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 참여정부 '뒤집기'냐 '무덤'이냐

[김헌태의 여론 뒤집어보기] 정부여당의 마지막 격전지는 '양극화 전선'

등록 2006.02.27 11:06수정 2006.02.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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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참여정부 3년째에도 노무현(사진) 대통령 지지도는 낮았다. 여론조사에 따라 20% 초반이니 30% 초반이니 논란도 있지만 높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여론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낮은 지지도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낸 인사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 스스로 여느 정권들처럼 '여론에 연연치 않겠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아 다행이다.

노 대통령이 가끔 꺼냈던 '태종론'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 마음 속 깊은 곳의 스스로에 대한 역사적 자리매김일 것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오래된 폐단들을 대중의 인기와 관계없이 청산해, 새로운 시대가 들어서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국민도 여론조사를 통해 지난 3년간 대통령이 가장 잘한 분야로 '부패척결'을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낮다. 국민의 관심이 온통 '경제'에 쏠렸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책을 안 썼다'느니,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쓸데 없는 '관료적' 푸념이다. 국민이 경기부양책을 쓰라고 떼쓴 적도 없고, 지금의 어려움이 모두 이 정부 탓이라고 우긴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나 먹고 살기 힘들다고 외치는 것이다.

최근 '양극화' 문제가 뜨긴 떴다. 대략 1년 전까지 국가신인도, 외환보유고, GDP 상승자료를 들이 밀며, 불안을 조성하지 말라는 때보다는 낫다. 이제 대통령도, 여당도 양극화를 얘기한다. 우리 국민이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며 더 나은 복지를 간절히 원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미 2004년 6월 조사에서 '사회안전망이 미흡하다'는 응답이 98%였다. 몇 년 전에도 우뢰와 같았던 민초의 고함이 이제서야 광화문과 여의도에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정권의 마지막 격전지를 '양극화 전선'으로 정하는 것 같다. 그 나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옛 자취만 남은 '민주화' 전투의 추억을 접은 것은 다행이다. 거기서 승리해 집권한 것이 벌써 두 번째 아닌가. 이제 어두웠던 시절의 '고통의 추억'을 국민에게 강요해봤자 소용없다. 대중은 원래 미래지향적, 아니 내일의 밥그릇에 관심이 많다. 참여정부가 이제 정말 제대로 된 이슈를 골라 잡긴 했다. 다만, 문제는 이 '양극화' 전선에서 현 여권이 그렇게 유리한 위치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많이들 얘기하듯 여론조사는 물어보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꽤 다르다. 지난 1월 말 여론조사에서 '세금을 더 내고 개인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55%로, '세금을 더 내고 사회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응답 40%보다 높았다. 바로 다음 질문에서 '더 많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의 질문에서는 '있다'는 응답이 53%, '없다'는 응답이 45%로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 '개인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달콤한 한 마디에 십수 %가 이동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양극화 재원 간접세로 퍼내려한다면 마지막 무덤될 것


이렇듯 양극화 문제는 말 한마디 표현 하나에 숫자가 휘청거리는 민감한 이슈이다. 향후 정부·여당이 이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하고, 또 대중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여론흐름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확실한 것은 그 방향과 방안이 대중이 수용 가능한 확실한 '보상'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재원을 간접세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의 밥그릇에서 '대충' 퍼내려 한다면 양극화 문제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뒤집기'는커녕 '무덤'이 될 가능성도 있다.

