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억으로 '반삼성' 무마될까

삼성, 대대적 사회공헌 프로그램 발표... 일부 "본질 회피용"

등록 2006.02.07 16:04수정 2006.02.08 13:35
0
원고료로 응원
a 삼성 이 회장 일가 사재 8천억원 사회 환원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내 수뇌부들이 7일 삼성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주 구조본부사장, 배정충 삼성생명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배 삼성물산 건설사장, 이종왕 법무실장.

삼성 이 회장 일가 사재 8천억원 사회 환원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그룹내 수뇌부들이 7일 삼성그룹 본사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주 구조본부사장, 배정충 삼성생명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이상배 삼성물산 건설사장, 이종왕 법무실장. ⓒ 연합뉴스 백승렬

삼성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편법,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지배구조 개선 압박 등으로 '창사 이래 최대위기'에 직면한 삼성이 7일 마침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대대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지난해 여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안기부 X파일' 이후 '반(反)삼성' 기류에 대한 여론이 들끓은 지 7개월 만이다. 또 이번 발표는 지난 4일 이건희 회장이 귀국길에서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며 "책임은 나 개인에게 있다"고 말한 직후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삼성의 이 같은 계획은 이 회장의 사재출연 등 대대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X파일'에서 드러난 불법 정치자금 의혹과 '삼성공화국'에 대한 사회 일각의 '반삼성 분위기'를 무마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삼성을 둘러싼 정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검찰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배정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삼성의 '종합대책' 발표와 상관없이 여전히 이 회장의 소환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또 삼성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지난해 말 검찰의 무혐의 판정으로 일단락 된 '안기부 X파일' 사건도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날 삼성의 대대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별개로 삼성을 둘러싼 여러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이날 삼성의 발표에 대해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기 보다는 여전히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삼성이 단지 변화를 예고했을 뿐이지 경영권 승계, 지배구조와 같은 핵심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며 "투명성과 책임성 확립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삼성에 촉구했다.

삼성 대대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 왜 나왔나

이날 삼성이 대국민사과와 함께 내놓은 '종합대책'의 내용은 ▲8000억원 규모의 사회기금 헌납 ▲사회공헌 확대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운영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및 삼성SDS BW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취하 ▲계열사 독립경영 강화 등이다.


여기에 그동안 삼성이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 방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해온 정치권의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수용하겠다"고 삼성은 밝혔다.

삼성의 이 같은 계획은 우선 대규모 재원을 사회에 돌려줘 공익 사업에 활용함으로써 그동안 X파일에서 드러난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혹과 사회 일각의 '반 삼성' 기류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반 삼성' 기류에 대처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사실상의 모든 '카드'를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경영진은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와 국민들께서 지적해 왔던 삼성의 여러 현안에 대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이와 같은 방안들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과거 사회적 물의를 빚은 기업인들이 '여론 무마용'으로 사재를 출연해 기금을 조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련의 사태에 대응해온 삼성의 태도로 볼 때 이번 대책은 그동안 정부나 정치권과 사회로부터 받아온 요구 가운데 최대치를 수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삼성이 이처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회 일각의 요구를 대폭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반 삼성' 기류에 대한 움직임이 잦아들 수 있을 지도 주목된다.

관련
기사
- 서울 특목고 교실엔 '금테' 둘렀나

'종합대책' 불구 삼성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

a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저녁 출국 5개월 만에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 공항에서 회사 전용기인 '보잉 즈니스제트(BBJ)'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휠체어를 탄 채 귀국한 이건희 회장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엇보다 삼성이 대규모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내놓음에 따라 앞으로 삼성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가 관심거리다. 당장 지난 96년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배정한 에버랜드 지분 취득문제가 걸려 있다.

삼성의 이번 조치에 따라 이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 취득 과정에서 얻은 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더라도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한 이들의 지분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 에버랜드 CB의 경우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지니고 있다.

특히 검찰이 최근 지분 취득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 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어서 이번 삼성의 대국민 사과가 향후 검찰의 수사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지난해 말 검찰이 무혐의 판정을 내린 '안기부 X파일' 사건도 아직 종결형이 아니다. 검찰의 부실수사 여론이 커지고 있는데다 국회에서는 특별법과 특별검사를 논의 중이다. 또 금산법 등 삼성의 지배구조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여전히 삼성을 둘러싼 여러 논란은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더구나 삼성은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끈질긴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축해오다 뒤늦게 시민단체가 제기한 문제를 시인하고 사회환원을 약속한 형국이어서 앞으로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삼성 측의 주장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벌써부터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삼성이 과거에 그랬듯이 위기 때마다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본질 외면한 여론무마용"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삼성의 '종합대책' 발표에 대해 "진일보한 변화"라면서도 "삼성그룹이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그동안 삼성이 보여준 모습에 비춰볼 때 이건희 회장이 여러 현안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개선을 약속한 것은 의미있는 새로운 변화"라며 "그러나 여전히 지배구조 개선 등 사태의 근원적인 해결은 외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삼성이 금융을 통한 그룹 지배와 배임에 의한 경영권 승계를 합법화하려고 법과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오늘 삼성의 발표에서는 이재용씨→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에 대한 해결책이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또 "(이번 삼성의 대책이) 반삼성 기류에 대한 뼈아픈 자기 반성이라기 보단 비판 여론을 무마용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삼성의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 확립을 위한 근원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하는시민행동도 "삼성 문제의 본질은 편법 상속과 증여에 따른 경영권 승계인데 오늘 발표된 내용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