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를 안고서도 즐거웠던 우리 가족의 설

등록 2006.01.31 08:22수정 2006.01.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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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 전날 오후에 우리 가족은 넓은 거실에 둘러앉아 만두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런 일은 가족 모두에게 명절 분위기를 실감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명절을 잘 쇠려면 어느 정도 노고를 해야 하고, 그 노고의 일정 부분을 가족 모두 나누어야 한다는 '산 교육'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 설 전날의 우리 집 거실 풍경. 새 집 넓은 거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만두 빚는 일을 하는데, ‘빈자리’가 확연하다.
▲올해 설 전날의 우리 집 거실 풍경. 새 집 넓은 거실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만두 빚는 일을 하는데, ‘빈자리’가 확연하다. 지요하
우리 가족은 그 일을 하면서 지난해 가을 한가위 때의 풍경을 얘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추석은 우리가 20년을 살아온 옛집에서 마지막으로 지낸 명절이었다. 그 집의 좁은 거실에서 또 한 번 온 가족이 송편 빚는 일을 했다. 그 일에는 당연히 가운데 제수씨도 함께 했다.

그런데 올해 설 명절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만두 빚는 행사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그 빈자리를 의식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표정들이 대체로 밝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빈자리를 더욱 의식하게 되더라도, 그래서 한결같이 밝은 표정은 짓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했다. 또 그것이 우리 가족의 정직한 모습일 터였다.

지난해 추석 전날 우리 집 거실 풍경. 가족 모두 좁은 거실에 둘러앉아 송편 빚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추석 전날 우리 집 거실 풍경. 가족 모두 좁은 거실에 둘러앉아 송편 빚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요하
설날 아침에 우리 가족은 거실의 책장 쪽에 병풍을 치고 차례상을 차렸다. 병풍은 내 아내가 20년 전 시집 올 때 혼수로 가져온 물건이었다. 여고 시절에 손수 수를 놓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처음 몇 해만 선친 제사 때 사용을 하고, 집의 좁은 사정과 관련하여 오래 농 위에 얹어져 보관되기만 했던 물건이었다.

나는 10여 전에는 명절 때마다 큰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다녔다. 그러다가 내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사촌 형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별도로 선친 차례를 지내게 되었다. 올해는 차례상을 두 개 차렸다. 선친 차례상과 제수씨 차례상이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차례상에는 시아버님과 둘째 며느리, 두 영정이 놓여졌다. 지난해 한가위 차례를 지낼 때, 다음해 설 차례에는 두 개의 차례상을 차리게 될 줄을 누군들 상상이나 했을까.

곱게 설빔을 차려입고 두 차례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촌 남매들
▲곱게 설빔을 차려입고 두 차례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촌 남매들 지요하
두 개의 차례상을 차려놓고 먼저 선친께 제례를 올렸다. 그런 다음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제수씨 차례상 앞에서 제례를 올리게 했다. 나는 지난해까지 우리 집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제례를 올리곤 했다. 3형제가 가족 별로 차례로 술잔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가장이 술잔을 들고, 아내가 술을 따르고, 두 아이가 잔을 받아서 상에다 놓아드리는 방식은 가족 모두를 제례 행위에 참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한 몫을 하니, 가족 모두 좋아했다.


규왕이 들고 있는 잔에 사촌 형이 술을 따르고...
▲규왕이 들고 있는 잔에 사촌 형이 술을 따르고... 지요하
그러나 올해는 방식을 달리해야 했다. 그런 방식은 가운데 동생 가족의 빈자리를 더욱 확연하게 만들 우려가 있었다. 사촌 형제 아이들로 하여금 술을 따르고 술잔을 받아 인계하여 상에 놓는 일을 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 다음 우리 3형제는 차례로 선친 차례상에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 함께 합배를 했다. 제수씨 차례상에는 두 아이, 규왕이와 규빈이에게 차례로 잔을 올리게 한 다음 모든 아이들로 하여금 절을 하게 했다.

오빠에게서 술잔을 받아 엄마 차례상에 올리는 규빈이
▲오빠에게서 술잔을 받아 엄마 차례상에 올리는 규빈이 지요하
차례를 지낸 다음 우리 가족은 9시쯤 음복을 했다. 아버님께 올렸던 술을 3형제가 나누어 마시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친 다음에는 여자들도 옷을 갈아입고 곧 이어 세배 행사를 가졌다.


지난해는 3형제 가족이 차례로 어머니께 세배를 했는데, 올해는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함께 어머니께 절을 올렸다. 그리고 3형제 부부가 차례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 아이들의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었다.

