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왜 안 쓰냐고? 감독에게 물어봐"

[인터뷰] <콘트라베이스>로 무대에 서는 명계남

등록 2006.01.31 15:03수정 2006.01.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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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가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맨 뒤에서 묵묵히 묵은 소릴 내며 '찌그러져 있는' 커다란 악기다. 독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않는다. 그저 커다란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소릴 담당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네 소시민과 같다. 묵묵히 일을 하고 묵묵히 애를 낳고, 묵묵히 일하고 나이들고 죽는다. 아무도 꼴찌를 기억하지 않는다지만, 도리어 기억되지 않는 건 꼴찌가 아니라 '보통'이다. 튀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인생만큼 쓸쓸한 게 있을까? 하지만 그게 우리네 삶이다. 또 콘트라베이스란 악기다. <향수>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콘트라베이스>가 그렇다.


명계남은 연극 무대를 떠났다가 1995년 이 <콘트라베이스>로 무대로 돌아온 적이 있다. 그 때 명계남이 온 몸으로 연기하는 묵직한 울림은 사람들 가슴 속으로 퍼지고 또 퍼졌댔다.

그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그가 또다시 돌아왔다. 오는 2월 7일부터 3월 5일까지 <콘트라베이스>를 안고 대학로 우리극장 무대에 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손님은 왕이다>를 하면서 영화의 주제·내용을 감독이랑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다시 떠올렸다. 영화의 주인공도 보통의 3류 단역배우이고, 연극도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 주자 이야기다."

그가 또 말했다. "자기랑 너무 먼, 도대체 교통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과 사랑을 한 자락 깔면서 한다."

묵묵히 스러지는 보통 사람의 쓸쓸함, 콘트라베이스


연극 <콘트라베이스>로 무대에 돌아온 배우 명계남.
▲연극 <콘트라베이스>로 무대에 돌아온 배우 명계남. 공연기획 이다
그가 연극무대에 선 건 <늘근 도둑 이야기> 이후 3년 만이다. "오랜만이다"라고 했더니, 그가 되물었다. "3년 밖에 안 됐는데, 뭐가 오랜만이냐"

- 3년 만에 연극무대에 서는 느낌이? 연극 무대는 다 젊은 친구들이 하잖나?"
"잘 해야지 하면서 조심스럽고 그렇다. 느낌이 뭐 특별한 건 없다."


- 10년 전에도 <콘트라베이스>를 했다. 지금 <콘트라베이스>가 10년 전이랑 똑같나?
"연극은 매 작품마다 새 거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똑같겠나? 텍스트는 같으나 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도 좀 변했고, 관객들도 다르다. 연극의 3요소에 관객도 포함하는 거니까. 작품 자체가 달라지고 그런 건 없다. 내가 예전에 받아들이지 못했거나 놓쳤던 것이 생각날 수도 있고 그런 건 있을 거지만."

- 그런 게… 어떤 게 있나?
"어떤 게 있다기보다 . 내가 다른 사람이잖나. 10년 전 사람보다 자랐다. 세상에 대한 얘길 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다르겠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얘기하냐? 10년 전이랑 어떻게 같냐? 다르다. 같은 작품 아니다. 오늘 공연하고 내일 공연도 다르다."

- 옛날에는 '배우 명계남'이었다면, 최근엔 정치 이미지가 강해서, 노사모가 먼저 떠오른다. 부담감은 없나?
"내가 부담감 느낀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안 느낀다고 무슨 차이가 있나? 그들 문제지. 그게 무슨 차이가 있나? 어떻게 해야 되나? 그걸? 질문 다시 한 번 해 봐라. 그게 무슨 얘기냐?"

- 예전엔 그저 연극 한 번 봐야겠다고 왔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그러지 않겠나? 괜찮나?
"사람들이란 게 실체가 있냐? 확인이 되나? 아니잖아. '그건 그럴지도 몰라' 이런 건데, 내가 그런 것에 관계해서 얘기할 순 없다.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하면 됐지. 연극에서 명계남이 뭘 하는 게 아니다.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그 배우가 그 역할을 잘 수용하느냐 안 하느냐가 이 연극에서 중요하지, 그 배우가 전력이 어떤 이미지를 보였느냐, 그건 크게 중요하진 않을 거다.

