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는 여당 찍는 것이 '사표'다"

[인터뷰①]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대권 도전, 역사적 소임 있다"

등록 2006.05.29 10:22수정 2006.05.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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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31 지방선거의 관전포인트로 다음 세가지를 제시했다. ①기초의회 선거에서 280여명 당선 ②정당 중 유일하게 전국 16개 시·도에서 광역 비례대표 당선 ③정당 지지도 15% 획득.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31 지방선거의 관전포인트로 다음 세가지를 제시했다. ①기초의회 선거에서 280여명 당선 ②정당 중 유일하게 전국 16개 시·도에서 광역 비례대표 당선 ③정당 지지도 15% 획득.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전국단위 선거가 치러질 때면, 특히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민주노동당의 발목을 잡았던 논리가 있다. 사표론. 개혁세력 내부에서는 수구보수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죽은 표'라는 논리가 횡행했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97년 대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2002년 대선이 그랬다. 지난 2004년 총선 때는 탄핵 회오리가 진보정당의 기를 꺾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다르다. 패색 짙던 열린우리당에게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은 설상가상의 악재지만, 민주노동당에겐 미풍에 불과하다. 되레 '열린우리당 사표론'을 제기하며 공세적으로 나온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해체선언을 했다"며 '대안세력 교체'를 위해 표를 달라고 호소한다.

진보정당 후보로 두번이나 대선에 출마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이번 선거의 의미는 각별하다. 1997년 대선으로 출발한 진보정당은 2007년 대선으로 꼭 10년째. 권 의원은 "이 나라의 진보정치가 집권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접어들게 된다"며 "이번 지방선거의 성과에 따라 2007년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혁의 지분을 나눠온 열린우리당에 대해선 가차없이 '사망 선고'를 내렸다. 권 의원은 여당이 최근 '싹쓸이를 막아달라'며 대국민호소문을 낸 것에 대해 "사실상의 패배 선언"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깨질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밋밋한 선거전에서 새로운 '관전포인트'로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정치지형을 넓힐지 주목하라고 권한다. 제시된 건 3가지다. ▲기초의회 선거에서 280여명 당선권(799명 출마) ▲정당 중 유일하게 전국 16개 시·도에서 광역 비례대표 당선 ▲정당 지지도 15% 획득 무난, 20% 육박.

민주노동당은 최근 울산·부산·경남·인천·대구·경기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린우리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상황에 한껏 고무되어 있다. 데이터(5월 20∼22일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도 뒷받침한다. 특히 지도부는 소위 '영남 진보벨트'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권 의원은 '한나라당의 영남'과 '민주노동당의 영남'은 정반대의 의미라고 강조한다.


"한나라당은 영남을 버려야 이긴다. 하지만 버릴 수가 없다. 영남을 버리면 당이 깨진다. 이게 한나라당의 딜레마다. 하지만 울산·부산·창원·거제에 이르는 민주노동당의 진보벨트는 전국의 고른 지지 속에서 형성되었다. 텃밭의 의미와 다르다. 한나라당의 영남 강화는 외연을 축소시키지만 민주노동당에겐 활력소다."

"김종철 후보는 97년의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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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권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안타깝게 보는 곳은 두 지역이다. 울산과 서울. 기초단체장을 잡았던 울산의 북구와 동구 판세에 대해 "어렵다"며 "늦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전면적인 궤도 수정을 주문했다. 아울러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김종철 후보에 대해선 "97년 권영길을 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함구해온 대권 도전 의사도 피력했다. 권 의원은 "역사적 소임, 당내 요구 등이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추대냐, 경선이냐, 후보 선출방식과 관련해선 "경선을 통하는 것이 당의 역량 강화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겠나"라며 "후보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만큼 진보정당이 발전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과의 인터뷰는 28일 오전 국회 의정지원단 사무실에서 1시간30분 가량 진행됐다. 인터뷰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그는 창원행 비행기 예약을 한 시간 늦추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 원내 진출 뒤 처음 치르는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는 뭔가.
"1997년 대선에서 출발해서 2007년 대선까지 진보정당 10년, 제1기를 마무리 짓는 상황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나. 2007년 대선이면 이 나라의 진보정치가 집권을 위한 구체적 단계에 접어든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매우 중요하다."

- 진보정치 1기가 성취한 것은?
"집권을 위한 토대를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1997년 대선을 토대로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그 뒤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의 성과를 이어받아서 지금 지방선거를 치르고 있다. 아울러 이번 선거결과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치르고 민주노동당은 명실상부한 대안세력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열린우리당을 대신할 실력 있는 집권세력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이지만 이탈층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 당초 내건 '2012년 집권'이 가능한 얘긴가.
"사실 나는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집권 목표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 의결기구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이 끝난 뒤에야 시작됐지만 내용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 한국 정치의 풍토에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칫 구름 위에서 노는 정당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전은요?' 발언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표는 정말 대단한 사람"

- '박근혜 피습' 사건으로 선거가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정말 끔찍한 사건이다. 가족사로 인해 나는 어릴 적부터 목숨을 지키는 것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된다는 것은 어느 순간 신체에 위해가 가해질 것이란 공포를 갖게 한다. 오죽하면 이문구 선생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공부를 잘하지 말고 못하지도 말라며 눈에 안띄게 평범하게 살라는 말을 하셨겠나.

