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아픔은 장애인만 안다?

'점자 아동도서 보급 후원' 전제덕 콘서트 관람 후기

등록 2006.04.12 09:03수정 2006.04.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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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여성 앵커 '누리아 델사스'를 만났다.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델사스는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종횡무진하는 경력 5년의 베테랑 아나운서다.


그녀는 원고 대신 음성번역기를 이용해 녹음된 원고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외운다. 제작진의 수신호를 곧바로 받을 수 없어 수신기를 귀에 꽂고 현장의 흐름을 파악한다. 좀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방법으로 간판 앵커가 된 그녀의 노력이 신기하다.

a 재즈 하모니카 연주가 전재덕 씨가 앵콜 요청에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재즈 하모니카 연주가 전재덕 씨가 앵콜 요청에 노래를 부르고 있다. ⓒ 박소영

하지만 나는 그녀보다는 그녀를 이 같은 성공으로 이끈 방송사의 배려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국내의 열악한 장애인 복지 현실이 겹치면서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한 방송사를 시작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으며, 무엇보다 현 정부가 장애인 복지 우선 정책을 펴고 있긴 하다. 하지만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 여동생 주변엔 장애인들이 많다. 장애인 복지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자기 남편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저런 일로 장애인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몹시 낯설었던 '장애인'을 살가운 이웃으로 느끼고 있다. 이제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선천적 장애인보다는 후천적 장애인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를 볼 때면 '장애인'이란 딱지 자체를 아예 붙이지 않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식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는 이유다.

이제는 장애인 친구도 몇몇 사귀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한 부부는 밤이 돼도 전등을 켜지 않는다. 전등을 켜더라도 어둠밖에 보이지 않으니 굳이 전등을 밝힐 이유가 없어서다. 나에겐 그 어둠이 그들의 처지로 여겨져 더없이 슬펐지만, 이들 친구는 내게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워 보인다.


그런데 놀러 갈 때마다 냉장고 속을 들여다 보면 유통기한이 지난 냉동식품들로 가득하다. 낡은 생활집기들은 때때로 교체하면 되겠지만, 음식을 보관하고 처리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조리하기가 불편하니 유통기한을 넘기기 일쑤이리라. 그때마다 장애인 한 사람에게 두세 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우미로 봉사한다는 서구 선진국이 부러워지곤 한다.

이 부부는 법무사들로부터 녹취 작업을 의뢰받아 생계를 이어간다. 물론 스스로 일거리 수주를 위한 영업을 할 수 없어 자원봉사자의 손을 빌린다. 다른 시각 장애인들은 안마사나 시각장애인학교 교사, 악기 조율사 등으로 삶을 꾸려간다.

하루 신작 도서 50여만 권 중 점자 도서는 8권꼴


다른 장애인과 달리 시각 장애인은 고학력자가 많다. 점자를 기반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점자 도서의 태부족으로 여의치 못한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하루 신작 도서 발매수는 50여만 권이나, 이들 도서 가운데 점자 도서는 8권에 불과하다는 통계다.

a 어둠 속 콘서트는 내 마음을 환하게 만들었다.

어둠 속 콘서트는 내 마음을 환하게 만들었다. ⓒ 박소영

최근 나는 장애인, 특히 시각 장애인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줄 콘서트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점자 아동 도서 마련을 위한 콘서트'가 그것이다. 재즈 하모니카 연주가로 잘 알려진 전제덕씨의 무대여서 더욱 의미심장했다. 그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으니 말이다.

콘서트 안내지는 점자로 만들었으며, 콘서트 에필로그로 점자 도서 필요성을 역설하는 영상이 상영돼 순수 콘서트가 아닌 '목적' 콘서트임을 알려주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전제덕씨가 장애인임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장애인의 아픔은 장애인만 아는 것일까' 하는 답답한 마음을 추슬렀다.

3살 때부터 하모니카를 입에 달고 다녔다는 전제덕씨. 소문대로 그의 음악적 기량은 놀라웠다. 리듬감 넘치는 '싱코페이션(당김음)'의 긴장감과 다채로운 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한 프레이즈는 호흡을 멈추게 하는 듯했다.

스태프의 도움으로 무대에 앉아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다 흥이 날 때엔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하모니카를 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곳곳에서 환호성을 내지를 정도였다. 나도 옆자리에 앉은 시각 장애인과 한마음이 되어 손뼉을 쳤다.

하모니카 연주 솜씨에 더하여 노래 솜씨도 일품이었다. 전제덕씨는 앙코르 요청에 존 레논의 '이매진'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 것이다. 감탄사와 박수갈채를 몰고왔다.

전제덕의 음악은 앞을 볼 수 없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음악적 기반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얻어진 예술의 성과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전제덕씨는 장애인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려 주었으며, 서로 부족함을 메워주는, 희망적인 사회의 도래를 꿈꾸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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