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본 '꽃다지', 그들의 역사적 의미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서 공연을 본 뒤

등록 2006.02.28 16:19수정 2006.02.2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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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교육방송(EBS)의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은 '희망의 노래-꽃다지'를 마련했다. 민중가요패인 '꽃다지'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하루 전에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에 쫓겨 보지 못하다 어제 저녁에서야 인터넷으로 볼 수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기자는 4년 전 '민중가요 15주년, 노동가요 10주년'이란 타이틀로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꽃다지 10주년 공연의 감동을 떠올렸다.

당시 운동권 가요로만 알려진 노래들을 무대에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소 민중가요를 좋아하던 기자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는 절로 들썩였고 가슴은 벅차올랐다. 노래가 주는 감흥에 끝내 눈에는 이슬이 맺혔던 아름다운 기억.


a EBS 스페이스 공감의 홈페이지

EBS 스페이스 공감의 홈페이지 ⓒ 교육방송

이번의 꽃다지 공연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공감'은 민중가요패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집회 현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손병휘 이정열 등의 공연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민중예술과 민중가요는 현실의 삶과 애환 그리고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태어났다. 민중가요, 특히 노동가요는 노동자의 척박한 삶과 억압받는 현실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고 불리어졌다.

꽃다지, 운동가요에 대중성 불어넣어

열악하기만한 노동 현실을 오로지 노동자의 대오각성과 단결된 힘에 의해서만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진 시기는 6.29 선언이 나온 1980년대 후반이다. 그 시기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이 불붙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시기에 노동현장을 지원하고 노래라는 문화적 수단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던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꽃다지다.

a 꽃다지의 공연 모습

꽃다지의 공연 모습 ⓒ 꽃다지

물론 그 이전에도(특히 80년대) 각 대학 동아리를 중심으로 한 민중가요 성격의 노래패들은 여럿 있었다. 80년대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생겨난 노래패들은 노래를 통해 민주의식을 고양하고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등 나름의 성과들을 이루어낸다. 이들의 운동은 195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격동기를 전후하여 일어났던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운동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대항문화의 성격을 지녔다.


꽃다지의 등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운동가요에 대중성이라는 숨결을 불어 넣어 노동운동, 나아가 민주화 운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의 성공적인 활동은 민중가요운동이 이른바 '조직된 민중'을 뛰어 넘어 미조직된 대중에게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꽃다지가 16장의 앨범을 발표한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 의미를 새겨보아야 할 점은 그 노래들이 바로 우리 가락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70년대 포크송이나 흑인영가에서 영감을 얻은 곡들과는 그 맥을 달리 한다.


그런 그들이 무대에 올랐다. 물론 집회나 운동을 하기 위해 오른 무대와는 구분된다. 방송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 문화가 포용력을 획득했다는 것이고 그 수용의 폭이 널리 확대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운동으로서의 민중가요 노동가요가 아니라 우리의 대중문화로서 자리매김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는 노동가요패 꽃다지에게는 대중성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소외된 자, 눌려 고통 받는 우리들 기층민중의 정서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실험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무대 아래가 꽃다지답다 하여 언제까지 무대 밑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노래가 더욱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공명하기 위해서는 무대로 올라가야 한다. 다만 그들의 노래가, 또한 그들이 가진 아름다운 정신은 무대 위에서나 무대 밑에서나 늘 같은 것이기를 바란다. 노래가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울려 퍼지듯이, 아래에서 위까지 꽉 찬 감동의 무대를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노래를 전파에 실어준 교육방송의 과감한 기획과 편성에 갈채를 보낸다.

교육방송의 과감한 편성 '문화사 시리즈'
문화의 질 높이고 수용 폭 넓혀

문화의 질을 높이고 문화의 수용 폭을 넓히려는 교육방송의 야심 찬 시도는 '문화사 시리즈'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제1편 '명동백작'은 해방 후에서 50, 60년대까지 명동을 무대로 활동한 문인들(특히 김수영과 박인환)을 통해 당대 삶의 애환과 추억을 더듬었다.

제2편 '100인의 증언'은 당대 지식인 100인의 눈과 입을 통해 60년대의 문화를 생생히 복원해냈다.

제3편 '지금도 마로니에는'은 김중태, 김승옥, 김지하 등 동숭동 서울대 출신들을 통해 60년대 5.16쿠데타와 이어지는 한일외교수립 과정 등에 저항했던 학생운동과 다가올 70년대 유신 암흑의 징후 등을 화면에 담았다.

문화사 시리즈에 등장한 인물들이 지식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협객처럼 회자되는 깡패들이며 하루를 근근이 연명해가는 소시민들, 신중현, 임권택 등 당대 대중예술인에게도 눈을 돌려 당시엔 실험적이기까지 했던 그들의 음악과 영화에 얽힌 에피소드를 보여줬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이 명동거리의 선술집에서 구겨진 봉투 위에 쓰여지고 즉석에서 곡이 붙여지는 장면에서 받은 인상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신중현의 음악적 실험은 놀랍다.

기자가 이미 방영된 방송프로를 소개하는 것은 해당 프로를 알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 방송프로그램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사회문화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공공 채널의 역할을 수행하는 KBS1을 제외한 소위 방송 3사의 프로그램들은 거의 오락프로그램이나 드라마로 편성되어 있다.

상업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하여 시청률 경쟁의 볼모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방영되는 대부분의 드라마가 시대극이거나 만화를 소재로 한 가상의 현실세계인 것은 현실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갑갑하기 때문이 아닐까. / 임흥재

덧붙이는 글 | 민중가요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필자의 블로그 '노래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참고하세요.

덧붙이는 글 민중가요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필자의 블로그 '노래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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