'한나라당 대표다', '보수정치인이다'라는 걸 떠나 한 정치인이 선거라는 정치활동을 전개하다가 공개된 장소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테러든, 봉변이든 가릴 것 없이 없어져야 한다. 누구보다 쾌유를 빌며 열린 가슴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하길 바란다."

-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정치적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피습 사건이 한나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다. 사실 한나라당은 그냥 있어도 표를 결집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 모든 유세차에 '박 대표의 쾌유를 빕니다'는 플래카드를 붙여다니고 선거운동원은 박 대표 피습 사건 외에는 다른 얘기는 안하고 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박 대표가 오버하지 말라고 했는데 당은 오버하고 있다."

- 감시·견제기구인 시·구 의회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판이다.
"열린우리당이 싹쓸이를 막아달라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것은 사실상의 패배선언이다.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겠지만, 오히려 싹쓸이를 부채질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깨질 정당이라는 걸 스스로 확인시켜주었다. 단순히 선거 패배가 아닌 사실상의 당 해체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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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민주노동당 입장에선 지난 총선의 탄핵과 박 대표 피습 사건이 미친 영향이 다른가.
"탄핵이나 피습 사건이나 똑같다. 한국 정치가 정당 정치가 아닌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박 대표 피습 사건이 없더라도 한나라당의 압승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다. 반면 탄핵 때는 열린우리당의 압승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표가 쓸려갔다. 쓰나미적 선거현상에서 민주노동당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지만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

- 특정정당의 싹쓸이를 막기 위한 개혁세력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 언론에 심한 불만을 토로하자. 박 대표가 입원하자마자 '대전은요?'라고 말한 뒤 언론은 이번 선거를 대전의 승패로만 보도하고 있다. 정말 박 대표가 그런 말을 했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라면 참 대단한 분이다. 만약 말하지 않았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면 한나라당은 파렴치하다. 한 인간의 생명을 팔아먹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이제 언론은 '대전 블루스'를 멈춰야 한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이제 흘러간 옛 노래다. 흥밋거리도 아니다. 이번 선거의 관전포인트는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정치적 지형을 넓힐 것이냐에 있다. 유일한 진보정당이 1기를 마무리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결과를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대를 말하는 것은 우리정치를 후퇴시키는 사고다."

원내진출 2년 평가 "숫자의 한계 너무 커"

- 진보세력의 대표주자 교체론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번 선거의 목표는?
"기초단위에서 300여명의 의원을 배출시키는 것이다. 상당한 근사치에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 16개 광역 시도 의회에 비례 및 지역구를 통한 의원을 배출할 것이다. 정당득표는 15%를 목표로 한다. 20%대 진입도 욕심을 내볼만 하다. 민주노동당은 전국정당화된 유일한 정당이다. 대선의 목표치는 500만표다. 2008년 총선은 내용적인 면에서 '제1야당'의 수준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 9명의 국회의원이 낼 수 있는 최대 성과를 냈다고 보나.
"민생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 실천의 힘이 정치의 힘인데 물리적인 숫자의 한계가 너무 크다. 민주노동당이 헤어나지 못하는 딜레마가 그거다. 비정규직법과 쌀개방을 막는데 '올인'해야 했다. 이 국면에서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다. 한·미 FTA 경우도 국가적 운명이 달린 사안인데 민주노동당의 목소리는 상임위를 막느냐, 마느냐만 전달되었다. 법안 내용이나 절차의 문제 등은 제외되었다."

- 울산 북·동구가 한나라·무소속에 열세다. 지난 재선거에서도 탈환하지 못했다.
"사실 어렵다. 민주노동당에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는 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지 모른다. 비정규직 투쟁을 하면서 한가지 제대로 못한 역할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걸음걸이가 늦더라도 비정규직 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의 비정규법안 저지가 민주노총과 정규직 노동자의 밥그릇 지키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당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희망을 보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확실하게 만드는 긍정적 요소가 될 것이다."

- 예상외로 다른 주요 지역에 비해 서울이 뜨지 않고 있다.
"김종철 후보를 보면서 97년 권영길을 보는 것 같다. '똑똑하다' '토론에서 제일 낫더라' 그런 평가가 나오는데도 표는 오지 않는다. 김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김 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97년 권영길에게 던진 표와 같은 것이다."

"대선 목표는 500만표... 추대보단 경선이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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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대권에 한번 더 도전하나.
"1997년, 2002년에도 고민이 많았다. 특히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1997년엔 위원장직을 더 수행해야 될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그만둬야 할지 두 달 넘게 고민했다. 솔직히 2007년 대선도 고민의 대목이다. 이제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대선 후보가 많이 나와야 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 당이 그만큼 발전을 했다. 2002년만 해도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저에게 주어지는 소임이 있을 것이다. 역사적 소임도 있을 것이고, 당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요구도 있을 테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역사적 소임을 달성하기 위해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 추대냐, 경선이냐, 어떤 더 적합하다고 보나.
"이제는 추대보다 경선을 통하는 것이 당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경선의 경우 선거 후유증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당이 이제는 후유증을 충분히 소화하고 치유할 수 있는 상태라도 본다."

- 국민 경선의 요소를 가미할 수 있나.
"그 부분까지 논의하기엔 민주노동당의 현재 역량이 충분히 소화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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