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별명은 '쑥캐남'

쑥쑥 크는 내 남편 이야기-첫 번째

등록 2006.04.29 10:21수정 2006.04.29 11:2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보, 오늘 바깥 날씨가 어때? 황사가 온 건 아니겠지?"


바깥은 아직 어둑어둑 하건만 남편은 아침 외출을 서두릅니다. 남편을 따라 내게는 낯선 땅인 이곳 강진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은 작업복 차림에 겨울 모자를 둘러쓰고 아침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그렇게 나간 남편은 1시간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더니 나 혼자서 아침밥을 쑥국에 말아 먹고 출근 준비를 서두를 때가 되어서야 들어옵니다.

"아니, 당신은 마누라 데려다 놓고 아침마다 이렇게 혼자 밥을 먹게 해요?"
"조금 더 있으면 더 캐고 싶어도 쑥이 너무 자라서 좋은 쑥을 얻기 어려우니 며칠만 참아요."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캐온 쑥을 신문지 위에 펴놓고 물기를 가시게 하느라 남편은 연신 쑥을 매만집니다. 그렇게 널어놓은 쑥은 출근길에 회사로 가져가곤 한답니다. 남편이 이렇게 봄만 되면 쑥을 캐기 시작한 것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시골이 고향인 남편은 두고 온 고향을 생각하며 아침마다 나들이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a 이른 아침 남편을 따라온 쑥을 살짝 씻어서 널어놓은 남편 솜씨

이른 아침 남편을 따라온 쑥을 살짝 씻어서 널어놓은 남편 솜씨 ⓒ 장옥순

몇 년 전에 주말이면 쑥을 캐러 나가자고 조르던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 나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편하게 쑥을 캐는 남편과 달리 나는 투덜거리기만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밀린 집안일에 세탁물 다림질하는 일, 청소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안 일들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가하게 쑥을 캐는 일에 마음을 쓸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새 봄만 되면 꽃샘추위에도 마다하지 않고 몇 시간씩 쑥을 캐러 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쑥을 캐다가 날마다 쑥국을 끓이게 했고 집안 형제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쑥이 많을 때는 쑥즙까지 내어서 여름철에 두고 먹을 만큼 쑥에 쑤욱 빠진 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a 쑥을 캐며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남편

쑥을 캐며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남편 ⓒ 장옥순

같이 따라가 친구 해주며 같이 쑥을 캐지 못하지만 애기쑥으로 된장국을 끓여서 봄이 다 가도록 쑥국에 맛을 들여서 사는 나도 이젠 쑥을 아끼는 애호가가 되었답니다. 오랜 동안 살림을 하며 먼 길을 달려 출근하느라 아침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동안 상한 위와 장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바로 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에만 쑥을 캐던 남편이 더욱 깊이 쑥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2월 말부터였습니다. 남편은 대기업의 부장으로 23년 째 근무하고, 보험회대리점 대표를 맡아 강진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당시 나는 구례에서 근무했고 그는 집을 떠나 멀리 강진으로 나가는 바람에 나와는 정반대로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진 타향에서 홀로 밥을 끓여 먹고 싸늘한 빈방에 들어 긴 밤을 보냈던 2005년은 아마 그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1년 동안 주말부부로 구례와 강진에서 광주 집으로 달려가며 우리는 함께 살 희망을 품고 서로를 위로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5년 2월부터 시작된 쑥캐는 남자(쑥캐남)가 된 남편은 주말에 광주에 오면 으레 쑥을 한 바구니씩 캐서 월요일에 강진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가져 간 쑥으로 찰떡을 해서 출근하는 20여 명의 사원들에게 나눠주는 기쁨을 낙으로 삼으며 정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보험회사대리점 대표이며 사원들은 모두 여성 설계사들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연세 높으신 분은 어머니뻘도 계시지만 모든 설계사들께서 가족같은 분위기로 친숙하게 된 데는 강진 특유의 따스하고 순박한 인심에다 설계사를 떠받들겠다는 남편의 마음가짐이 상승작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손이 시린 들판에서 찬 바람을 맞으면서 설계사들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힘든 것에 비한다면 자신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섬기고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 일하고 들어오면 출출할 때 쑥떡으로 몸과 마음을 채워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손톱 끝이 까맣도록 캐낸 쑥을 다듬어서 쑥떡을 주문하러 가면 떡집 주인도 의아해 하면서도 사원들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에 감동하여 설계사를 돕는 계약까지 체결하기도 했답니다.

a 남편의 단골집인 강진읍 평동떡방앗간과 주인.

남편의 단골집인 강진읍 평동떡방앗간과 주인. ⓒ 장옥순

지난 2005년 부임하던 봄에 남편이 직접 쑥을 캐서 사원들에게 쑥떡을 선물한 것이 다섯 번에 이르니 설계사님들도 감동하여 짧은 시간 동안에 가족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a 쑥에 취한 남자

쑥에 취한 남자 ⓒ 장옥순

이제 그는 새로운 땅 강진에 안착하여 두 번째 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원들의 입에서, "우리 대표님이 쑥떡을 해오실 때가 되었는데…"하며 쑥떡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남편은 공해와 오염이 없는 곳에서 쑥을 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다르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보험을 통해 가족사랑을 전파하러 방문하시는 우리 설계사님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과 정성을 전달하는 일이다. 유해식품이 범람하는 이 때, 무공해 웰빙식품인 쑥을 건강증진에도 좋은 제철 식품으로 대접하고 싶다. 그러니 쑥을 캐는 장소도 선별해야 한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길가나 농약에 오염되기 쉬운 논가나 밭두렁을 피해 산중턱이나 골짜기에서 캐려면 멀리 깊숙이 들어가서 캐야 한다.'

요즘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쑥떡은 물론 방금 캐온 쑥을 밀폐용기에 담아서 편지글까지 뚜껑에 써서 설계사님들에게 선물합니다. 우리 집 '쑥캐남'의 사원사랑에 샘이 나지만 그가 정을 붙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서 지면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의 사업이 쑥을 닮아 쑤욱쑥 자라리라 확신합니다. 사원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함께 성장하려는 남편의 마음을 사원들이 믿고 따라준 덕분에 상복이 터졌으니 성공의 신호탄이 오른 것입니다

a 한 명의 현모는 백명의 교사에 필적한다며 일하는 어머니상을 소중히 하는 글을 담은 쑥선물

한 명의 현모는 백명의 교사에 필적한다며 일하는 어머니상을 소중히 하는 글을 담은 쑥선물 ⓒ 장옥순

남편은 낮은 곳에 쭈그리고 앉아서 쑥 한 포기마다 사원들을 생각하다 보면 아무런 잡념이 없는 '무아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쑥예찬론자가 다 된 남편의 모습이 위대하게 보이니 그 남편에 그 마누라이지요? 공부 시간에 배가 고프다는 우리 1학년 아이들에게 쑥떡을 주고 싶다면 두말 하지 않고 넣어주는 남편 덕분에 저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답니다. 선생님이 엄마같다고 하니까요. 저도 남편이 사원들을 소중히 하는 것처럼 우리 반 아이들을 잘 받들 수 있도록 쑥떡을 먹고 생각을 쑥쑥 키우렵니다.

a 내일 우리 1학년 아이들 입속에 들어갈 쑥떡입니다

내일 우리 1학년 아이들 입속에 들어갈 쑥떡입니다 ⓒ 장옥순

덧붙이는 글 | <에세이>에 싣습니다.

덧붙이는 글 <에세이>에 싣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5. 5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