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6.01.31 16:32수정 2006.02.01 10:1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삶이란 수 많은 가로 세로의 줄 들로 그어진 길다란 모눈종이 같지는 않을런지요. 양지혜
연 사흘간을 나의 결혼생활 중 가장 큰 문제였던 제사와 '명절 증후군'을 그나마 아름답게(?) 포장을 해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렸다. 그리고 그 기사는 생각보다 넘치는 관심(?)을 받았고, 어제는 급기야 네이버 생활면에 아이의 사진이 뜨면서 올라 있었다. 나는 흐뭇함을 견디지 못하고 목소리까지 들떠 자랑스럽게, 의기양양하게 남편을 불러댔다
"여보, 저 있잖아요 네이버 생활면에 울 꿀단지 사진이랑 기사가 떴어요. 빨리 와서 봐 주세요."
그러나 그 사태가 얼마나 큰 나의 경거망동이었는지는 잠시 후 기사를 읽고 난 남편의 꽉 다문 입을 바라보며 깨닫기 시작했다.

▲갯벌을 만나듯 가끔씩 마주치는 '움찔' 해야 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양지혜
아뿔사!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오마이뉴스>에서야 그나마 댓글이라고 달아 준 독자들은 나의 고생스러움을 위로하는 것으로 갔지만, 네이버의 댓글은 아니었다. 바로 남편의 어머니이자 나의 공포의 대상인 시어머님을 질타하는 댓글이 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 또한 당황스러운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온통 정신을 집중해야 했고, 그 방법은 언제나 하나일 뿐이었다.
"여보, 당신 왜 내가 자랑스럽지도 않아요?"

▲쉼없이 밀려드는 파도속에서도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을 믿음이 필요합니다 양지혜
일단은 뻔뻔함을 최대한 발휘해 모르쇠(?)로 가야 하고, 그 다음은 무조건 공공의 이익이 우선시 된다는 '사회적 책임론'으로 밀어붙여 남편의 기분과는 무관하게 이해를 구해야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여튼 나의 예감과 놀라운 내 순발력 탓이었을까 남편은 절대로 열지 않을 듯했던 입을 열었다.
어쩌긴 뭘 어쩌라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 동시에 이미 기사로 올려진 것을 어찌할 도리는 없고, 허위사실은 아니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남들 입에 미운 모양새로 오르내리는 게 못마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어 한동안 말을 아낀 채 남편의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난 앞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글감들이 얼마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지 알기에 반론을 시작해야 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얼어 붙지 않을 '흐름'을 찾고 함께 흘러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양지혜
그것에다 지난번 TV방송출연 불발에 대한 불만도 함께 터졌다. 시어머님과의 관계와 사소한 일상적인 가정사가 노출이 된다는 것에 남편은 은근히 탐탁치 않게 여겨 결국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의 모습으로 끝나버렸던 일이 한꺼번에 나의 심사를 건드렸다.
"그래, 당신 잘하고 있어. 한번도 안 해본 일인데 놀라워."
'우히히'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 이제 두루뭉술 넘어가나 보다. 역시 내 탁월한 순발력은 대단해.' 혼자 마냥 그 찰나의 곤혹스러움과 당혹감을 떨쳐 버렸다고 안심을 하려던 순간 남편은 핵폭탄 수준의 발언을 했다.

▲서로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그 속에 머물기도 하며.. 양지혜
"그런데 말이야, 이거 명경이네도 보고 그리고 애들이 다 볼 거 아니야. 그러면 어머니 귀에도 들어가게 될테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데. 또 집안 시끄러워지면 당신 어떻게 할래?"
"그래서요? 어머님이 안하신 일을 썼나요? 아님, 거짓말을 했어요? 있는 사실 그대로인데요. 그리고 이 기사 좀 보시고 이제부터라도 어머님이 좀 달라지면 좋지 않아요?"

