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성폭력예방교육'은 언론용 행사?

교육 시작하자 40명 빠져나가...이미경 성폭력상담소장 "아무리 바쁘다고 하지만"

등록 2006.03.09 20:42수정 2006.03.0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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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열린우리당 여성리더십센터는 9일 오후 중앙당 대회의실에서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전체교육 대상자 의원과 보좌관, 당직자 등 200여명중 이날 교육에 참석한 인원수는 60여명이었다.

열린우리당 여성리더십센터는 9일 오후 중앙당 대회의실에서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전체교육 대상자 의원과 보좌관, 당직자 등 200여명중 이날 교육에 참석한 인원수는 60여명이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성희롱·성폭행 예방교육에 의지와 관심을 가져준 데 감사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의원님들 바쁜 일정은 이해하는데, 교육을 받을 때는 바쁜 일정 좀 접어두고, 복잡한 머리도 접어두고 정말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

9일 오후 '열린우리당 2006 성희롱예방교육'의 강사로 나섰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교육이 끝난 뒤 남긴 말이다.

이날 성희롱예방교육은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과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실시돼 주목을 끌었다. 특히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우리당이 성추행·성폭력추방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최 의원 사건과 같은 성범죄를 예방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첫 번째 자리로 마련돼 그 의미가 컸다.

하지만 이날 교육은 시작할 때 정동영 당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가 참석하는 등 높은 '의지와 관심'으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질적으로 교육에 참여한 사람이나 교육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있던 참석자들을 보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던 교육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성희롱예방교육의 관심도? '200 → 60 → 21'

a 성희롱 예방교육에서 정동영 당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성희롱 예방교육에서 정동영 당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 여성국에 따르면 이날 전체교육 대상자는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관, 당직자 등을 포함해 총 200여명이었다. 이들 중 이날 교육에 참석한 인원수는 60여명이었고, 참석자 중에서도 1시간 동안의 교육을 끌까지 마친 참석자는 21명뿐이었다.

이날 열린우리당 성추행성폭행추방대책위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현장인 신문로의 M음식점을 찾아 현장 검증을 실시하는 등 의원직 사퇴에 강한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매우 저조한 참석률을 보였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당내 올바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올바른 성문화 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서 실시한 '성희롱예방교육'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이날 교육에 낮은 호응을 보인 것에 대해 홍보용 교육이 아니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여성국 관계자는 "이번 교육이 있기 이틀전인 7일 전 의원들을 비롯해 당직자들에게 급히 통보됐기 때문에 많은 의원들이 참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작년에 이어 올해 가을께 실시할 양성평등교육을 '3·8 여성의 날'을 맞아 미리 앞당겨 진행해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성희롱예방교육이 중앙에서 이번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전국 시도당에서도 교육이 계획돼 있다"며 "우리당에서는 양성평등교육을 일상적인 교육으로 많이 하고 있어 양성평등 문화가 잘 정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교육에 참석한 홍미영 우리여성리더십센터 소장도 "성희롱예방교육에 대한 공지를 미리하지 못해 의원들이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예전에 비해 당의장이나 원내대표가 성희롱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였으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가지 못한 점에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또 홍 소장은 "(이번 교육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교재를 발행해 전달하겠다"며 "1회성 교육으로 이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성범죄 예방에 관심을 한참 불러일으키는 각오와 다짐을 하는 대책 마련의 시기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교육이 끝난 뒤 아쉬움을 전했던 이미경 소장은 "교육을 다니면서 교육시간 동안 '대표'들이 같이 호흡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오늘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성희롱성폭행예방에 의지를 보인 것으로도 큰 성과이고 앞으로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지를 더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교육에 참석하지 못한 한 초선 의원은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다"며 "작년에도 교육을 받았고 늘 성희로예방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a 정동영 당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성희롱 예방교육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다.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는 다른 일정으로 이유로 일찍 자리를 떴다.

정동영 당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성희롱 예방교육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다.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는 다른 일정으로 이유로 일찍 자리를 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면 1 : 교육 시작] 정동영 당의장·김한길 원내대표까지 참석, 열기는 뜨거웠다

성희롱예방교육이 시작된 오후 2시께 대회의실에는 교육 대상자인 의원들과 보좌관, 당직자 등 60여명 및 정동영 당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육에 참석한 이들 당 지도부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 20여명도 자리에 함께했다. '성희롱예방교육'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미경 소장은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의 짧은 인사말이 끝난 후 미리 준비한 VTR을 상영했다. 대회의장의 불이 꺼지고 화면 위로 신생아 출산의 장면과 초등학생 아이들이 말하는 '남성과 여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화면이 나왔다.

잠시 후 정 의장을 비롯해 지도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육이 시작된 지 20여분만이었다. 당 지도부는 지방선거기획단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때 취재진도 우르르 밖으로 따라 나갔다. 이후 한 두 명씩 자리를 떴고, 불이 켜지자 자리에 남은 인원은 30여명뿐이었다.

[장면 2 : 교육 중반 이후] 남은 인원은 21명뿐, 이중 의원은 4명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성희롱 없는 직장문화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강의는 계속됐다.

특히 이미경 소장은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회식자리를 비롯해 쉽게 주위에서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술자리에 대해 강연했다. 일예로 여성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지적했다. 이 행위도 '성폭력'에 해당될 수 있다는 등 상식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거리를 참석자들에 던졌다. 이 소장은 "지금 우리 사회가 술자리 성폭력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상식적 수준에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의가 시작된 지 40여분이 지나자 남은 인원은 30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이때까지 노웅래·안민석·김낙순·양승조 의원 등이 남아 있었다.

끝으로 이 소장은 "성희롱의 판단은 가해행위자의 의도는 전혀 상관없고 피해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라며 "내 행동이 성희롱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내 가족이 보고 있어도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이 언행이 생중계된다고 해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성희롱이 아니다"는 말로 오후 2시56분께 교육을 마무리했다.

1시간에도 미치지 않는 교육에 끝까지 남은 인원은 고작 21명. 이중 의원은 홍미영·정성호·윤호중·정의용 등 4명뿐이었고, 김태일 조직부총장 등 당직자와 보좌관뿐이었다.

한편, 끝까지 교육을 마친 정성호 의원(법사위 소속)은 "평소 성범죄에 대해 잘 아는 내용이었지만 새삼 생각을 다시 하게끔 했다"며 "성문화에 대한 사회 인식이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윤호중 의원은 자신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면서 "교육을 받는 도중 '최연희 의원 사퇴 후 무소속 출마'라는 뉴스 메시지를 받아 씁쓸했다"며 "남녀가 공동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a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한 의원과 당직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참석자 중에서도 1시간 동안의 교육을 끌까지 마친 참석자는 21명뿐이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한 의원과 당직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참석자 중에서도 1시간 동안의 교육을 끌까지 마친 참석자는 21명뿐이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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