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곰이 들려주는 행복의 비밀

[서평]로타 자이베르트의 <행복>을 읽고

등록 2006.02.10 12:10수정 2006.02.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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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는 손이 자꾸 뒤엉킨다. 미끄러진 접시가 컵과 부딪혔다. 아니나 다를까. 귀퉁이가 깨져 버렸다. 순간. 세탁기부터 돌렸어야 했음을 뒤늦게 기억해낸다. 설거지를 멈추고 베란다로 나와 세탁기 버튼을 누른다. 베란다를 나오다 주방 한쪽 구석에 모아둔 한 봉지의 야쿠르트 통이 눈에 띈다. 재활용 자루에 갖다 부어야 할 것 같다.

읽다만 책은 오늘쯤 다 읽어야 한다. 시청신문에 실을 기사취재도 오늘쯤 다녀와야 한다. 아버지 모시고 동네 한바퀴 도는 일도 절대 빼놓아선 안 된다. 친정어머니 부탁으로 우체국도 다녀와야 하고 오는 길에 아이가 먹을 식빵도 사다 놓아야 한다. 설거지를 하다말고 잠시 숨을 멈춘다. 끊임없이 일깨워 대는 뇌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싶어서다.


요즘은 하루 24시간이 한 30시간쯤 되면 좋겠다 싶다. 하루 종일 허둥댄다. 그렇다고 뭐 하나 깔끔하게 해내는 일도 없으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바로 나요' 하듯 산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 나란 사람에게는 20시간만 주어진 것도 아닌데 도대체 내 하루는 왜 이토록 부산스러운 것일까.

‘인생의 많은 것들이 삐걱거리고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중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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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책표지 ⓒ 랜덤하우스중앙

이 한 줄의 글에 이끌려 <행복> 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책장을 넘기게 됐다. 책의 내용은 지혜로운 곰이 숲속 동물들에게 행복한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곰이 들려주는 행복한 인생의 비밀.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을 얼마나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행복할 수도 아니면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는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사는 모습을 비유한 다섯의 동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책임감 강한 올빼미, 일벌레 꿀벌, 욕심 많은 여우, 분주한 토끼, 속 편한 사슴이 그들이다. 이 다섯의 동물들은 곰을 만나기 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게으르다거나 나태한 건 절대 아니었다. 나름대로 분주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삶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새해 첫 날 숲속 아침, 커다란 호숫가로 모인 다섯의 동물들은 그들의 생활이 작년과 또 제 작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걸 느낀다. 여전히 그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지만 뭔가 이루어 놓은 게 없었다. 그들에게 일이란 것은 엄청난 산 같아서 결코 오를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돌볼 시간조차 없음을 아쉬워한다.

"지난번 여행에서 지혜로운 곰들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친구들은 균형 잡힌 삶의 비밀을 안다는 거예요. 그 곰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쪼개야 하는지 안다고 해요. 그러니 새로우면서도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겠죠. 우리가 좀 더 그럴듯하고 뜻있는 삶을 살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곰들이 알려줄 거예요."


올빼미의 제안으로 찾아 간 동굴 속에 사는 지혜로운 곰. 다섯의 동물들은 저마다의 하루하루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시간을 적절하게 쓰지 못했는지 곰에게 듣게 된다. 그들이 지혜로운 곰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올빼미 오이제비아는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책임감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어 여러 모임이나 단체를 이끌어 가는 타입니다. 단점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을 위해 정해진 계획표대로 생활하기보다는 남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계획을 바꿔 버린다.

곰은 이야기한다. 자신의 능력이 갖는 한계를 제대로 알아두라. 'NO'라는 대답을 자주 하라. 우선순위나 실행을 타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의논하지 마라. 긴장을 풀기위해 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라. 자기만의 목표를 늘 잊지 마라. 까다롭게 굴지마라.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라.