노 대통령이 캐나다의 멀루니 총리 얘기를 꺼냈다. 멀루니 총리는 적자에 허덕이는 캐나다 재정을 살리기 위해 1991년 '연방부가가치세법'을 통한 증세로 재정흑자를 실현했다. 반면, 소속 정당인 진보보수당은 총선에서 2석 만을 건진 채 나동그러졌다. 노 대통령은 눈앞의 인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소속정당이 망하더라도 역사적 결단을 내려 국가경제를 구했다는 멀루니의 사례를 눈여겨 본 듯 하다. 평소 노 대통령 스타일다운 대목이다. 그러나 캐나다 정치를 얘기할 때 '멀루니' 총리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지난 2004년 11월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100만명이 넘게 참가한 앙케이트를 통해 '위대한 캐나다인(The greatest Canadian)'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멀루니 총리는 그의 '역사적 결단'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치인이 4명이나 낀 톱 랭킹 10에는 들지 못했다. 짐 캐리, 파멜라 앤더슨, 마샬 맥루한 등에 이어 64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반면 약 14만명의 후보 중 캐나다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 사람은 '토미 더글라스'라는 주지사 출신 정치인이었다. 그는 진보적 인권정책과 대미 자주외교를 펼치며 우리나라에도 왔던 트뤼도 총리(3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피어슨 총리(6위), 초대 캐나다 총리인 존 맥도널드(8위)를 포함한 역대 총리 3명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CBC 홈페이지의 그에 대한 소개 앞머리에는 '평생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에 충실했고 수백만명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의료보험의 아버지'라고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주지사로 있던 사스캐쳐완(Sascatchwan)주에 '무료의료보험', '(빈곤층) 생활보조금', '출산수당' 제도 등을 도입해 2차 대전 후 캐나다 복지제도의 초석을 마련한 이로 평가되며, 후에 사회주의 정당인 신민당의 당수를 지냈던 사람이다.

토미 더글라스 주지사가 사망한 지 거의 20년 전이고, 멀루니 총리가 벌써 15년 전 연방부가세법안을 통과시켰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대중들의 평가가 '아침에 변하고 저녁에 달라지는' 일회성 여론이 아닌, 도도히 흐르는 민심의 한 자락으로 보여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멀루니 총리의 결단만이 아닌 토미 더글라스의 업적을 동시에 살펴 지금 한국상황에서 누가 더 맞는 모델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캐나다 국민들이 멀루니 총리보다 더글라스 주지사 존경하는 이유

a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2004년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꼽힌 토미 더글라스 주지사.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2004년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꼽힌 토미 더글라스 주지사. ⓒ The Weyburn Review

캐나다의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이미 수십년 전 '토미 더글라스' 주지사의 노력으로 복지국가의 기초를 다진 캐나다에 비해 우리는 지금도 복지국가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즉 멀루니 총리의 결단보다는 더글라스 주지사의 결단이 좀 더 우리 상황과 가깝지 않느냐는 것이다. 멀루니 총리를 좋게 본다 해도 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복지제도' 때문에 늘어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부가가치세법'을 통과시킨 것인 만큼 아예 수준 이하의 복지제도를 가진 한국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중산층과 서민이 이미 외환위기 이후 너무 지쳐있다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중산층과 서민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인 사람이 똑 같은 돈을 내는 '간접세' 같은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지쳐있다. 동시에 오랜 기간 양극화로 인한 경제적 고통에 충분히 시달린만큼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복지혜택을 늘려주기 바라고도 있다. 모순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난 노력이 드는 직접세 징수가 아닌 간접세로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말은 분명 안했다. 다만 '여당이 망하더라도 세금을 걷어 재원을 확충하겠다'는 결심은 당연히 신중해야 한다. 자칫 여당의 생존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에게 던지는 재앙의 원폭이 될 수 있다.

캐나다 국민은 많은 복지 혜택을 수십년 동안 누려왔으면서도 추가로 부가가치세를 내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자 그 당을 두 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만일 복지혜택도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우리 국민에게 캐나다에서처럼 역진세인 '부가가치세'를 받아 낸다면 어떻게 될까?

양극화 해소의 전장은 결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곳이다. 여권이 이제 양극화 문제와 재정확보를 위한 세금문제에 손을 댄다면 지금부터는 정말 호랑이 꼬리를 잡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위대한' 결단에 성급히 집착하지 말았으면 한다. 여당도 선거용으로 급한 대로 양극화 이슈의 효과를 우려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양극화 문제는 그야말로 진짜 이슈다. 이제 임기 2년을 남겨둔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에 대한 성과를 통해 남은 기간은 물론 먼 장래에도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통령이 성공하면, 국민도 성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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