그런 건 있을 거다. 예전보다 저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을 거란 생각은 든다. 손님이 적게 올 거란 생각은 든다."

- 영화 <손님은 왕이다>가 2월에 개봉한다. '협박 느와르'라고 하더라. 거기서 김양길 역을 맡았다. 착하다고 보기엔 어려운 배역같다
"아니다. 보면 다를 거다."

- 어떤 배역인가?
"보면 다를 거다."

- 김양길은 어떤 사람인가?
"그냥 보통 사람이다. 보통 사람인데 어떤 사건이 있는 거다. 마케팅상 '협박 느와르'라고 하나, 그건 표현상의 얘기고 그렇게 나쁜 역이 아니다. 협박을 하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연기를 한다. 영화 속 김양길 직업이 배우다. 3류 단역배우가 어떤 사건에 휘말린 얘기다. 이 연극이랑 유사한 코드가 있다."

"박찬욱이 응원한 사람은 안 됐고, 내가 응원한 사람은 대통령 됐을 뿐"

- 최근엔 영화나 TV에서 잘 안 보인다
"고르지 않으니까. 들어오는 역이 없으니까."

- 혹시 최근 정치 활동 때문인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와 안 나오는 영화로 나뉜다고 할 정도였다. 드라마도 했다. 그런데 최근 팍 줄었다.
"그건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들한테 물어봐야지. 한 번 물어봐라. 날 대체할 배우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 건지, 어떻게 잣대를 들이대기가 어렵다. '왜 저 배우를 쓰다가 지금은 안 쓰냐' 이런 질문과 답이 가능한가? 난 질문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그는 왜 그처럼 주목을 받았을까? 그는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게 말했다.

"나는 박찬욱씨나 문소리씨처럼 어느 당의 당원이다. 그 분들이 응원했던 사람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고 내가 응원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을 뿐이다. 그 차이지, 뭐. 그래서 주목을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오면, 누구든 내가 지원하거나 도와주는 게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

이스트 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명계남씨.
▲이스트 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명계남씨. 오마이뉴스 조은미
그래도 궁금했다. 그가 최근 안 보이는 건, 정말 그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가? 그가 특유의 표정과 빠른 톤으로 말했다.

"내가 요새 '나 왜 안 쓰지? 나 좀 써봐' 이런 얘길 하기도 하지만 '아이, 뭐 형님 바쁘시잖아요' 이런 후배도 있긴 있다.

TV 오락프로그램에선 왜 안 찾는가 했더니, 엔터테이너의 기능을 상실한 점이 있다. 정치 소용돌이 와중에 잘 드러나서 무색무취하게 보이지 않으니까. 엔터테이너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뭐 오락프로에 나나 문성근이 나와 봐라. 사람들이 재밌게 보겠나? 그렇다고 내가 안 나간다고 한 적은 없다. 안 불렀을 뿐이지.

배우 역할이 택시기사랑 비슷하다. 창신동을 갈지 영등포를 갈지 택시기사가 결정하나? 손님이 결정하지. 내가 배우로서 살기도 하지만, 또 영화제작자로서 법인체의 대표다. 그 부담도 상당히 크다. 어쩌면 더 깊이 있는 영화나 무슨 영화 요청이 들어와도 못하게 들어갈 상황에 있다."

"배우는 좋아하는 게 많아야 한다, 실패도 많아야 한다"

- 배우로서 명계남은 어떤 사람이라고 보나?
"글쎄, 배우는 어떤 틀을 갖는 게 오히려 장애가 아닌가. '난 어떤 배우야' 그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 개인 명계남은 어떤가?
"그게 어떻게 한두 마디로 되나? 사람들이 다 복합적인데. '나는 이런 사람이예요.' 이게 우습잖나. 인터뷰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내는 거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내가 암만 그렇게 얘기해도 써주지도 않대, 어이구 참나. (웃음) 다들 뭐 자기가 보는 식대로 쓰던데, 뭐. 그렇게 해서 내 이미지가 이렇게 된 거 아닌가? 내가 정치한다고, 직업정치인 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다 그렇게 그렇게 해서 만들어서 간 게 아닌가?"

그의 손에선 몇 개째인지 모를 담배가 타고 있었다. 인터뷰 장소인 '이스트필름' 사무실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또 정치 이야기로 갔다"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그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고 있잖아?"

