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6.01.31 18:20수정 2006.01.31 18:20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번 설은 고향의 포근함만큼이나 날씨도 완연한 봄의 빛깔이었습니다. 들엔 잡초들이 어느새 푸른 얼굴을 내밀고 봄볕 아닌 봄볕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봄의 모습은 자연에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결엔가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작은 아이들 손끝과 웃음소리에도 봄은 이미 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전거로 봄 나들이한 아이들 김현
여자들이 설 음식을 지지고 부치고 할 때 그 봄바람을 맞으러 아이들과 냇가가 있는 둑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습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하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바람이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 놓습니다.
"야, 누가 더 빨리 달리는 가 시합하자."
딸아이의 제안에 보미, 한울이, 선빈이 녀석이 좋다며 함성을 지르더니 준비 자세를 취합니다. 심판은 내가 보기로 했습니다. 훤하게 드러난 길을 아이들이 신나게 달립니다. 나도 함께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으려니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때가 생각납니다.
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그땐 지금처럼 어린이용 자전거가 없어 어른용 자전거로 타는 방법을 배우든가, 막걸리 통을 실어 나르던 짐자전거로 배워야 했습니다.

▲들에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김현
당시엔 다리가 짧기 때문에 곧바로 올라서지 못하고 자전거 옆에 오른 다리를 집어넣은 다음, 왼손은 핸들을 잡고 오른팔은 안장에 걸친 상태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일종의 옆다리타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옆다리타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안장 위로 올라가 양 엉덩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5월 초쯤 됩니다. 모내기도 끝나가고 노랗게 익은 보리 타작을 할 무렵, 아버지는 나에게 새 자전거를 한 대 사 주었습니다. 물론 어른용 자전거이지만 난 누가 만질세라 감시하며 닦고 문지르며 먼지 하나라도 묻어 있을까봐 광을 내곤 했습니다. 그런 날 보고 아버지는 지그시 웃으며 물었습니다.
"자전거가 그렇게도 좋으냐?"
"네, 너무 좋아요. 아빠."

김현
내가 처음 큰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줄 때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마 그때 내 표정도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5월, 어느 해질녘 무렵에 아버지는 동네에서 좀 떨어진 논에 가면서 날 데리고 갔습니다. 서편 하늘에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걷고 난 옆다리타기로 자전거를 타며 지금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둑(제방)을 달렸습니다. 나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웃던 아버지가 날 불렀습니다.
"혜니야, 애비가 잡아줄 테니 한 번 올라가 보그라."
"나, 못타는데…아직 한 번도 안 타봤어요."
"괜찮어. 애비가 잡아줄 테니 걱정말고 한 번 타 보거라. 어여."
"꽉 잡아줘야 해. 놓으면 안 돼요."
"알았다니까. 어서 올라가 보그라."
그때 지금의 내 나이쯤 된 아버지의 말만 믿고 안장에 엉덩이를 턱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달리자 아버지도 뒤 짐받이를 잡고 달렸습니다. 아버지가 뒤를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자전거는 앞으로 쭈욱 쭉 나아갔습니다. 어느 정도 달리자 "애비 이제 놓는다. 그래도 뒤에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전할 기다. 안심하고 신나게 달려 보그라" 그러면서 잡던 손을 놓았습니다.
멈출 수도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뒤에서 잡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말만 믿고 달리다 보니 어느 틈엔가 자전거는 나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내리고 혼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야, 빨리 달려... 김현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버지는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아니 한 번도 타보지 않았습니다. 늘 걸어서 수레를 끌거나 지게를 지고 논으로 밭으로 다녔습니다. 당신은 탈 줄 모르지만 자식에겐 비싼 자전거를 사 주시며 뒤를 잡아주신 아버지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능력도 없고 말주변도 없어 한 번도 자식들 넉넉하게 해주시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단단히 잡아주는 손이 있음을 알기에 나도 그 손을 우리 아이들에게 내밀어 잡아주는 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깔깔거리면서 신나게 달리는 모습에 잠시 옛날 생각에 빠져있는데 "아빠도 빨리 타요" "큰 아빠도 우리랑 시합해요"하며 어느 새 돌아와 상념을 깨트립니다.
"좋아. 너희들 저만치 앞에 가있어. 내가 금방 따라잡을 테니."
"알았어요. 히히 빨리 가자."
"자, 준비~. 시작!"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아이들을 향해 달리면서 페달에 힘을 줍니다. 아이들이 뒤를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면서 "야, 빨리 가. 우리 따라온다" 소리치며 낄낄거립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뒤를 돌아봅니다. 거기에 마음으로 잡아주는 손이 있음을 느낍니다. 내 지치고 힘들 때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아버지의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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