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이나 구찌 제품의 짝퉁을 원하는가? 동대문 일대로 나가면 된다. 다리품 팔 준비만 됐다면 이곳에서 명품 짝퉁 구하기는 일도 아니다. 아니, 동대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접속해보자. 짝퉁을 구하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쉽다. 물론 이 사실은 인터넷으로 물건 사 본 사람들 대부분이 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사회가 '짝퉁'에 관대하다는 걸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비싼 돈 주고 명품 살 필요 없이 짝퉁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판매자는 그걸 노리고 공공연히 물건을 공급하고 있는데 그걸 막는 사람은 드물다.
명품을 과소비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때에 짝퉁을 막으면 서민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원성이 높아질 것이 뻔한데 과연 누가 총대를 멜 수 있겠는가?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이나 정도만 다를 뿐 나름의 방식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짝퉁이 흔히 생각하듯 시계나 의류, 향수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험한 가짜>에 따르면 그런 분야들 못지 않게 의약품이나 자동차, 항공기 부품과 같이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도 짝퉁이 판을 치고 있다.
의약품에서 짝퉁이 있다는 말은 좀 생소하게 들린다. <위험한 가짜>가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닐까, 과대포장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며 문제는 추측 이상으로 심각하다.
남의 것 위조해서 돈 버는 이들의 눈에는 타인의 생명보다는 돈지갑이 우선이다. 그런 이들이 쉽게 돈 벌 수 있는 황금매장을 외면할 리 있겠는가? 사회가 짝퉁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된 탓에 의약품 분야에도 짝퉁이 침입한다.
혹시 비싼 돈 주고 살 바에 싼 돈 주고 먹는 게 현명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으로 이게 무어 그리 심각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의류나 시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건 잘못돼도 100% 잘못된 생각이다. 의류나 시계는 짝퉁이라도 외형상 어느 정도 명품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짝퉁이라는 것을 알고 구입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어느 정도의 결점은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의약품도 그럴 수 있겠는가?
짝퉁 의약품이 어느 정도 정품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심리나 혹은 짝퉁인 줄 모르고 먹었다고 해보자. <위험한 가짜>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약을 먹고 아무 효과를 보지 않을 수 있다. 헛돈을 날린 셈이다. 아니, 이 정도면 다행일지 모른다. 만약 짝퉁약을 먹고 역효과가 난다면? 만약 싼 값으로 비아그라 효과가 있다고 하는 약을 구입해 먹었는데 그 약이 발기부전의 원인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진품들은 테스트를 거쳤다. 또 문제가 생길 경우 보상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짝퉁 약은 어떤가? 이 세상에 그 누가 진심으로 짝퉁을 A/S해주는 경우가 있던가? <위험한 가짜>들에서는 가짜 세로스팀을 주사한 에이즈 환자들이 세로노 사와 판매점을 고소한 사례를 들고 있다. 환자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고소했겠는가 싶지만 세로노 사 역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결국 위조품에 소비자나 공급자 모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전자제품들 사이에서도 짝퉁 '부품'이 들어간다. 이런 제품들은 구입 당시 비교적 값이 싸기에 나름대로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자동차나 항공기의 경우 그 만족감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1989년 9월 노르웨이 오슬로를 이륙해 독일 함부르크로 날아가던 콘베러 580 터보 프로펠러 항공기의 추락사를 떠올려보자. 당시 항공기에는 55명이 타고 있었는데 항공기는 갑작스럽게 북해상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당연히 조사관들이 파견됐는데 그들은 이유를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체와 꼬리를 연결하는 볼트와 부싱이 위조품이었고 그것이 운항 도중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승객 전원을 죽게 한 것이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자동차가 운전 도중 갑자기 고장 날 수가 있고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프린터가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고 모니터는 퍽 소리와 함께 꺼져버릴 수 있으며 컴퓨터에서는 언제나 굉음이 들릴 수 있다. 어떤가? 이런 상황에서도 짝퉁에 관대할 수 있겠는가.
<위험한 가짜>는 정확하게 짝퉁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관대한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아쉽게도 <위험한 가짜>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들은 미국 상황에 맞춘지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위험한 가짜>가 지적했듯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각각의 상황에 맞게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험한 가짜>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그 의미를 충분히 되새겨 보자.
지금도 짝퉁에 관대한가?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위험한 가짜>에서 실상을 파악해보자. '현명'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될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위험한 가짜
데이비드 M. 홉킨스 외 지음, 이양준 옮김,
청년정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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