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희 지지' 현수막이 싹 사라졌다

[동해 르포] '20일 회견' 그후... "성추행이요? 흐지부지 됐드래요"

등록 2006.03.25 17:57수정 2006.03.2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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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0일 최연희 의원의 '6분간의 기습 기자회견'이 있은 뒤 사흘이 지난 23일 최 의원의 지역구인 동해를 찾았다. 사진은 '한나라당' 글자 대신 '국회의원'으로 바뀐 사무실 간판.

지난 20일 최연희 의원의 '6분간의 기습 기자회견'이 있은 뒤 사흘이 지난 23일 최 의원의 지역구인 동해를 찾았다. 사진은 '한나라당' 글자 대신 '국회의원'으로 바뀐 사무실 간판. ⓒ 오마이뉴스 김윤상


"최연희 의원 성추행이요? 사과 발표 이후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요. 흐지부지 됐드래요. 가끔 뉴스에 나오면 이야기할 정도이지,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도 이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요."

전국을 떠들썩하게 흔든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지 한달. 최 의원의 지역구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서 동해까지 300 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뒤 동해시청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의 반응이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동해시를 찾은 것은 최 의원이 '6분간의 기습 기자회견'을 하고 사흘이 지난 23일. 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다만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만 사과했다.

이에 대한 다른 동해 시민의 반응도 처음 만났던 시민과 마찬가지. "이미 '사과'를 했는데 굳이 더 왈가왈부해서 무엇 하냐"는 것.

동해 시민들은 낯선 외지인, 특히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최 의원과 관련된 물으면 손사래를 치거나 겸연쩍은 표정으로 답변하길 피했다. "이젠 관심 없다"며 걸음을 재촉하거나 하던 일에 몰두했다.

[#1 동해시 거리] "최 의원 있잖아요..." - "식사나 하드래요"

a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이후 잠적했던 최연희(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했지만, 의원직은 계속 유지할 의사를 밝혔다.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이후 잠적했던 최연희(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했지만, 의원직은 계속 유지할 의사를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동해시청 앞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둘러봤다. 앞서 동해를 찾았던 기자들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있었다.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주장에 맞서 그를 지지하고 '의원직 사퇴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동해와 삼척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23일 동해 거리에는 최 의원을 '지지'하는 현수막이 보이질 않았다. 대신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예비 후보자들의 홍보 현수막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해서 동해시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갔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자회견 전에는 '의원직 사퇴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어 하루에도 수십개씩 떼어냈다"며 "사과 발표 뒤에는 하나도 걸리지 않았고 이젠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젠 조용해졌고 거의 (논란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선관위 관계자는 "기자회견 전까지는 사퇴해야 된다, 안된다를 놓고 시민들 분위기도 반반이었다"며 "하지만 기자회견 이후에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한마디로 침묵 중"이라고 전했다.

최 의원 사무실이 위치한 동해시 천곡동의 한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넌지시 "최 의원님 있잖아요…"라며 말을 건넸다. 말을 꺼내자마자 그 아주머니는 대뜸 "식사나 하드래요"라면서 표정을 굳히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선관위 관계자의 말대로 이야기하길 꺼려했다.

이런 반응은 동해시청의 한 공무원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연희 의원'이란 말만 나오면 대답하기 불편해 했다. 그나마 동해시 보건소에서 만난 시민은 "우리가 말해서 뭣하겠어요?"라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 차를 타고 7번 국도를 따라 삼척시로 향했다. 동해시와 마찬가지로 최연희 의원과 관련된 현수막은 눈에 띄질 않았고, 시민들은 각자 자신의 일에 분주했다.

[#2 집 앞] '딩동- 딩동-'... 집에 누군가 있었다

a 23일 최연희 의원 자택에는 최 의원의 형이 머물고 있었다.

23일 최연희 의원 자택에는 최 의원의 형이 머물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김윤상

다시 동해시로 돌아와 최 의원의 자택을 찾았다. 잠적 22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던 최 의원이 기자회견 뒤 기자들을 피해 동해 집에 머물면서 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동해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였다. 창문을 열면 바다와 백사장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 최 의원의 집은 10층이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응답이 없었다. 인기척도 없었다.

