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전에 '인종차별'이 없어질 그날은 언제?

[서평]타하르 벤 젤룬의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홍세화 옮김)

등록 2006.04.07 16:47수정 2006.04.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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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하인스 워드 모자의 고국 방문을 통해 인종 차별 문화의 심각성을 살갑게 느끼고 있다. 앞서 국제축구연맹이 인종차별 행위를 뿌리뽑기 위해 '승점 삭감' 징계를 도입한다는 보도를 접하고도 똑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기는 했지만 이번만큼 와 닿지는 못했던 것 같다.

a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제작된 공익광고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제작된 공익광고 ⓒ 공익광고협의회

모든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적인 모습, 특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고통일 것이다.


그 고통을 헤아려보자는 공익광고 한 편이 퍼뜩 떠오른다.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공익광고협의회가 제작한 '이제 크레파스에 살색은 없어졌습니다'가 그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차별했는지를 방증하는 카피다.

하지만 광고의 '계도'(?)에도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의 크레파스에는 여전히 '살색'이 존재한다. 아이에게 살색이 아니라 살구색이라 힘주어 가르쳐 보지만 살색이라 적혀 있는 크레파스의 잉크를 지우기엔 역부족이다.

여기 인종차별 문제를 공감 어린 문체(아버지와 딸 사이의 대화 형식)로 적어 내려간 책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하려 한다. 우리 함께 읽어 '인종차별'이란 말이 낯설게 만들어 보자.

세계적으로 많이 번역된 프랑스어권 작가 중 한 사람이며 '모로코의 양심'으로 불리는 타하르 벤 젤룬의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이다. 현재 <한겨레>의 시민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는 홍세화씨가 옮겼다.

"서로 다른 까닭에 서로 존중해야지!"


a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 표지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 표지 ⓒ 상형문자

아이들의 본성은 인종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 어떤 아이도 인종주의자로 태어나지 않는단다. 그 아이의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인종주의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 심어주지 않는다면 인종주의자가 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지.”(중략)

아이들은 아직 형성 과정에 있고, 그래서 바뀔 수 있고 또한 배움에 열려 있거든. 인종 간의 불평등을 믿는 어른은 설득하기가 어렵지만 아이들은 변화시킬 수 있어. 학교는 그것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야. 인간은 매우 다양한데 그 다양성은 하나의 풍요로움이지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중략)<본문중에서>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참 부끄러웠다. 나의 부주의로 아들 녀석은 엄마와 함께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절단된 손에 대한 사연을 TV로 시청하게 됐는데, 아이는 대뜸 "사장은 나쁜 아저씨!"라고 소리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열악한 노동 상황에 외국인 노동자를 방치한 사장은 아이의 말마따나 '나쁜' 사람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에 사장과 노동자 사이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혹여 한국인은 나쁜 사람이고 외국인 노동자는 착한 사람이라는 '인종차별'의 생각이 자리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열 살 난 딸과 대화하는 아빠(저자)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인종주의의 대물림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시종일관 인종차별의 역사와 그 부당함에 대해 일갈 하면서, 특히 '야만의 색깔들'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인종차별은 인종주의자들이 정치적 권력수단으로 이용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만이 존재할 뿐이다. 국제연합은 인종 대신 종족집단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인종이라는 말 자체에는 서열을 나누기 위한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며 '인종'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편견만 담고 있다고 꼬집기도 한다.

저자는 딸에게 인종주의자들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인종주의자의 심리를 이렇게 말한다.

인종주의자들은 자유를 사랑하지 않아.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해. 다름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자유는 바로 자신만의 자유야.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감히 멸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그 자유 말이다.

저자는 끝으로 딸에게 인종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은 일상적이어야 한다며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사례를 시작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부탁한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언어 작업에서 먼저 해야 하며 인간의 다름은 아름답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홍세화·진중권의 목소리도

이 책엔 보너스 두 개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 책을 번역한, '톨레랑스'의 전도사 홍세화씨는 톨레랑스의 반대 개념인 '앵 톨레랑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글과 함께 '인종주의 관련 토론'을 양념으로 곁들여 놓았다.

더불어 대표적 논객 중 한 사람인 진중권씨의 정돈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인종주의는 사회적으로 좌절을 맛본 개인이나 집단을 달콤하게 위로해 준다. 개인들을 우월한 인종의 범주로 분류하여 그 인종을 다른 인종 위에 올려놓을 때, 개인은 이 우수한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가운데 자기의 개인적 좌절감을 잊어버릴 수가 있지 않은가(중략)" 등등.

나와 남이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서로 존중해야 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하는 책이다.

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 - 씨큐문고 1, 마주보기 시리즈 1

타하르 벤 젤룬 지음, 홍세화 옮김,
상형문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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