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원가 공개는 거부하고, 조기분양 약속은 '휴지통'

대전 도개공, 사장까지 사인했는데도 '오리발'... "내부 협의과정 착오"

등록 2006.06.23 09:51수정 2006.06.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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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드리움 아파트 건설 기념비. 시행자가 대전도시개발공사로 명시돼 있다.

드리움 아파트 건설 기념비. 시행자가 대전도시개발공사로 명시돼 있다. ⓒ 최장문


2004년 8월 드디어 이사를 했다. 대전도시개발공사(이하 도개공)가 유성구 대정동에 시공한 32평형 5년 임대 드리움아파트에 입주한 것이다. 완전한 내 집은 아니지만, 전셋돈 실랑이로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 네 식구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23평에 살다가 32평으로 이사하니 생활은 윤택해졌지만 돈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월세처럼 매월 23만원씩 임대료(보증금은 4600만원)로 납부하는 돈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는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해 2년 6개월 조기분양을 추진하였다. 입주하여 2년 6개월이 경과하고 전체 입주민의 2/3가 동의하면 조기 분양이 가능하다는 임대주택법에 근거하여 입대의는 676세대 중 85%의 동의를 얻어 2005년 중순부터 도개공과 실무협상을 진행했다.

매달 23만원의 임대료... 조기분양을 위해 주민들 뭉쳤다

양측 실무자의 만남 횟수가 잦아지면서 조기 분양을 위한 준비가 빠르게 진척됐다. 그러던 중 입대의는 분양가와 임대료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건설원가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임대주택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분양전환가격은 건설원가와 감정평가금액의 산출 평균가격으로 정해진다. 임대주택법에 명시된 건설 원가 계산 공식은 '최초입주자 모집 당시 제시된 주택가격+자기자금 이자-감가상각비'이다.

2002년 최초입주자 모집 당시 도개공이 밝힌 32평 주택가격은 9464만원이었다(택지비 1896만원+건축비와 기타비용 7568만원). 1평당 택지비 59만원, 건축비 236만원인 셈이다.


입대의는 분양전환가격 산출에 기초가 되는 분양원가 내역 공개를 요구했지만, 도개공은 영업상 비공개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로 인해 김경재 입대의 회장은 2005년 12월 대전 행정법원에 도개공의 건설원가내역 비공개정보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냈다. 전국에서 도개공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다들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필요성과 절박함이 컸다.


아파트에 붙은 '승소' 현수막... 밤잠 설치며 기대했지만

a 드리움 아파트 내 승소 축하 현수막

드리움 아파트 내 승소 축하 현수막 ⓒ 최장문

5월 17일. 드디어 판결이 나왔다. 승소였다.

대전행정법원(재판장 신귀섭 부장판사)은 판결문에서 "이미 건설이 종료된 아파트의 건설원가 정보는 분양전환가 산출내역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더라도 정당하게 산정된 건설원가라면 공개될 경우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양원가 산출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시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입구에 승소 현수막을 내걸고, 거품이 빠진 아파트 분양가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쳤다.

우리 가족은 3년 동안 주택마련자금으로 2000만원을 모았지만, 2002년부터 시작된 대전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 때문에 이 자금은 의미없는 돈이 돼 버렸다. 3년 동안 땀 흘려모은 돈이 아파트 거품으로 말미암아 날아가는 경험을 한 상태에서 이번 승소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도개공은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도개공은 서민들의 주거안정과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대전시 산하의 공기업이다. 아파트 거품으로 지칠 대로 지친 무주택 서민들은 마지막 희망같은 법원 판결에 대하여 항소한 도개공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기분양 약속 갑자기 연기... 왜?

a 도개공에서 2005년 7월에 입대의에 발송한 '조기분양전환 관련 세부계획 수립 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 사장 사인이 들어가 있는 이 공문에는. '2006년 7월 분양가산정, 2006년 12월 분양전환협의 완료'가 명시돼 있다.

도개공에서 2005년 7월에 입대의에 발송한 '조기분양전환 관련 세부계획 수립 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 사장 사인이 들어가 있는 이 공문에는. '2006년 7월 분양가산정, 2006년 12월 분양전환협의 완료'가 명시돼 있다. ⓒ 최장문

그 뿐이 아니다. 무엇보다 입주민들은 도개공의 거짓말에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기분양 실무자 협상과 관련, 도개공 측은 애초 약속과 달리 세부일정을 2007년 4월 이후로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분명 양자간에 합의된 내용이고 도개공 심영창 사장의 서명까지 있는데도 약속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2005년 12월. 도개공은 입대의 김경재 회장에게 조기분양에 대한 입주민의 설문조사 결과를 요청했고, 김 회장은 이 내용을 관리사무소를 통해 도개공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당시 대전 도개공 '공사소개-경영공시' 사이트에는 '2006년 7월 분양가 산정 / 2006년 12월 분양협의 완료 / 2007년 1월 분양계약'이라고 공시했다가 지금은 갑자기 2007년 4월로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김경재 회장은 "2006년 12월 서남부권 개발이 시작되면 드리움 임대아파트 주변 시세가 상승되고, 그러면 감정평가액이 상승돼서 분양전환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분양전환 가격을 높이려고 약속을 뒤집는 것이 과연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하는 공기업 설립취지에 적합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분양원가 공개' 공약이 원망스럽다

반면 도개공 보상분양팀 담당자는 "내부적인 협의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면서 "법에 명시된 대로 분양을 추진할 경우 2007년 4월 이후에나 분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도개공이 분양가격을 높게 받자는 취지는 절대로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약속을 해놓고 왜 도개공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입대의 김경재 회장을 비롯한 아파트 주민들은 공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참여정부의 '분양원가 공개 및 집값 안정' 공약이 아쉽다 못해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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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세월속에서 문화의 무늬가 되고, 내 주변 어딘가에 저만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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