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피는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내가 오늘 행복한 이유

등록 2006.04.05 10:00수정 2006.04.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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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학교에 핀 꽃

학교에 핀 꽃 ⓒ 안준철

어제 점심시간에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완연한 봄이 찾아온 학교 교정과 동산에 무슨 꽃들이 피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목덜미를 따사롭게 간질이는 햇살이 너무 좋아 교무실에 앉아 있기가 좀이 쑤셨던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야외수업을 하자고 졸라대는 아이들도 있지만 학교에서 그런 낭만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학교에 피는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그 피는 모양과 습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니 꽃구경을 나왔다가 자칫하면 아이들 생각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특히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봄 날씨에 필까 말까 망설이며 몸을 앙다문 꽃들을 보면 봄 햇살을 어디서 좀 꾸어다가 한 사나흘이라도 쬐어주고 싶은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의 배려도 과하면 탈이 생기는 법이다.

그날 오후, 나는 보충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있는 한 남자 아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한참 자다가 봉변을 당한 녀석보다는 일을 저지른 내가 더 놀라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서 있었다. 처음부터 손에 힘이 갔던 것은 아니다. 두어 차례 등을 토닥이며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잠깐 상체를 드는 시늉만 할 뿐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a 학교에 핀 꽃

학교에 핀 꽃 ⓒ 안준철

오늘 아침, 나는 출근을 하자마자 그 아이를 찾아갔다. 마침 교실에 있는 아이를 불러내어 어제의 일을 사과하며 악수를 청했다.

"어제 선생님이 잘못했다.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그런 아까운 시간에 네가 잠을 자고 있어서 화가 났었다. 아무튼 미안하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는지 풀죽은 얼굴로 서 있던 아이도 나의 사과가 의외였겠지만, 나 역시 녀석의 씩씩하고 선선한 태도에 적잖이 감동이 되었다. 나는 봄 햇살을 한 됫박이나 퍼마신 듯한 기분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제 왜 그렇게 잠을 잤었니?"
"예. 공연 때문에 춤 연습을 하고 올라왔거든요."
"그래도 수업을 받으려고 올라왔는데 몸이 많이 피곤했던가 보구나."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a 학교에 핀 꽃

학교에 핀 꽃 ⓒ 안준철

그렇게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남학생 교실을 돌아서 나오는 길이었다. 여학생 교실 쪽에서 두 명의 아이가 나를 보더니 쪼르르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우리 반 애들이 뻑 갔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수업시간에 절대로 안 떠들 거예요."
"아, 난 또 뭐라고."

어제 2교시 수업시간, 평소에도 수업태도가 매우 산만한 두 아이가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여전히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의 태도가 더 심각했는데, 가령 손거울을 보면서 눈을 까뒤집는다든지 하다가 내가 주의를 주면 아주 씩씩하고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알았다고 해놓고는 불과 이삼초가 못 되어 다시 거울을 보고 눈을 까뒤집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도 화를 낸다든지 하면 일이 더 어렵게 될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선생님 제자 중에 기억력이 8초인 아이가 있었어. 어찌나 주의가 산만하던지 친구와 장난을 치면서 떠들다가 선생님이 혼을 내고 못하게 하면 잠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다시 떠드는 그 시간이 딱 8초야. 잠자리가 꼭 그렇거든.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도망갔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딱 8초거든. 그래서 그 아이 별명이 잠자리야. 그런데 넌 8초가 아니라 딱 2초다. 봐라 지금도 딴 짓하고 있잖아."

a 학교에 핀 꽃

학교에 핀 꽃 ⓒ 안준철

어제는 그 두 아이 말고도 몇 아이가 더 합세를 하여 수업분위기를 흐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수업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나는 두 아이를 불러냈다.

"반장 매를 가져와라. 너희들은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다."

반장은 매다운 매가 눈에 보이지 않는지 어떤 매를 가져와야하느냐고 물었고, 내가 빗자루라도 가져오라고 하자 플라스틱 빗자루를 한 자루 내 앞으로 가져왔다. 사실 나는 아이들을 때릴 생각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손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치는 시늉만 하는 이른바 '빈 매'를 때릴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웃든 말든 시치미를 뚝 떼고 열 대 정도 힘껏 내리치고 나면 웬만한 아이들은 행동이 달라지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상황으로 보아 그 정도의 처방으로는 약효는커녕 썰렁한 한 편의 코미디가 되고 말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일단 아이에게 손을 내밀라고 했고 아이의 손 옆에 내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내 손에만 매가 닿도록 한 대를 내리쳤다. 그리고 다음 아홉 대는 아예 내 왼손만을 겨냥해 힘껏 내리쳤다. 한 아이의 매를 그렇게 끝내고 다음 아이도 같은 방법으로 열 대를 내리쳤다.

교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자리에 들어간 두 아이도 충격을 받았는지 감동을 먹었는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몇 아이의 눈에서는 이슬 같은 것이 반짝이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마치 처음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갓난아이처럼 나를 뚫어지라고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밉지는 않았지만 이런 촌스러운 짓을 연중행사처럼 해야만 하는 내 신세가 못마땅할 뿐이었다.

a 학교에 핀 꽃

학교에 핀 꽃 ⓒ 안준철

"내가 여러분을 때리지 않는 것은 습관이 될까 무서워서 그래요.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이 습관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매를 대면 여러분이 선생님 마음을 이해하고 잘 하지도 안잖아요. 한참 삐쳐 있든지 아니면 매가 무서워 말을 듣든지 하겠지요. 그러면 인간관계는 깨지고 말아요. 선생님도 이런 거 정말 싫어요. 너무 촌스럽잖아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사람이 사람 말을 들어야 사람인 거예요. 선생님도 여러분의 말에 귀 기울려고 하잖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해요."

그렇게 한 바탕 쇼를 벌이고 교무실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두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손에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듯한 커피가 한 잔 들려 있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아니, 그 전에 내가 너에게 먼저 사과할 일이 있다. 너에게 기억력이 2초라고 했던 거. 봄 편지에 그렇게 썼던데? 그 말이 기분 나빴다고. 물론 농담이었지만 사과할게."
"아니에요, 선생님. 저도 그냥 농담처럼 쓴 거예요."
"그래? 그렇다면 고맙고. 그리고 이렇게 찾아와 준 것도 고맙고 훌륭해."
"정말 죄송해요. 앞으로 잘 할게요."

여기까지가 어제 오전에 있었던 일의 전말이다. 그리고는 점심시간이 되어 꽃 사진을 찍으러 다녔으니 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게 느껴졌을 법도 하지 않은가. 그런 자연의 세례를 받고서도 오후에는 피곤해서 잠이든 한 아이의 등짝을 여지없이 내리치는 불상사를 저지르고 말았지만 말이다.

a 학교에 핀 꽃

학교에 핀 꽃 ⓒ 안준철

지금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그것은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손을 내민 까닭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교사도 사람인데 왜 교사만 참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행복한 것이 억울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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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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