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기차여행 닮은 책이에요"

[서평] 엘렌 라콘테의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등록 2006.03.30 15:47수정 2006.03.30 15:47
0
원고료로 응원
여든을 훌쩍 넘기신 우리 할머니의 소원은 온종일 기차를 타고 산천을 달려 보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늘 자식들 승용차 뒤편에 (할머니의 말씀을 빌리면) '짐짝'처럼 실려 다니시곤 한다.

a 서울 신촌역사의 모습

서울 신촌역사의 모습 ⓒ 박소영

그런 할머니에게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기차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특히 매일 오후 6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시그널('칙칙폭폭' 기차 달리는 소리)이 들려올 때는 할머니의 시선이 잠시 고정된다.


그리고 손녀인 내게 "기차를 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단 때문에 기차여행을 포기하신 지 오래다.

할머니에게 기차는 어떤 의미일까? 불편한 수족에 자유를 주어 산천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지 싶다. 승용차와는 거리가 멀던 지난 시절, 기차는 할머니가 이용했던 자연스런 이동수단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기차는 곧 자유이리라.

나는 할머니의 마음속 기차여행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한 권을 선물해 드렸다. 엘렌 라콘테의 <헬렌 니어링, 또 다른삶의 시작>이다. 한 사람의 지난날과 현재를 마치 기차여행 하듯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서다.

노년은 칙칙하다고?

a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표지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표지 ⓒ 두레

'엘렌 라콘테'는 '헬렌 니어링'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사람으로 13년 동안 헬렌의 삶을 가까이 지켜봐 온 친구이다. '헬렌 니어링'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삶에 대한 일화와 대화들, 일기를 통해 특별한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헬렌'의 삶은 마치 아주 느린 속도의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초록의 자연과 일하던 손을 멈춰 기차에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좋은 삶'은 '좋은 죽음'이어진다는 메시지로 90평생을 아름답게 살다간 우리의 스승으로 남게 되었다.


"어영부영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 말고 딱딱한 음식을 먹어라. 섬유질 음식을 먹어라"라고 했던 헬렌은(노쇠한 육체를 '불쌍하고 가련한 빛'이라고 하였다) 주스로 연명해야 할 처지가 되었을 때도, 부단히 노력 하며 침착하게 자신의 육체에 적응해 나갔다.

그녀는 삶이 그녀에게 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이용하는 것이 그녀의 소임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으므로 삶에 복종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 본문 중에서

낙천적이며 영특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삶의 여정에서 그녀의 지론은 확고하다. '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이 누리는 삶'과 '단순 소박한 삶'이 바르고 행복한 삶이라고. '좋은 삶'의 계획을 따라 '좋은 죽음'에 대한 계획을 차분히 준비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성숙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마음과 영혼을 죽음에 대비해 준비시켰고, 다른 종류의 삶을 살 또 한번의 기회로서 죽음을 환영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더 큰 삶'이 자기에게 품고 있는 선의를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세상의 일들을 떨쳐 버리고 자신을 가볍게 함으로써 그 여행에 나설 준비를 했다.- 본문 중에서

어떠한 고통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던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죽음을 맞이했다. 어떠한 고통의 흔적도 없이 지난 91년간 자신과 함께하던 몸을 버리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몸의 해방과 더불어 다음 생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흔히들 인생을 기차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언젠가 책에서 퇴임을 앞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10대에는 기차가 10km로 천천히 달려 한가롭게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간이역에서 내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 적 여유가 있었지만… 40대부터는 종착역을 향해 곤두박질하기 시작하더라는 내용이었다.

나의 생각에는 지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날들, 즉 노년기야 말로 10대의 기차 여행이 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창밖으로 비치는 빛을 따라 '시간을 넘어서' 그동안의 삶과 또 다른 삶을 만날 수 있는 경계선을 찾아 '이해'할 수 있는 시간 여행이 될 수 있으리라.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 헬렌 니어링의 깊은 영성과 아름다운 노년

엘렌 라콘테 지음, 황의방 옮김,
두레, 2002

이 책의 다른 기사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