 아내의 손발이 되어 움직였다. 이번 설을 계기로 나와 아내의 명절증후군이 함께 사라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연휴가 짧아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급히 올라와야 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아내에게 "이번에는 고생 덜 했지? 내가 도와주니까 훨씬 낫지?"라며 아내의 동의를 구했다. 아내는 "언제까지 그렇게 하는 지 봐야지"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는 내 '노고'를 인정해주는 듯했다.
서울에서 기차를 내려 다시 부천의 집에 도착한 시각이 밤 2시였다. 난 집을 떠나면 화장실에 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사흘동안 참았던 볼일을 보느라 신문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개운한 마음으로 볼일을 보고, 샤워까지 싹 하고 나왔는데, 아내는 그때까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용변과 함께 명절증후군을 떠내려 보내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닦여서 재우고, 고향에서 싸준 음식들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가지고 갔던 짐 정리하고, 빨래감을 골라내고 있었다. 내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 다 마친 이후에도 아내는 방을 닦고, 다음 날 먹을 보리차를 끓인 이후에야 옷을 갈아입고 씻을 수 있었다.
나는 집에 도착한 순간 명절이 끝났지만, 아내의 명절은 나보다 좀 더 길었던 것이다. 아내가 씻을 동안 난 멍하니 설날 특집 영화를 보고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내가 졌다.
명절이 되면 난 아내를 돕는 데 그치지만, 아내는 스스로 원더우먼으로 변신을 한다. 나 스스로가 슈퍼맨이 되어 명절로부터 아내를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말 그대로 즐거운 명절이 될 때까지 스트레스 좀 더 받아야 할까 보다.
언론들이여, 명절증후군에 대한 보도 좀 더 해 주시라. 명절증후군이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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