그가 냉소적으로 말하며 담배를 눌러 껐다. "난 이럴 줄 알았다. <오마이뉴스>는 더군다나."

오마이뉴스 조은미
- 연극 얘기를 좀 하자.
"(기자가) 물어봐야 (얘기를) 하지."

- 악기는 다루나?
"못 한다. 이 연극 때문에 연극에 필요한 만큼만 배워서 한다. 전에도 그랬고."

- 그런 얘길 들었다. 손숙씨가 '배우는 항상 가슴이 촉촉해야 한다,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박정자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면서. 당신은 생각하기엔 어떤가?
"후배들한테 그런 얘길 한다. 배우는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많아야 한다. 세상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오마이뉴스>도 보고, 책도 열심히 봐야 한다. 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니까. 세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 난 그렇게 얘기한다. 실패도 많이 해봐야 한다고 본다. 모든 걸 경험해볼 수 있으면 그건 참 좋은 배우 자질이 되겠지. 그렇지 않을 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나는 이걸 좋아하지만, 저건 어떤 거지?' 관심을 갖고 있는 배우가 더 좋은 배우가 될 가능성이 많다."

- 당신은 좋아하는 게 많나?
"그걸 어떻게 얘기하나?"

-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좋아하고' 나오지 않나?
"난 안 나오는데. 음식 중에서 뭐 좋아해요. 이렇게 얘기하지."

"한번 배우는 배우다"

- 연기하지 않을 때는 뭘 하나?
"영화사 일한다. 시나리오 계발하고."

- 영화사 일하지 않을 때는?
"영화사 일하는 게 일인데, 일하지 않을 때가 어딨나? 질문이 정확하지 않다."

- ...
"..."

- 일하지 않을 때, 자신을 위해서 쉴 때는 뭘 하나?
"책 보거나, 여행을 갈 수 있으면 가는데, 요즘은 여유가 없다.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일 쪽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월급 걱정하고, 뭐 이런 거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는 건가?"

- 그럼 취미가 뭔가?
"요즘 취미도 잃어버렸다. 산책하거나 산에도 가고 싶고, 올해 1월 1일엔 산에도 가고 그랬는데. 그런 시간이 많지 않다."

- 바쁜가?
"바쁜 게 아니라, 난 시간을 집중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쁘다는 거…, 난 이런 단어들에 대해 그런다. 난 영화사 사장으로 일을 하고 산다. 바쁘다는 게 '영화사 일이 바쁘냐?' 이렇게 물어본다면 '그 영화사에 일이 많냐?' 이렇게 되는 거잖아. 그런데 일이 없으니까 바쁘진 않은 거고. 그렇지만 영화사를 어떻게 꾸려갈지 늘 생각하니까, 그건 또 바쁜 건가? 생각하는 건? 안 바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단순하게 얘기하긴 어렵다.

바쁘다는 건, 뭐 막… 그런 거 아닌가? 그렇게 얘기하면 바쁘다. 연극 연습을 하루에 일곱여덟 시간을 해야 되는 시점이고. 굉장히 바쁜 거지. 딴 걸 신경을 못 쓰니까. 그렇다면 난 바쁘다. 연극 연습을 하고 있으니까."

- 평생 연기, 배우를 할 건가?
"그렇게 되겠나? 이제는 나이가 돼서…. 더 젊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렇게 많진 않을 거다."

- 배우들이 보통 '난 죽을 때까지 연기 할 거다' 뭐 이런 소릴 잘 하잖나?
"한 번 배우는 배우다. 연기를 하고 있건 안 하고 있건."

그는 가훈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산다'라고 했다. 애들한테도 그런 얘길 한다고 했다. 가슴 속에서 이걸 하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 눈치 안 보고, 가능하면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다만 한 일에 대한 결과는 책임져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자신의 삶이야말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산다'일지도 모른다. 그는 연극을 하다 그만 두고 광고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그때 다시 연극이 하고 싶으니까. 다시 무대로 왔다"고 했다.

그도 이젠 나이를 먹은 걸까? 그가 말했다. "이젠 너무 새로운 것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기보다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확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또 말했다. "그리고…,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돈이 있으면 뭐…, 사진찍고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그렇게 하며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거야 사치한 꿈으로, 가끔 가다 낙서장에나 나올 수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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