꿀벌 베아테는 주어진 일을 다 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부지런히 일하는 타입이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앞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어서 나중에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일벌이라서 인생의 반 이상을 일로 보내는 셈이다. 일 중독증에 허덕이는 꿀벌에게 곰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하루하루의 분명한 목표를 정하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서둘러 할 필요가 없다. 친구들을 위해 시간을 내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라. 적은 것이 때로 많음을 알고 어떤 것은 그냥 내버려 두어라. 휴식과 긴장완화, 또는 명상을 위해 시간을 내라.

여우 페르디난트는 자신의 능력보다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더 신경을 쓰는 타입이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해 나가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 그러면서도 모든 일에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 또한 가장 많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다 못마땅하고 자기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자에게 시기심을 심하게 느낀다. 이런 타입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주관과 의지대로 노력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여우에게 들려주는 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분명한 하루 계획표를 짜라. 당신의 업무를 정확한 우선순위에 따라 하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대상을 탐색하는데 쓸데없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마라. 정확하고 빠른 판단을 내리도록 하라. 당신이 정말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워라.

토기 해리는 일곱 가지 일이라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타입이다. 그러니까 늘 바쁘기만 하고 단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특히 직장생활에서나 자영업에서나 나름대로 성공을 하지만 그러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켜 가족 안에서 외톨이가 될 수 있다.

직장생활과 사생활을 균형 있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가장 적은 것이 가장 많은 것이다. 토끼에게 곰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인지 잘 판단하라. 당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책임을 나누어 져라. 아무 일에나 참견하지 마라. 일과표를 작성하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하라. 당신의 하루 일과를 파악하고 그 가운데 쉬는 시간도 계획표에 넣어라. 될 수록 많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라. 일과를 너무 빡빡하게 짜지 말고 쉬는 시간을 짬짬이 넣어 즐기면서 하라.

사슴 한스 루돌프는 언제나 태평하고 만사에 고민이 없는 타입이다. 또 특별한 고비가 없고 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고비라 느끼지 못한다.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이 되면 또 그 다음 날로 미루면 되니까. 믿는 것은 오직 언젠가는 다 좋아질 테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곰은 사슴에게 어떤 지혜를 가르쳐 주었을까.

업무 계획표를 만들어라. 불편한 일은 바로바로 처리해서 잊어버리고 그것을 오래 붙들고 잊지 마라. 하루 일과표를 문서로 만들고 모든 일과를 그 안에서 짜임새 있게 처리하라. 목표와 결과를 잘 따져 보고 일하라. 즉흥적으로 일을 중단하지 마라.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아보라. 새롭고 멋지고 재미있는 일을 위해 시간을 내라.

<행복>의 저자 로타 자이베르트는 말한다.

"지금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바쁜 세상에서 자신의 삶이 충만하고 만족스럽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곰이 살아가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곰은 행동이 느려보여도 침착함 속에 말짱한 정신으로 살아가며 순간적인 인지력 이랄까, 놀라운 직관력으로 자기 삶을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간답니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은 어떤 타입인지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여우, 토끼, 사슴, 꿀벌 아니면 올빼미? 그런 다음 곰의 도움을 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활에서 실천하세요. 행복을 위하여!"

나는 과연 어떤 타입일까. 따지고 들자니 다섯 가지 동물들 모두 내 모습 같다. 잠자리에 들 때면 내게 주어졌던 하루를 늘 후회하게 되니 말이다. 순간이 모여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모여 일년을 만들고 또 세월을 만드는 것이다.

그 세월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며 인생인 것이다. 그렇다면 매 순간순간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행복도 불행도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하루 온종일 동동거리는 것일까.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 아닐까. 그렇다면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할 것 같다. 긴 세월을 겨냥해 장담할 순 없더라도 눈앞의 하루는 책임지고 싶다.

무작정 욕심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내게 진정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싶다. 하여 지금 이 순간. 지혜로운 곰이 들려준 삶의 지혜를 내 머릿속에 또 내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겨본다.

행복

로타르 J. 자이베르트 지음, 김정민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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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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