옆에 빈자리를 놓아둔 채 혼자 앉아서 아이들의 세배를 받는 가운데 동생의 모습이 쓸쓸하고 어색하였지만, 그렇다고 동생은 세뱃돈에 인색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후하게 주며 즐거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엄마의 차례상에 절을 올리는 아이들
▲엄마의 차례상에 절을 올리는 아이들 지요하
예년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의 세배 행사에는 두 명 생질 형제도 참여했는데, 우리 3형제의 세뱃돈 지출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었다. 큰 생질이 지난해부터 건실한 직장을 갖게 되어서 그에게는 세뱃돈을 조금만 줄 수 있게 된 덕이었다. 내가 그에게 천원짜리 한 장을 주니 모든 가족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가 천원만 더 달라고 해서 더욱 웃음이 넘쳤다.

혼자 앉은 삼촌에게 세배를 하는 큰집 아이들
▲혼자 앉은 삼촌에게 세배를 하는 큰집 아이들 지요하


<2>

어머니와 나는 올 설에 한복을 입지 않기로 했다.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은 좀 더 신선하고 즐거운 기분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화려함으로도 통할 수 있다. 올 설에는 화려한 복색을 자제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한복을 입혔다. 특히 규왕이와 규빈이에게는 올해 새로 구입한 한복으로 단장을 해주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설빔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 아이들에게서 행여 엄마 없는 표가 나지 않을까 염려를 하기도 했다.

작은 엄마에게서 세뱃돈을 받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규왕이
▲작은 엄마에게서 세뱃돈을 받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규왕이 지요하
어머니와 우리 3형제 가족은 모두 성당에 가서 11시 '설날합동위령미사'에 참례했다.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새 성전 안이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각 가정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진설하는 제대 앞의 임시 음식상에는 역시 예년처럼 우럭포를 올렸다.

신부님 다음으로, 각 가족 별로 차례로 나와서 가족 대표가 분향을 한 다음 모든 가족이 세상 떠난 이들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모셔진 제대를 향해 절을 하는 예절을 할 때도 우리 가족이 맨 먼저 했다.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새 성전에서 ‘설 합동위령미사’를 지내며 제대 앞에 진설한 음식상 앞에서 분향을 하는 신부님
▲아직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새 성전에서 ‘설 합동위령미사’를 지내며 제대 앞에 진설한 음식상 앞에서 분향을 하는 신부님 지요하
미사 후 사제관으로 들어가서 신부님께 세배를 드리는 행사에도 우리 가족이 맨 먼저, 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 사제관으로 들어갈 때 아들녀석이 물었다.

"신부님보다 나이가 많으신 아빠와 엄마가 왜 신부님께 세배를 해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것이 우리 천주교의 멋진 모습이고, 그게 다 하느님 신앙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다."

제대 앞에 진설했던 음식을 모두 강당으로 옮겨놓고 많은 신자들이 함께 음복을 할 때 신부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명절 때 보면 막시모 형제님 가족이 제일 푸짐한 것 같아요."

신부님의 그 말씀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록 가족 한 명이 줄었지만, 그 빈자리가 확연하면 확연할수록 그 빈자리의 임자도 우리 가족 사이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슬픔이기보다는 기쁨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신부님 다음으로 우리 가족이 맨 먼저 분향을 하고, 모든 조상님들과 먼저 세상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예를 올렸다.
▲신부님 다음으로 우리 가족이 맨 먼저 분향을 하고, 모든 조상님들과 먼저 세상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예를 올렸다. 지요하
우리 가족은 마지막으로 성묘 행사를 가졌다. 일단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예년처럼 내 승합차 한 대로 함께 이동을 했다. 먼저 근흥면 두야리 효열정문(孝烈旌門)을 들르고 선산의 조상님들 묘소를 찾은 다음 태안읍 남산리 천주교 공원묘지로 갔다.

먼저 아버님 묘소에서 기도를 하고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리고 제수씨의 묘소로 이동했다. 제수씨 묘소 앞에서 기도를 하고, 규왕 규빈 남매로 하여금 술잔을 올리게 하고, 모든 아이들로 하여금 함께 절을 하게 했다. 아이들과는 달리 동생은 또 눈물을 지었다. 어쩌면 동생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그리움의 눈물일지도 몰랐다.

제수씨 묘소를 떠나오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엄마에게 인사를 하게 했다. 규왕이는 "엄마,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했고, 규빈이는 "엄마, 또 올 게요"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13년 전에 네 살 나이로 세상을 뜬 동생의 첫 아이 한솔이의 묘에 들러 아이들로 하여금 절을 하게 한 다음 성묘 행사를 모두 마쳤다. 집에 와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3시쯤 대전의 막내동생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렇게 또 한 해의 설 명절 행사는 잘 마무리 되었다.

설을 잘 쇠었지만, 또 설을 잘 쇠면서 하느님께 많은 기원을 드렸지만 올 한 해를 사는 동안 또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로 와서 안겨질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그렇게 살 뿐이다. 오직 어떤 바람과 희망을 안고, 그 바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갈 따름이다.

미래의 일을 전혀 모르는 그 한계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시간에 떠밀리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전 존재를 절대자에게 의탁하고 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일도 절대자의 뜻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저 영원의 세계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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