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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젊은이들

독립장편영화 <꽃비> 대본 작업 현장

06.04.03 15:15최종업데이트06.04.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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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겪은 광주가 고향인지라 이런 사건에 더욱 관심이 있었어요.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최윤환)" "식목일 이틀 전에 일어난 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이승민)" 때 : 4월 1일 곳 : 동국대 내 한 강의실 모인 사람들 : 대학생 및 20대 젊은이들
 영화 <꽃비> 연습에 한창인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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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고사위기라는 캠퍼스 내 역사학회나 사회과학 동아리가 4월 초순이면 연례적으로 여는 '4·3사건 관련 세미나'를 떠올릴 만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4·3사건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맞지만 사건 이후 나이로는 '2세대'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인 이유는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다. 영화 <꽃비>의 대본 작업 현장. <꽃비>는 단편 <섬의 노을>(2000)로 SK텔레콤영화제 대상, 부산영상제 대상을 받았던 정종훈(26) 감독이 4·3사건을 소재로 만드는 장편독립영화다. 그의 전작 <섬의 노을> 역시 4·3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꽃비'는 그 확대판으로 볼 수 있다. 17일 제주 현지 크랭크인을 앞두고 사전 대본작업에 임하는 배우들은 작품 소재인 4·3사건이 다들 생소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 출신의 감독을 빼고는 대부분이 서울, 광주 등 육지 출신들이기에 '바다를 사이에 둔 거리만큼'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왼쪽부터 한이빈씨, 김두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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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 역의 김두진(24)씨는 "처음에는 (4·3사건은)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이런 일이 사실이라는 말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제주 출신인 정 감독이라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 배우들의 시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4·3사건에 눈뜬 계기는 지난 97년 11월 홍익대 인권영화제에서 <레드헌트>(감독 조성봉)를 상영한 혐의로 서준식씨가 구속되면서부터였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정 감독은 직접 편집과정에도 참여했던 이 작품이 사실에 기초한 영상물임에도 '이적표현물' 논란에 휩싸이는데 적잖이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이후 여러 역사책을 뒤져봤지만 변변한 자료가 없었고 특히 교과서에는 한 줄 정도로 간단히 서술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영화연출이었기에 이 사건을 직접 영상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처럼 직접적으로 당시 상황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사건 발생 이후 20년이 지난 60년대 말로 설정했고 공간적 배경 역시 고 2, 3학년이 통합수업을 하는 제주도 내 작은 학교로 잡았다. 감독은 당시 실상을 고발하고 찬반 격론을 일으키기보다 '에둘러 말하기'를 통해 관객들이 그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관객들은 반장선거를 통해서 학생들 사이에 생겨나는 미묘한 갈등 상황을 볼 겁니다. 또 어떤 분은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학원물이겠거니 하시겠지요. 하지만 영화를 꼼꼼히 뜯어보면 4·3사건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각 나라의 각축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순수한 제주도를 상징하는 여주인공 서연(한이빈 분)의 첫 대사와 마지막 대사가 모두 '무사?('왜'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라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학생 동일(홍기준 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대사가 제주방언이라 울상을 짓는 배우들이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진호 역의 구성환(26)씨는 "처음 대본을 받아들었을 때 외국어를 공부하는 심정이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무고하게 처형당한 '백조일손' 양민학살터를 미리 둘러보고 왔다는 도진 역의 육동일(25)씨는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한결 진지해졌다"면서 "그래도 결국 영화인만큼 작품 자체를 즐겨달라"고 말했다.
 4.3사건의 실상을 안 배우들은 대부분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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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탤런트 고두심씨를 비롯해 러시아 유학파 촬영감독 박형룡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만수' 역으로 인기를 모았던 아역탤런트 출신 육동일씨 등이 힘을 보태면서 영화 촬영은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영화 <꽃비>는 두 달간 제주 전역에서 촬영이 진행되며 올해 말 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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