▲새로이 환하게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삶, 그 속에서 나의 희망을 찾아 봅니다 양지혜
내 목소리도 가라앉으며 가시가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혼자 고시랑 거렸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줄 알면 하지를 말았어야지. 시집살이가 보통이었나 머' 곁에서 계속 붉은 얼굴을 하고 있던 남편도 예의 화나면 그렇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를 했다.
"당신 모르나 본데 존속의 명예를 훼손하면 이혼사유야!"
"허걱!"
잠시 동안 숨이 멎는 듯했다. 이혼이라고? 아니 다른 때는 자신이 법대를 다니기는 했지만 법학은 공부한 일이 없다던 남편이 어떻게 이리 절묘하게 법률적인 용어까지 들이대며 중차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인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지 않았는가. 연타로 남편은 나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바로 <오마이뉴스>의 댓글에도 있는 제삿상에 대한 것이었다.

▲때로는 감당키 어려운 아픔이 있지만 녹아 들 시간이 있음을 믿어 보며 사는 것. 양지혜
"자고로 옛말에도 있듯이 남 제사상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 빰맞는 일인거 알아? 당신 기사 쓸 때 조심 좀 하지!"
고성이 오가는 부부싸움은 안하는지라 언제나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은 이렇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듯해 얼른 <오마이뉴스> 기사 밑에는 내가 댓글을 달았다. 제사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이해를 해 달라고 대충 그런 요지로.
하지만 정월 초이튿날부터 내가 쓴 기사로 남편에게 '이혼 운운'을 들은 나로서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이 상황을 넘길 일은 아니었다. 반격을 시작했다.

▲작지만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 부족하지만 이해라는 것으로 감싸주는 사랑 '가족' 양지혜
"사는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아시기나 하세요 당신? 그리고, 명절 증후군, 그거 어머님이 얼마나 심하게 앓도록 했는지도 아시죠? 그래서 털어 보려고 했어요. 그게 그렇게 창피하세요? 그 창피함을 왜 이제까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았죠? 창피한 일이면 진즉 고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당신 몫이 아닌가요?"
속사포 쏘듯이 쏘아대며 다시는 내 기사에 대해 거론을 하지 말라고 엄포까지 놓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속은 풀리지 않았다. 내 딴에는 시동생 얼굴이랑 어머님 얼굴 다 나와서 망신 당할까봐 흔들리는 사진으로 대충 넣었는데, 그런 내 마음은 모르고. 야속함과 서운함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참에 온전히 정리를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사랑으로 길을 열고, 믿음으로 빛이 되는 삶, 그 속에 희망이 있습니다. 양지혜
"모두가 반성해야 돼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내가 무지하게 아름답게 쓴 기사예요. 내가 살아 온 게 당신 보기에 그렇게 아름다웠던가요? 아니니 이제부터라도 아름답게 살아보자는 내 설날 희망이고 누구 말처럼 더 이상 힘든 시집살이 안하도록 해달라고 미리 맞은 예방주사로 봐 주세요!"
남편은 한동안 아무런 대꾸없이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차례상에 올리고 남은 술 한 병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알아 알아. 그런데 어머님이 아시면 또 당신을 나쁜 시어머니 만들었다고 하실까봐."

▲환하게 웃으며 언제나 함께 꿈꾸며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삶을 소망 합니다. 양지혜
그렇게 시집살이와 맏며느리로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명절증후군 씻김굿'이었던 3일간 연이은 세 꼭지의 기사 후기는 남편의 폭탄 발언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웃음을 안주 삼아, 지난 시집살이의 고단함과 애달픔을 추임새로 넣으며 처음으로 한가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맞았던 명절연휴를 차근차근 정리했다.
그리고 남편은 비록 아직 메인톱에 올라 간 기사 하나 없는 좌충우돌 어설픈 아줌마 시민기자지만 이혼을(?) 감내하며 기사를 썼던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기자라며 한참을 웃었다.
"<오마이뉴스>에서 당신 상 줘야겠다. 용감한 기자라고."
"그러게 인생을 걸고 이혼 당할 뻔하면서도 기사를 올렸으니 당연 그래야겠지요? 상 받으면 어머니 흉 본 것 눈감아 준 당신한테도 나눠 줄게요."
덧붙이는 글 | 그동안 바닷가를 오가며 찍어 두었던 사진으로 엮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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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알아? 존속 명예훼손은 이혼 사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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