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6.01.30 19:56수정 2006.01.31 16:0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밤새 어둠과 추위를 견디고 항구로 돌아 온 배들은 이제 다시 나갈 시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양지혜
동이 틀 무렵부터 한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들어오는 배들의 집어등이 환하게 항구를 밝히기 시작합니다. 시끌벅적한 경매장의 종소리와 흥정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귀항한 한 배들은 퍼덕이는 물고기들을 바닥에 연신 쏟아댔습니다.
이때쯤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먼 바다에서 얼음 속에 묻혀 온 것들과 가까운 바다에서 잡힌 활어들이 나눠지기 시작했습니다.

▲공판장 앞에는 순식간에 난장이 벌어졌습니다. 양지혜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고무바지를 입고 땀을 닦으며 생선을 나르고 가다듬는 사람들과 오가는 관광객을 불러 세우는 경매장이들의 화려한 손짓과 방울소리가 점점 힘을 보태기 시작하면 하루 동안 팔 횟감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장을 보러 나온 소상인들이 어판장 속으로 들어섭니다. 어판장은 사람과 물고기가 뒤섞여 버리고 항구는 끓어오르는 삶의 생명력으로 출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비닐 맨바닥이지만 자신이 살았던 기운을 그대로 담고 아직은 바다속인양 숨쉬고 있습니다. 양지혜
이렇게 항구의 아침은 여느 곳보다 빠르게 시작됩니다. 특히 주문진항은 어업전진 기지로 처음부터 항구가 먼저 개발이 되었고 다양하고 풍족한 어장이 형성되어 70년대엔 명태가 항구에 쌓일 만큼 잡혔다고 합니다. 또 광어와 오징어, 고등어 등을 비롯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명한 도루묵과 양미리도 나온다고 했습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어종이 거래 되는 곳이라 그런지 주문진항은 더욱 활기찼습니다. 좋은 가격을 기대하는 어부들의 기대에 찬 눈빛과 적정한 가격을 매도하는 경매가 진행되자 추위는 이미 사라져 버린 듯했습니다. 그런 어판장의 모습이 신기한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경매물들을 기웃거리거나 물고기 구경을 위해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열에 갈매기도 합세해 떨어진 물고기 부스러기를 찾아 연신 오르내렸습니다.

▲팔리다 만 물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양지혜
그때부터 입니다. 아낙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식간에 좌판을 펼쳐습니다. 간이 물동이와 생선상자를 엎어 만든 좌판으로 이뤄진 즉석 상점은 또 다른 아침 항구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항구의 참 맛을 찾아 나섰던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좁은 좌판사이를 오갔습니다. 왁자지껄함 속에 좌판 아낙네와의 흥정소리가 섞이고, 일찌감치 배를 채운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까지 보태어져 주문진 항의 또 다른 힘찬 하루가 절정을 향해 치달았습니다. 물고기와 사람, 배와 소리, 동해의 아침햇살과 갈매기가 주문진 항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물을 손질하며 다음 출항에서의 만선을 꿈꾸어 봅니다. 양지혜
그렇게 잠시의 북적거림과 한바탕의 난장이 끝났습니다. 한 무리의 인파가 지나간 자리는 금세 한산함이 보이더니 이내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작 했습니다. 정박한 선박들마다 다음의 출항을 위한 어구들과 그물들로 잠시전의 물고기 천지였던 곳을 채워내기 시작 했습니다. 배에서 내려진 색색의 그물들이 펼쳐지면서 어부들은 익숙하지만 바쁜 손놀림으로 다시 시작될 출항을 준비를 했습니다. 만선을 향한 바람을 묶고 엮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촘촘한 그물로 동해바다의 환한 햇살이 제일 먼저 걸려들었습니다.

▲첫 만남과 달라진 모습으로 이젠 무더기로 쌓인채 자신을 찾아 줄 손길을 기다립니다. 양지혜
하지만 좌판 어물전의 흥청거림이 끝난 허전한 자리에는 미처 팔리지 않은 물고기들을 손질하여 염장을 하는 빨간 고무장갑과 날선 칼날위로 '반짝' 투명한 햇빛이 한줌 올랐습니다. 달려드는 추위를 막을 방패물 하나 없이 오로지 겹겹이 둘러맨 목도리와 두꺼운 옷만으로 생선을 씻고 매만지는 그 손길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고단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의 깊은 주름살진 얼굴위로 유일한 온기를 던지는 따사로운 아침햇살은 이제야 주문진항의 조용한 일상이 돌아왔음을 알려주며 바닷바람의 한기를 덜어 주었습니다.

▲북새통을 이루며 추위를 녹였던 커피 행상 리어카도 휴식을 취합니다 양지혜
오가는 사람들이 뜸해지면서 아낙네들의 손에서 깨끗이 손질이 되어진 물고기들은 소금까지 덮어쓴 채 수북하게 포개어져 자신들을 거둬 줄 마지막 손길을 위한 기다림을 시작했습니다. 간간히 한 뭉치의 물고기들은 좌판도 아닌 맨바닥에서 팔려가고 있었습니다. 구석진 선창 모퉁이에서는 새벽부터 정신없이 커피의 온기를 찾아대던 사람들 대신 커피 행상 아주머니가 한 숨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어울리지 않은 곶감 서너줄과 얼은 홍시 몇개를 들고 이 추운 겨울선창을 찾은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양지혜
이제 해는 하늘위에서 제자리를 잡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항구를 채웠던 사람과 물고기, 갈매기가 넘실대며 함께 했던 길 위에는 짙은 비린내와 주인 잃은 물고기 비늘만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튼실하게 살이 오른 갈매기가 사람들의 오가는 발길에도 무감각하게 좌판이 걷어진 자리의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주문진이 고향인 지인이 곁에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 곳 갈매기들은 모두 비둔하게 살이 쪄서 닭 같아요." 후후. 그러고 보니 정말 갈매기들은 모두가 닭처럼 커다랗게 살이 올라 뒤뚱거렸습니다. 갈매기들은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을 지탱하던 사람들의 애달픔과 고단함을 모르는 듯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던 갈매기들도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양지혜
도심의 막막한 삶에 허덕이거나 개인의 무거워진 마음을 털어 버리고자 항구의 치열한 삶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은 주문진항의 이른 아침 속에서 다시 싱싱한 기운을 느꼈을 것입니다. 동해 바다의 높디높은 거센 물결과 얼음 같은 냉기 가득한 새벽의 선창은 주문진 항을 찾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기운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부디 올 한해, 이른 새벽 주문진항의 퍼덕거렸던 물고기들의 치열함처럼 삶의 열정을 고스란히 지닌 채 하루하루 이어지는 일상의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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