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피습' 지방선거 집어삼킨 블랙홀

[분석] 열린우리 "절망 넘어 패닉" - 한나라 "정권심판 총공세"

등록 2006.05.22 01:00수정 2006.05.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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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나라당대전시당 앞 주차장에 세워진 선거차량. 한나라당 대전지역 출마자 전원은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대전시당 앞 주차장에 세워진 선거차량. 한나라당 대전지역 출마자 전원은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이런 상황에서 유세차 스피커를 어떻게 트나. 이런 선거는 처음 치러본다. 절망을 넘어 패닉이다."

한 여당 관계자의 말이다.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마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는 게 정가의 인식이다. 선거 쟁점이 '박근혜 피습'으로 형성되면서 전략과 정책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 열린우리당 내에선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새어 나올 정도다.

2006지방선거시민연대는 이번 사건의 파장을 의식해, 22일 예정된 '헛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하루 연기했다. 그런가하면 휴일인 21일, 동네를 누비고 다니면 좋을 한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선거 유세 차량은 모두 '올스톱' 됐다.

선거운동, 박 대표 병실 경유하다

선거운동은 사실상 박 대표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을 경유해 이뤄지고 있다. 양당 지도부는 어제, 오늘 긴급 선거대책회의를 여는 등 긴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광역단체장 출마 후보들은 박 대표의 쾌유를 빌며 유세를 취소하는 등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긴급선거대책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을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로 규정한 뒤, 한나라당이 요구한 검·경 합동수사를 즉각 수용했다. 아울러 선거운동 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씨에 대해서는 기간당원 자격을 박탈하고 출당 조치했다. 여권은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을 우려해 청와대는 물론 이하 총리실, 법부무, 행자부 등 관계 부서들이 강도 높은 유감을 표명하며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a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의총을 연뒤 국회 본청 계단에서 `정치테러규탄결의대회`를 가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의총을 연뒤 국회 본청 계단에서 `정치테러규탄결의대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의 대응은 훨씬 강도 높다. 지도부는 긴급대책회의와 의원총회를 연달아 열어 이번 사건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살인미수 정치테러'로 규정한 뒤 '배후세력 음모론'과 '치안부재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권심판론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로써 사실상 선거운동은 중앙당 차원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특별지침'을 내려 ▲ 일체의 로고송이나 율동 등 불행한 사태와 상반되는 정서 표출을 삼가할 것 ▲ 모든 후보자는 연설 서두에 테러행위에 대한 규탄과 박 대표의 쾌유를 비는 내용으로 할 것 ▲ 섣불리 정부 여당이 배후에 있는 듯한 예단과 언행을 자제하고 상대방의 역공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할 것 등을 주문했다.


또한 의원들은 지역별로 3개조를 짜서 국무총리실, 대검찰청,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뒤 박 대표가 머물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단체 병문안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박 대표의 병실을 찾아 자신의 지원유세를 하려다가 참변을 당한 점을 의식해 침통한 표정을 지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는 "만일 여당 대표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경찰이 지금처럼 조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허탈한 열린우리당 "절망을 넘어 패닉"

a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22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원장단 회의에서 지난 주말 발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이 이번 5.31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번 지방선거가 솔직히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22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원장단 회의에서 지난 주말 발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이 이번 5.31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번 지방선거가 솔직히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은 자당 대표의 불상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한나라당의 전방위 공세에 방어책을 고심하는 한편, 앞으로 선거운동을 어떻게 벌일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특히 유세장에서 난동을 부린 박씨가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칼을 휘두른 지씨와 박씨의 사건을 분리해 내려 애쓰는 모습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단상에 있는 집기를 넘어뜨리고 소란을 한 박모씨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지모씨의 박 대표 피습 사건과 박 대표가 병원에 후송된 후 유세단상에서 벌어진 박씨의 난동은 차원을 달리하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 대변인은 "사람들은 우리당 당원이 같이 공격한 것으로 생각할 텐데 일일이 해명하기도 그렇고…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강금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선거운동 전략을 묻는 질문에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갈 뿐"이라며 "박 대표가 퇴원할 때까지 손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냐, 계획했던 대로 성실히 하겠다"고 마음을 애써 다졌다.

강 후보는 이번 사건에 대해 "폭력이나 선거방해 행위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휴일 하루 가두 유세를 전면 취소한 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박 대표 병문안을 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영남권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지역 민심 의식해 각별히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는 공식 유세를 취소하고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선거운동원들에게 율동이나 로고송을 최대한 절제하라고 당부했다.

제2의 탄핵? "우발적 봉변이냐, 배후세력의 정치테러냐"

이번 사건의 핵심은 민심의 향배.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터진 이 사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제2의 탄핵 효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박 대표 피습 사건이 모든 선거의 이슈를 집어 삼켜버렸다"며 "돌발이슈는 추격하는 후보의 입장에선 치명적"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언론을 통해 이슈를 제기해온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선거운동의 맥이 풀려버린 셈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지지층의 패배감이 더욱 확산되면서 결집도가 더욱 이완되는 반면, 부동층은 한나라당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김 소장은 "기권 현상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투표율이 낮거나 1, 2위 후보간 격차가 큰 선거에서는 부동층의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무소속 후보 간에 1, 2위 다툼이 치열한 대전시장, 제주지사 선거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두 지역의 경우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반전의 모멘텀을 노렸던 만큼 뼈아픈 대목이다. 다만 공을 들여온 광주시장 선거 향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의 성격을 놓고 "비정상인에 의한 우발적 봉변이냐" "배후세력이 있는 정치테러냐"는 논란이 일 조짐이다. 대체로 정치전문가들은 박 대표에 대한 동정론은 강하게 일겠지만, 노 대통령 탄핵 사건과 같이 '공적 분노'를 자극하는 사건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김 소장은 "선거의 이슈가 차단된다는 점은 있지만 정치적 판단을 바꾸게 하는 사건은 아니"라며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나, 정권심판론으로 가져가는 것은 오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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