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의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아빠

등록 2006.01.31 08:59수정 2006.01.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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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의 아기는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는 있다고 합니다. 제 친한 후배는 딸이 뱃속에 있을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자주 불러줬기 때문인지 유달리 그 노래를 잘 따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아는 뱃속에서 들은 아빠의 소리를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믿고 싶은 것은 세상 모든 예비 아빠들의 한결같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 노래를 불러주기보다는 책을 읽어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 둘이 있는 집에서 뱃속의 아기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해 보았는데 노래를 부른다면 최대한 감정을 실어서 불러야 하는데, 웃지 않고 부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노래 부르다가 웃으면 태교가 아닌 코미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 태교를 위해서 책을 매일 읽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 집에 없기 때문에 집에 있는 책 중에서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읽어줄 책을 찾다가 선택한 책이 시집과 톨스토이 단편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집이 좋을 것 같아서 읽어주기 시작했는데, 운율상으로 읽기에는 좋았지만 내용상으로 상징과 은유가 많아서 뱃속의 아기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시집을 포기하고, 톨스토이 단편집을 꺼내서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단편집이라고 해도 분량이 많아서 한참을 읽어주다 보니 입이 엄청 아팠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집중을 하고 듣더니, 나중에는 너무 내용이 길어서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아내가 이 정도인데 뱃속의 아기는 오죽할까). 결국 내용이 너무 길어서 뱃속의 아기가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아 톨스토이 단편집도 포기했습니다.

뱃속의 아기를 위한 책으로는 짧고 간결한 동화책이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동화책을 쉽게 마련해서 뱃속의 아기에게 읽어줄까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 조카였습니다. 조카가 동화책을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카에게 부탁해서 동화책을 무상으로 빌리기로 했습니다.

집이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조카는 새로 태어나는 '행복이'(태명)를 위해서 기꺼이 동화책을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대여기간을 잘 지켜야 하며, 만약 대여기간을 어길시에는 '2주 동안 대여금지'라는 가혹한 제재가 가해집니다(그리고 동화책을 빌리기 위해서 조카네 집에 갈 때마다 조카가 즐겨하는 보드게임을 해야 합니다).

조카의 책 대여 장부
▲조카의 책 대여 장부 이인배
조카는 특별히 책을 빌려주다가 발생할 사태(나중에 중복으로 빌려주는 사태, 혹은 책을 떼어먹히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공책에다가 '행복이네 빌려준 책'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책을 읽어준다면 일주일에 여섯 권은 너끈하게 소화할 것으로 생각해서 한꺼번에 여섯 권씩 빌리기로 했습니다.


동화책 여섯권을 빌렸습니다
▲동화책 여섯권을 빌렸습니다 이인배
첫째날은 <요모와 조모>라는 동화책을 읽어주기로 했습니다. 누워있는 아내의 배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동화책을 읽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게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선택한 동화책이 꽤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빌린 책 중에서 <요모와 조모>만한 동화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동화책 [요모와 조모]
▲동화책 [요모와 조모] 이인배
열심히 동화책을 읽는데, 너무 국어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아내한테 한소리 들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실어서 읽어야 하는데, 너무 딱딱하다는 평을 들은 것입니다. 여러가지 성대모사를 해가면서 읽어야 뱃속의 아기가 재미있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을 모르고 읽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실수도 있습니다.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읽었는데, 뒷장으로 넘어갔을 때 남자임을 발견하고 수습하는데 고생을 한 적도 있습니다.

"여자 목소리를 내면서 읽었잖아… 근데 남자야?"
"응… 남자였네…."
"뱃속의 행복이가 헷갈리겠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발견한 것은 동화책의 내용에서 비슷한 문장이 여러번 반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아이를 키워본 큰 누나의 생각에는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들으면서 반복되는 짧은 문장을 따라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네요.

구정 연휴가 되어서 바쁘다는 핑계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거의 일주일 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새해가 되면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좀 더 많이 동화책을 읽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카에게 빌린 동화책 다 읽어주지 못했는데 대여기간이 거의 다 끝나갑니다. 대여기간 연장을 신청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조카에게 빌린 동화책 다 읽어주지 못했는데 대여기간이 거의 다 끝나갑니다. 대여기간 연장을 신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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