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자녀 위한 논술지도? 생색내기일 뿐"

경기교육청의 원칙 없는 논술지도 논란... 교사들 "지원 없이 책임만 강요"

등록 2006.06.22 10:00수정 2006.06.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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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기도 교육청 입구. 지난 3월 촬영.

경기도 교육청 입구. 지난 3월 촬영. ⓒ 임정훈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진춘, 이하 도교육청)에서 시행 중인 '저소득층 자녀와 지도교사를 연계한 논술 첨삭 지도(이하 논술지도)'가 원칙 없이 운영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도교육청은 지난 4월 초 '교육 현장에서 소외될 수 있는 저소득층 자녀의 학력신장 및 안정적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논술지도 프로그램을 마련해 일선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계 고등학교 한 학교 당 교사 1명 이상이 반드시 참여할 것을 원칙으로 ▲논술지도를 희망하는 저소득층 자녀 3명을 기본으로 연계해 운영된다. 희망 학생이 많을 경우에는 이에 상응하는 지도교사를 확보해야 한다.

'문제투성이' 프로그램... 지원 대책도 없어

a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반드시 1명 이상의 교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부분이 진하게 강조돼있는 경기도교육청의 공문.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반드시 1명 이상의 교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부분이 진하게 강조돼있는 경기도교육청의 공문. ⓒ 임정훈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애초 취지와 다르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선 교사들의 주장은 이렇다.

①우선 말로만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실제는 저소득층이 아닌 학생도 논술지도를 받을 수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의 공문에는 "'저소득층'의 기준을 학교장이 적의 판단"하도록 돼 있다. 즉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누구든 저소득층이 될 수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저소득층 학생도, 모든 학생도 아닌 일부 '선택받은' 학생들만 혜택을 받는 기형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②저소득층 학생들 중 논술시험을 치르거나 논술지도를 희망하는 학생이 없을 수 있는데도 기본적으로 3명(이상)의 인원을 할당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게다가 논술시험은 일부 대학·학과에서만 실시한다.

그런데도 도교육청은 논술지도를 받아야 하는 저소득층 학생 수를 못박아 놓았다. 희망 학생이 적을 경우에는 숫자를 채우기 위한 편법까지 동원될 수밖에 없다.


③도교육청은 공문을 통해 '희망 교사의 신청을 받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은 교사의 참여를 강제하고 있다.

도교육청은 같은 공문에서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학교 당 1명 이상의 교사가 반드시 참여할 것을 함께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위 사진 참조). 이중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의 실정이나 교사의 의지는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④지원도 전무하다. 이번 논술지도는 교사가 희망 학생을 모아 따로 시간을 마련해 진행하는 방과후 프로그램 형태로 운영된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교재비, 수당 등의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우수 지도교사를 가려 교육감 표창을 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교육청 차원의 지원이 없으니 학교에서도 운영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교육청이 일방적인 지시만 내린 채 교사의 참여와 헌신만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교사들 "논술교육 하고 있는데 또 해? 생색내기" 비판

a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에 앞서 수험생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자료사진·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에 앞서 수험생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자료사진·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없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애초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ㄱ고교의 한 교사는 "저소득층 아이들 가운데에는 논술 지도를 받겠다는 아이들이 없어서 도교육청에 문의했더니 '저소득층 자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저소득층에 해당하지 않는 아이까지 명단에 넣어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ㄴ여고의 한 교사도 "이미 거의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논술과 관련한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도 도교육청이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생색내기"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교육 양극화 해소 운운하며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선심쓰듯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교사의 책임과 업무량만 늘여놓은 꼴"이라며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교육청이 지원은 해주지 않으면서 담당 교사에게만 논술지도의 책임을 지우고 있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또 다른 학교의 교사 ㄱ씨는 "지난 4월 26일 논술학원 간부의 강연을 듣는 형식적 연수를 실시한 것 말고는 논술지도와 관련해 도교육청에서 지원해 준 것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다"며 "그래 놓고서 11월 초까지 '지도 사례'를 제출하라고만 하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강제로 교사에게 책임만 떠안기고 나몰라라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덧붙였다.

도교육청 "시행착오로 봐달라... 지원 대책 고민 중"

이런 비판에 대해 도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교사들에게 강제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학교 현장에서 부담이 될 줄은 몰랐다"며 "논술지도는 공교육 차원에서 논술교육의 영역을 넓혀 내실을 다지자는 의도였는데 처음 추진하는 데서 생긴 시행착오로 봐달라"고 해명했다.

그는 사실상 저소득층이 아닌 학생도 논술지도를 받도록 운영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저소득층'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형편상 논술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또 논술지도 지원과 관련해선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현재 논술지도 교사(학교)와 학생들에게 지원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추경예산 편성 등을 통한 지원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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