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서방, 이 베개 베고 얼른 나으소"

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제게 장모님이 베개를 사 주셨습니다

등록 2006.01.31 18:17수정 2006.02.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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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싸우지 않고 새끼들 잘 키우면서 잘 살면 그걸로 됐지 뭘 이런 것을 주고 그런 당가? 도로 집어넣으소."
"매년 안 받으시고, 어머님 자꾸 그러시면 저 서운해요. 저, 어머님 명절에 세뱃돈 드릴 정도는 돼요. 얼마 되지도 않는데 자꾸 그러시면 제가 못 살아서 그러시는 것 같아서 제 마음이 편치를 않아요. 받으세요."

"그러면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주는 것이니 내 좋은 마음으로 받겄네. 고맙네 그려."
"제가 이 다음에는 돈 많이 벌어서 많이 드릴게요. 그러니까 아프시지 말고 건강하세요."
"그러소. 자네도 건강하고 돈 많이 벌어서 내 용돈도 많이 주고, 어여 집도 사고, 그리고 올해는 나보다도 자네가 건강하소. 젊은 사람이 그리 아퍼서 쓰겄는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세배를 드리고는 많지는 않지만 장모님께 세뱃돈을 드렸습니다. 매년 세뱃돈을 드리기는 했지만 어머님께서는 "나 줄 돈 있으면 한 푼이라도 저축하소" 하시면서 끝내 세뱃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때는 받으셨다가도 집에 가려고 차 시동을 켜면 차 안으로 다시 돈 봉투를 던지시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시던 장모님이셨습니다.

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리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사실 사위가 못 살아서 그런가 싶어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키시지는 않는 표정이면서도 역시 저를 생각해서인지 그대로 받아 주시니 오랜만에 사위 노릇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장에 가시면 꼭 사위 몫까지 사시는 우리 어머님

사실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말도 있지만 저희 장모님, 사위 사랑이 남다르십니다. 시장이라도 들르시면 당신들 몫에다 꼭 제 몫까지 보태서 사시고는 20여분 거리를 걸어 생선 한 마리라도 주고 가시는 어머님이십니다.

매번 이렇게 시장을 봐 주시니 저희 집 냉장고에는 어머님이 사다주시는 생선이 늘 가득 차 있습니다. 덕분에 아내가 아침에 부지런만 떨면 늘 밥상에는 생선구이가 빠지지를 않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야 생각한건데 어머님의 장 보시는 날이 어쩌면 저를 위해서 맞추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선이 꼭 떨어질 때쯤이면 어머님이 집에 오시곤 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사는 탓에 자주 가는데도 어머님은 제가 무안할 정도로 늘 반찬에 신경을 쓰십니다. 찬이 없으면 텃밭에 가셔서 상추라도 뜯어 오시고는 고추며 마늘을 까서 쌈이라도 준비해 주십니다. 집에 맛난 것이라도 있으면 꼭 남겨두었다가 직접 가져오시거나 막내처남 손에 들려 보내 주기도 합니다. 저 보고 저녁에 들러 먹고 가라 하실 때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이런 어머님께 별로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저희들 잘 사는 것으로 됐다고 하시지만, 사위가 저 혼자이다 보니 저는 뭔가를 해드리고 싶은데 그것이 늘 마음뿐입니다. 고작 한다는 것이 해 주시는 밥, 그저 맛나게 먹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늘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세뱃돈이라도 드리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하나뿐인 우리 사위, 우리 사위 하시면서 늘 저부터 챙겨 주시는 우리 어머니. 음식도 어찌나 잘 하시는지 설 연휴 이틀 동안 소화될 시간도 없이 먹느라 바쁘게 보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세 끼 밥 먹는 것이 여간 죄송한 것이 아니었지만, 역시 맛나게 먹어 주는 것으로 어머님의 사랑을 갚았습니다.

어머님이 건네주시는 베개, 또 죄송한 마음뿐이네요

우리 어머님이 저를 위해 사 주신 베개에다 아내가 우리 어머님이 직접 뜯어 말리신 천연쑥을 넣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저를 위해 사 주신 베개에다 아내가 우리 어머님이 직접 뜯어 말리신 천연쑥을 넣고 있습니다. 장희용
이틀 동안 처가에 있다 집으로 오려는데, 어머님이 베게 하나를 방에서 꺼내 오십니다. 색깔이 무척 곱습니다. 처음에는 아버님 이부자리를 펴시는 줄 알고는 베개를 아버님 자리에 놓으니 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거 장 서방 자네 것이네. 가지고 가소."
"네? 무슨 베개를?"
"이번 설 대목장에 갔는디 눈에 들어와서 하나 샀네. 좋은 것은 아니어도 그 베개 베고 후딱 나으소. 그리고 쑥이 두루두루 좋다고 허니께 집에 가서 베개 속에다 넣으소. 내가 지난 봄에 집 앞에서 뜯은 쑥인 게, 거 뭐시냐 천연향이구먼."

"뭘 이런 걸 다 사시고 그러셨어요. 저 괜찮아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거 베고 후딱 나으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아파서 쓰간디. 내가 자네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마음이 편치 않으이. 얼른 나으소."
"고맙습니다. 역시 어머님이 최고랑게요."

평소에 넉살이 그리 좋지 않은 저이기에 좋아도 좋은 내색을 별로 못하는 편인데, 그날만큼은 저를 생각해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던지 저도 모르게 '어머님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웠습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러더군요. 베게, 제 것만 샀다고요. 아버님도 계시고 손위 처남들이 셋이나 있는데도 제 것만 샀다는 소리에 문득 제가 아픈 것에 대해 아픈 저만큼이나 더 아파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아픈 자식 생각에 아프실 어머님 생각에 마음 한 쪽이 뭉클해져 왔습니다.

저녁에 피곤하다는 아내를 채근해서 쑥을 넣어 베개 높이를 맞추고는 살포시 베개를 베어 봅니다. 그동안 목 디스크 때문에 베개를 여러 번 바꾸었는데, 바꿀 때마다 편하지 않아 결국 태민이가 애기였을 때 덮었던 작은 이불을 둘둘 말아 베고 잤는데, 용하게도 목이 참 편합니다.

아내는 자기도 한 번 베어 보자고 했지만, 어머님이 나 혼자만 베라고 했다면서, 다른 사람이 베면 효험이 떨어진다면서 주질 않았습니다. 어머님이 직접 뜯은 쑥에서 진한 쑥 향이 솔솔 코를 상쾌하게 해 줍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해도 되겠지요. 그건 쑥 향이 아니라 어머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향기라고.

제 목 높이에 딱 맞는 베개가 완성됐습니다. 색깔 예쁘지요? 어머님! 이 베개 베고 얼른 나을께요.
▲제 목 높이에 딱 맞는 베개가 완성됐습니다. 색깔 예쁘지요? 어머님! 이 베개 베고 얼른 나을께요.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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