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겨울 설악의 서북능을 가다 2

등록 2006.03.02 14:48수정 2006.03.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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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청대피소.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안도하며 저녁식사를 한다.

중청대피소.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안도하며 저녁식사를 한다. ⓒ 이현상

먼저 도착하여 저녁을 준비하던 대원들은 헤드랜턴으로 밤길을 밝히며 후발대를 마중하러 끝청 넘어까지 되돌아간다. 밤 9시 마지막 대원이 중청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한다. 장수대를 출발한 지 13시간만이다. 힘겨운 산행 끝에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건만 눈물겨운 동료애가 아닐 수 없다. 따뜻한 저녁식사와 함께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산행의 추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밤이야말로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이리라. 뻐근한 다리를 침낭 속에 밀어넣자 이내 달콤한 잠으로 빠져든다.

a 중청대피소를 떠나며

중청대피소를 떠나며 ⓒ 이현상

비교적 따뜻했던 날씨가 아침이 되자 급변하여 눈보라와 함께 강풍이 몰아쳤다. 설악산은 하산하는 우리들에게 겨울산에서 경각심을 잃지 말 것을 그렇게 당부하였다. 새벽을 도와 설악산을 찾은 사람들의 옷깃과 배낭에는 흰 성에가 끼었다. 누군가는 체감온도 영하 18도라는 말을 전한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다.


a 눈보라를 뚫고 소청봉으로 향하는 대원들

눈보라를 뚫고 소청봉으로 향하는 대원들 ⓒ 이현상

완전무장을 한 대원들은 능선을 빠져나가고자 서둘러 소청봉으로 내려선다. 칼바람은 능선상에서 더욱 사나울 것이다. 계곡으로 내려서면 바람을 피할 수 있다. 때때로 바람에 몸이 휘청인다. 아이젠을 착용한 등산화는 땅을 굳게 딛고 스틱으로 몸의 균형을 잡는다.

a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가파른 길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가파른 길 ⓒ 이현상

중청대피소에서 소청을 거쳐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는 길은 설악산에서도 가장 가파른 구간이다. 자칫 방심하면 엉덩방아를 찧는다. 발밑은 흰눈이며, 눈앞은 상고대를 둘러쓴 나무들이지만 멀리 천불동 계곡에는 따뜻한 햇볕 아래 설악의 기암절벽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1000m 이하 지대에는 바람도 잦고 햇볕도 따뜻할 것이다.

a 희운각 내리막길에서 본 공룡능선

희운각 내리막길에서 본 공룡능선 ⓒ 이현상

희운각으로 이어지는 된비알을 내려오자 하늘은 새파랗다. 눈보라는 저기 저 위, 소청, 중청, 대청 위에만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공룡의 등처럼 험준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공룡능선이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다.

a 천불동 계곡의 기암절벽

천불동 계곡의 기암절벽 ⓒ 이현상

천불동은 비선대에서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을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7km의 험준한 계곡이다. 지금은 비록 철계단과 같은 안전시설로 누구나 오를 수 있지만 그 험준함과 기묘함은 절로 탄성이 자아내게 한다. 천불동이야말로 설악산의 아름다움이 집약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a 험로를 벗어나 즐거워하는 대원들

험로를 벗어나 즐거워하는 대원들 ⓒ 이현상

양폭과 오련폭포를 지나면 길은 어느 정도 평탄해진다. 대원들도 이제는 맘껏 즐거워 한다. 아직 갈 길이 남았지만 여유를 즐길 만도 하다. 설악의 풍경을 담아 단체사진, 독사진 골고루 찍는다. 겨울 설악 서북능선 산행의 긴장도 이쯤에서 풀어도 될 일이다.

a 귀면암의 계단길

귀면암의 계단길 ⓒ 이현상

귀면암은 하산길의 마지막 오르막이다. 귀면암의 오른쪽으로 난 제법 긴 계단을 올라서면 이제 더 이상 숨이 찰 일도 없다. 아마 곧 장군봉이 보일 것이고 계곡을 돌아가면 비선대가 나올 것이다.


a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 이현상

며칠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천불동 계곡의 얼음도 녹기 시작했다. 바람에 쓸려 계곡 얼음 위로 나뒹구는 낙엽과 아직은 서슬퍼런 눈덮힌 얼음장 밑으로 아주 천천히 봄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는 겨우내 품었던 설악의 눈이 녹아내리면 더욱 풍성해질 것이고 마침내 우렁차게 계곡을 달리게 될 것이다. 그맘때쯤이면 우리는 다시 설악을 찾을 것이고….

a 왼쪽이 유선대, 오른쪽이 장군봉

왼쪽이 유선대, 오른쪽이 장군봉 ⓒ 이현상

마침내 유선대와 장군봉이 보인다. 유선대와 장군봉은 지난 여름 일주일간의 암벽등반 훈련지였던 탓에 더욱 각별하게 기억되는 곳이다. 때로는 위압감으로, 때로는 따뜻한 모정으로 다가왔던 그곳.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유선대와 장군봉을 올려다보며 지나온 길들을 되새긴다. 비록 오늘은 떠나지만 아름다운 설악은 영원히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설악가 중에서)



설악산 서북능 운행기록

아래 운행기록은 선두대원의 운행기록으로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포함한 기록입니다.

장수대 출발 08:00 - 대승령 도착 10:10 - 1408봉 도착 12:30 - 귀때기 도착 15:20 - 한계령 갈림길 도착 16:00 - 끝청봉 도착 18:20 - 중청대피소 도착 18:40

중청대피소 출발 08:40 - 희운각 도착 09:50 - 양폭 도착 11:20 - 비선대 도착 13:30 - 설악동 도착 14:20 / 이현상

덧붙이는 글 | 코오롱등산학교 수료생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카페(http://cafe.daum.net/korock41)에서 함께 한 산행 기록입니다.

덧붙이는 글 코오롱등산학교 수료생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카페(http://cafe.daum.net/korock41)에서 함께 한 산행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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