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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후 한국 축구 무엇이 바뀌었나?

박지성 프리미어리그 진출 외에 변한 것없는 한국축구

06.06.26 14:43최종업데이트06.06.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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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02년 4강 신화가 홈텃세와 심판의 오심 때문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한국팀은 16강 진출에 실패해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또 어떤 이들은 심판의 오심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에게 드는 의문 하나는 스위스의 2번째 골이 노골로 선언되었다면, 과연 한국이 스위스를 이길 수 있었을까?

프랑스는 비록 2002년 예선탈락 했지만, 98년 우승이후 승승장구했었다. 반면 한국은 4강신화 이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패했고, 이번 월드컵 아시안지역 예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록 본프레레 체제에서 아드보카트 체제로 전환한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예전의 날카로움을 찾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몇몇 부분에서는 4강 신화 이전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늘 그랬듯 불안하기만한 한국 수비

토고가 내분에 휩싸였을 때 많은 이들이 승리를 예감하며 환호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프랑스와 스위스 두 팀 모두 토고를 이길 것이라며 상황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음을 걱정했다. 그의 예상 대로 벼랑끝에 몰린 프랑스가 무난히 토고전에서 승리를 거둬 우리는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나, 만약 우리가 토고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프랑스와의 2차전에서 비길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우리가 토고에 거둔 1승이었다. 프랑스는 스위스와 승점을 1점씩 나눠 가져 반드시 한국을 꺾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24일 스위스와의 경기는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2무승부로 인해 절박하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콩가루(?) 집안이 된 토고팀이 한국처럼 투혼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팀의 수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토고와의 경기에서 시간 지연작전을 폈을까?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 명이 퇴장당한 한국을 상대로 초토화 시킨 멕시코처럼, 막판 체력이 떨어진 일본을 융단폭격한 호주처럼, 우리들이 토고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면 마지막 스위스전에 임하는 우리 선수들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기에 비겨 스위스와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는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16강 진출 실패 원인은 피파 회장의 입김에 의한 편파판정보다 한국의 고질병인 수비불안에서 찾아야 한다. 편파판정만 아니었더라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장담하기에는 한국의 수비가 너무나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한국 수비불안의 근본 원인을 선수양성 시스템과 K리그 운영시스템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월드컵 시즌만 되면 3백이냐 4백이냐를 가지고 논쟁을 한다. 한국팀에는 3백이 맞다는 주장과 4백이 세계적인 대세라는 주장이 맞부딪힌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3백과 4백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 될 것을 우리는 이것 때문에 갑론을박하느라 바쁘다.

어떤 기본전술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다지 시끄러운 것은 한국 선수들이 4백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세계 유수의 팀들이 4백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음에도 유독 한국팀만 4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런 사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젠가 한국선수들은 성장과정에서 4백 시스템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유소년축구, 청소년축구, 성인축구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3백 시스템에서만 경기를 치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3백이 대세를 이룬 것은 성적지상주의가 불러온 폐단이다.

3백 시스템은 수비위주의 전술이다. 한국 대부분의 축구팀(유소년 축구팀부터 프로팀까지 모두)이 3백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는 경기는 하지 않겠다는 발상에 기인한다.

한국 선수들은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익숙한 상황이니 비싼 돈 들여 데려온 외국 감독은 한국의 이 기이한 현상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낸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9개월은 짧다면 짧지만,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그를 보좌한 코치진은 이미 2002년에 갖춰졌으니까 적어도 한국축구를 이해하는 시간만큼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을 게다.

4강의 기적은 붉은함성과 난립하는 응원가와 기업들의 경쟁이라는 결과물만 낳았을 뿐, 한국축구의 근간은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4년 전 4강 신화 이후 축구 경기장에는 관객들이 꽉 들어찼지만 이내 텅 빈 예전의 운동장으로 되돌아갔다. 오히려 월드컵을 개최한 최고의 시설은 오히려 재정적자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다.

프로팀의 운영은 유료관객확보를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기는 축구가 아닌 지지 않는 축구를 하니 재미없어지고, 재미없는 축구를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월드컵 4강 신화 재연을 위해 4년 동안 꾸준히 축구장을 찾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프로팀의 재정난은 우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공격적인 경기진행을 통해 축구에 재미를 불어넣고, 구단운영을 개선해야 한다. 재정구조를 튼실히 한 후에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앙리나 베컴 같은 특급 선수는 아니더라도 뛰어난 용병들을 확보해야 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경기를 해야 월드컵에서도 통하는 수비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K리그를 비기는 축구가 아닌 이기는 축구로 바꾸는 것. 그것만이 4년 후 수비불안이라는 고질병을 몰아낼 유일한 방책이 될 것이다.

킬러, 본능인가? 노력의 산물인가?

노력하는 자에게는 천재도 당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근성으로 똘똘 뭉친 한국인들은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한국인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면을 발견하곤 한다. 한국인들은 기능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금메달을 휩쓸지만,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는 거장은 배출되지 않고 있다.

한국학생들은 피눈물 나게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지만 영어만 나왔다하면 벙어리 삼룡이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운동을 선택한 학생들은 공부와 거의 담을 쌓는다. 수업에 참가하는 대신 운동에만 전념한다. 하지만 공부를 병행하는 외국의 선수들보다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는 선수는 많지 않다.

예전에 잔디구장이 많지 않던 시절 맨땅에서 운동을 하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네 맨땅 운동장보다 못한 들판에서 공을 차던 아프리카인들이 파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정답은 아닌 듯 하다. 흑인들의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반론으로 들지 모르나, 남미인들이 흑인들보다 혹은 아시아인보다 특별히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기에 그다지 설득력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지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한국축구를 '로봇축구'라고 비아냥 거렸던 이유,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준비기간 내내 '창조적 플레이'를 강조했던 이유 그 이유는 사고의 부재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기능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들은 기계처럼 정확히 용접을 하고 재단을 하지만, 자신이 가진 재주로 무얼 만들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선수들은 뙤약볕 아래서 운동장 100바퀴를 돌며 체력을 단련하고, 수천 번 수만 번 슈팅 연습을 하지만 그걸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는 훈련은 받지 않는다.

당장 코앞에 닥친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하지만 무엇을 위한 인내인지는 모른다. 다만 참고 견뎌내야 대학간다는 명제만 존재할 뿐이다.

국내에서는 갈 곳이 없어 일본으로 진출한 박지성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것을 보면 우리의 한계가 무엇인지 더욱 뚜렷해진다. 박지성을 일본이 키워냈다는 주장도 억지스럽지만, 한국적 토양이 빅스타를 양성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 축구의 근본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한국축구의 근원적 문제점은 해결이 요원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2006-06-26 14:4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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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작가/절대지식 치매백과사전 저자. 굿라이프, 시니어클라스 등 유튜브 채널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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