두번, 세번. 문은 두드리지 않고 벨을 눌렀다. 네번째 벨을 누르려는 찰라 문이 열렸다. 혹시 하는 기대감이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만들었다. 앗! 최 의원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훨씬 나이가 들어보였다.

그 분은 <오마이TV> 카메라를 보자 바로 기자임을 눈치 채고는 자신을 최 의원의 형이라고 소개했다.

"그때(성추행 사건) 이후 한번도 집에 온 적이 없다"

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다시 벨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답변이 없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실제로 최 의원은 한번도 동해 자택에 오지 않은 것일까? 아파트 경비를 만나 최 의원을 봤는지 물었다.

그는 '최 의원을 봤다, 못 봤다' 등의 답변을 하기 전에 묻지도 않았는데 "참 훌륭한 분이고, 성실하고, 여기 동해지역에는 그만한 일꾼 없다"는 말부터 꺼냈다. 이어 "사퇴해도 된다, 다시 나와도 백번 (의원 당선) 된다"며 "그 사건 이후에 여기에 안 왔다,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기자와 아파트 경비원이 대화하는 모습을 본 한 아주머니가 발걸음을 멈추고 다가왔다. 그 아주머니는 "기자 양반들, 그만들 좀 우리 최 의원님 뭐라고들 하드래요. 술 취해서 실수한 것이지, 우리 최 의원님은 절대 그럴 분 아니다"며 거들었다.

거리와 식당, 시청, 보건소 등에서 만난 동해 시민들과 달리 최 의원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은 최 의원을 적극 옹호했으며 최 의원이 "우리 지역 일꾼"임을 강조했다.

[#3 의원 사무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항의전화 걸려온다"

a 동해시 천곡동에 위치한 최연희 의원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전경.

동해시 천곡동에 위치한 최연희 의원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 전경. ⓒ 오마이뉴스 김윤상

집을 나서 찾은 곳은 최 의원 사무실. 멀지 않은 곳에 '국회의원 최연희 사무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나라당' 대신 '국회의원'이란 글자가 이름 앞에 새롭게 붙여진 게 확연히 드러났다.

최 의원이 당적을 버리면서 사무실 간판에서 '한나라당'이란 문구를 뺏지만, 아직까지 '한나라당 동해시 지역사무소'였다. 때문에 얼마 전까지 최 의원의 '자진사퇴'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의 항의방문도 받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렸다. 왼쪽 편에 '성폭력상담소' 문이 있고, 그 옆에 최 의원 사무실 문이 있다.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여직원은 갑작스런 방문에 경계의 눈빛을 놓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일한지 두달 됐다는 이 직원은 "하루에도 수십통씩 항의전화가 걸려오는데 '너도 최 의원에게 성추행 당한 것 아니냐'는 등 별별 비방과 협박성 전화가 많다"며 "발신번호가 다른 지역인 사람들이 그런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 빼곡이 적은 통화내용을 보여줬다.

이어 "사건이 있은 후 (최 의원은) 사무실에 들리지 않았고 사무국장도 최 의원과 연락이 안 되는 것 같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줄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데 언론에서는 계속 최 의원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시 주인 없는 사무실을 둘러봤다. 한 쪽에 진열된 많은 감사패와 상패.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빈 책상과 의자가 횡한 느낌을 주었다.

[#4 주변 이야기] "술자리에서 최 의원 얘기 별로 안해"... "버티면 산다"

최 의원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은 5층짜리 빌딩. 같은 건물을 쓰면서 오랫동안 최 의원을 봤을 사람들에게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자 했다.

우선 찾은 곳은 최 의원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 업소. 건물 벽에는 '동해'라는 간판만 달려 있었다. 그런데 3층으로 내려와보니 '안마시술소'였다. 그런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내부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다음으로 건물 1층에 있는 'O' 단란주점을 찾았다. 마침 혼자서 저녁식사를 하던 여종업원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최근 최 의원을 본 적이 없다는 여종업원은 "최 의원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있다고 술 마시면서 최 의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며 "이젠 사건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동해시 민주노동당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최 의원이 법정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더욱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며 "성범죄 재판이 끝나려면 2~3년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버티다보면 의원 임기를 마치게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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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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