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건희 회장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미국 부자와 한국 부자의 차이, 빌 게이츠와 이건희

등록 2006.02.10 10:34수정 2006.02.17 09:3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기부한 사람들.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 기부한 사람들. ⓒ 한나영

키가 크고 인상이 좋은 마이크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딸의 아버지다. 그는 해리슨버그에 있는 '하트만' 자동차회사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카 딜러다. 우리는 지난 여름에 미국에 도착하여 이곳 생활에 필수적인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할 때 마이크를 소개받았다.


"하트만은 많은 이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는 좋은 회사에요. 정직한 회사라고 하더군요. 카 딜러인 마이크도 제가 겪어 보니 아주 믿을 만한 사람이고요. 아마 여기서 차를 구입하면 중고차라 하더라도 속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예요."

중고차를 사려고 했던 우리는 이곳에 오래 살았던 이 박사로부터 하트만 회사가 '정직하게' 판매한다는 말을 듣고 결국 마이크로부터 차를 구입했다. 우리가 산 미니밴은 기대했던 대로 우리 가족 모두를 만족시켰다. 자동차 등록과 관련하여 우리는 몇 차례 더 하트만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이크와 친구가 된 우리는 그와 사적인 대화도 종종 나누게 되었다.

"마이크, 어제 당신 사장 집엘 갔다 왔어요. 아주 멋진 집이더군요."

우리가 하트만 사장 집을 방문할 수 있었던 건 기자의 지난 기사 '세 아이의 엄마 재닛이 브랜든을 입양한 이유'에 나오는 주인공 재닛이 우리 가족을 교회 소그룹 모임에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와우, 우리 사장님 집엘 가봤어요? 집 좋지요? 우리 사장님이 그동안 회사 사람들을 몇 번 초대했는데 저는 그때마다 일이 있어서 못 가봤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 사장님 집에도 가보고, 나보다 낫네요."


마이크는 엄지를 번쩍 치켜들며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우리가 자기네 사장 집을 구경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며 부러운 듯 말했다.

평직원을 집에 초대하는 미국의 사장들


하트만 사장의 집은 시내에서 벗어난 변두리에 있었는데 그 집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집 같았다. 넓은 지하 헬스장과 게임룸, 몇 개인지 모를 많은 침실과 멋진 야외 풀장, 그리고 호사스러운 인테리어, 그야말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집이었다.

우리 촌놈(?)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 방 저 방을 구경했는데 재닛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방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층에 있는 하트만 부인의 방을 구경할 때 재닛이 재미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나영, 우리 여섯 식구의 구두를 다 합쳐 봐도 여기 있는 하트만 부인의 수십 켤레 구두에 못 미친다오. 옷도 엄청 많지? 하트만 부인은 아주 멋쟁이야. 영화배우 뺨칠 정도지. 흐흐."

전에 구설수에 올랐던 필리핀의 영부인 이멜다 신발장을 연상케 하는 수십 벌의 구두와 비싼 옷들을 보면서 우리는 팔자에도 없는 미국 부잣집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부자들이 보통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고 있고 웬만해서는 집도 잘 공개하지 않는데 미국 부자들은 안 그러는 모양이네.'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강남이나 강북의 이름난 부자 동네와 최첨단의 타워팰리스 등에는 무인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삼엄한 경비도 펴고 있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하트만 사장 집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열댓 명의 부부들이었다. 이들은 하트만 사장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마이크에게 들으니 하트만 사장은 직원들을 자기 집으로 종종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고 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나라 회장이나 사장들 가운데 직원들(임원들이 아니라)을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함께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초대를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사실 미국 부자나 한국 부자나 부자로 잘 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자들은 대개 대리석이 깔리고 호화로운 샹들리에와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된 멋진 집에 산다. 그들의 사는 모습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하지만 내가 본 많은 미국인들은 부자로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고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는 듯했다.

미국 부자와 한국 부자, 그 차이점

미국에 와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돈 많고 배움이 많은 이른바 '노블리스'들의 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 그리고 나눔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 최고 부자인 빌게이츠는 아내 멜린다와 함께 290억 달러(약 29조 원)의 재원을 출연해 세계 최대 자선기금 재단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에이즈, 말라리아 등의 질병 퇴치와 연구를 위한 보건 의료와 교육 프로그램에 막대한 돈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지에 직접 가서 봉사 활동을 펴기도 한다고 한다.

세계 일등 부자인 그가 베일에 가려 은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 아니 세계인 속에 뛰어들어 헌신하고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프트업계의 악마'라는 평이나 '독점 사업가'라는 좋지 못한 평판도 듣고 있지만 그는 어쨌거나 미국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고 그의 행보는 늘 뉴스 초점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사재 8천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 공헌 활동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의 이런 미담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칭찬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동안 편법 상속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을 받아 온 삼성 측의 개운치 않은 '여론 무마용' 기부로 보기 때문이다. 삼성 측으로서는 좀 억울하겠지만 결국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의 부자들, 이제 달라져야 한다

a 노블리스의 아름다운 헌신.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JMU(제임스매디슨대학교)에는 나눔의 흔적이 많다.

노블리스의 아름다운 헌신.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JMU(제임스매디슨대학교)에는 나눔의 흔적이 많다. ⓒ 한나영

얼마 전 <오마이뉴스>의 윤근혁 시민기자가 쓴 '서울 특목고 교실엔 '금테' 둘렀나'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일반고교에 비해 건설비가 7.5배에 달한다는 '귀족' 특목고 설립에 반대하고, "한 사람의 영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교육청 관계자의 발언에 그렇게 분노하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특권층이나 영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특권층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은 아마도 그동안 우리나라 특권층이 보여준 역할이 결코 모범적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재들 역시 이른바 '노블리스'가 되어 많이 배우고 많이 소유한 엘리트 집단이 되었지만 그들은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내 자식만 잘 먹고 잘 사는 식'의 이기적인 행태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더불어 나누고 봉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말이다.

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부 재벌들 역시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로서 구별된 특권층이었지만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추악한 세금 포탈 등으로 존경받지 못한 집단이 되었다는 점도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요인일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진정으로 노블리스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노블리스들의 추악한 아귀다툼 역시 알고 보면 노블리스들의 기본적인 사회의식과 윤리의식 부재, 부정직함, 추잡한 공명심이 빚어낸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지금은 노블리스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회개가 요구되는 때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