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힘’이라는 말이 있다. 원전을 억지스럽게 번역하는 것을 두고 하는 농 같은 비판이다. 어떤 경우에 이런 일이 생길까? 번역자도 모르는 사이 원작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번역자의 입맛에 맞춰 번역을 할 때 주로 생긴다. 때문에 철학책 같이 개념 하나하나의 의미가 중요한 것들은 공부해서라도 원전을 보라고 말한다. 함부로 번역본에 도움을 얻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론을 체계화해 그 분야의 탁월한 고전으로 뽑히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도 비슷한 소리를 듣는다. 완역도 아닌, 번역에 번역을 거친 까닭에 번역본 자체가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 친숙하다는 영어나 일본어도 아닌 독일어 원전을 어찌 쉽게 접할 수 있을까. 아쉬운 대로 말 많고 탈 많은 번역본들을 비교해 보는 것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만수의 번역본 덕분에 이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처음으로 <전쟁론> 초판 1권을 완역했기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등장하는 번역의 오류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번역자의 말마따나 <전쟁론> 완역이 나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국내에 원전이 나온 지 173년, 한글판 번역이 나온 지 33년 만에 일이다.
<전쟁론> 같은 유명한 고전의 완역이 등장하는데 이렇게까지 시일이 걸렸다는 건 다소 의외다. 허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1832년에 출간된 만큼 독일어가 현대의 것도 아닐 뿐더러 웬만한 군사용어를 알지 않고서는 다루기 힘들다. 더군다나 클라우제비츠 스스로가 탈고를 하지 못한 채 사망하다보니 내용의 난해함은 더욱 심하다. 때문에 어려움이 뻔히 보이는 완역보다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을 게다.
그렇다면 <전쟁론> 완역본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 먼저 <전쟁론> 자체를 보자. 보지 않아도 귀가 닳도록 들어 친숙한 책들이 있는데 <전쟁론>도 그렇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언급한 전쟁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공격, 방어, 전쟁이론, 전투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광범위하면서도 세밀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
<전쟁론>이 등장하던 시기는 '양'을 우선시하던 때였다. 백 명과 이백 명이 싸우면 이백 명이 이긴다는 단순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는 승패를 좌우하는 것으로 정신력을 높게 뽑았다. 요즘이야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또한 이론에 지나치게 기대던 전략가들을 비판하면서 이론은 이론으로, 실전은 실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계적이 준비를 꿈꿨다는 것도 <전쟁론>이 명성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됐고 이후 오랫동안 주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전쟁론>의 완역본은 원전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는 것과 난해한 문장에 곁들어진 풍부한 해설이 강점이다. 완역본은 중간 중간 기존의 번역본의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잘못 알려진 의미를 제대로 고쳐 잡는다. 더불어 번역본들이 왜 실수를 했는지를 나름대로 추측해보는데 이러한 대목들은 완역본의 등장을 반갑게 한다. 비록 이 완역본이 원전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과거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는 걸 목격하니 반가울 수밖에.
하지만 완역본이 진정으로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역시 ‘해설’에 있다. 난해한 문장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전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해석한 뒤에, 따로 해설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구성됐는데 덕분에 원전과 번역자의 말을 헷갈려할 염려가 없고 난해한 의미들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전쟁론>에 대한 번역자의 대단한 칭찬들도 그것이 번역자의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맺고 끊음이 분명하니 완역본은 <전쟁론>의 참맛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기회가 된다.
물론 완역도 번역이고 번역에서 생기는 오류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훗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전쟁론> 완역본의 등장은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번역자의 말을 귀 기울이며 기존에 등장한 <전쟁론> 번역본을 떠올려보자. 번역자가 다른데 내용이 대부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심지어 출판사가 다른데 쪽수까지 똑같은 경우도 있다. 복사품들이 판을 친 셈이다.
더군다나 번역자의 말마따나 ‘문학적인’ 번역, ‘번역인지 창작인지 분간이 안 되는’ 번역들도 많았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번역하는 초역도 많았다. 그렇기에 완역본에 대해 높은 기대를 품는 건 당연한 것일 테다.
중역과 한 번의 번역 중 어느 것이 더 원전에 가까운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뻔하다. 그 답에 기대어 이제 <전쟁론>을 만나보도록 하자.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전쟁을 파헤친 그 세계의 꼭대기에는 남다른 즐거움이 충분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음식의 종말
토마스 F. 폴릭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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