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만에 가슴에 묻은 한 풀리나"

진실화해위, 산청 시천·삼장 민간인학살 사건 진상조사 나서

등록 2006.07.06 18:48수정 2006.07.0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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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실화해위가 6일 오후 산청 덕산문화의 집에서 연 '시천삼장민간인학살사건'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한 할머니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진실화해위가 6일 오후 산청 덕산문화의 집에서 연 '시천삼장민간인학살사건'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한 할머니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a 박병용씨가 조사팀장에게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병용씨가 조사팀장에게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57년만에 한이 풀리는가 싶네요"

6일 오후 2시, 지리산 천왕봉과 남명 조식 선생의 정신이 깃든 산천재가 바로 옆에 있는 경남 산청군 덕산문화의 집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마련한 '산청 시천·삼장 민간인 희생사건 현장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3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설명회가 진행되는 동안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얼굴은 진지함으로 가득 찼다. 여순사건의 여파로 1949년 7월 18일부터 22일 사이 국군에 의해 민간인 수백명이 희생당한 뒤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진상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번 현장조사는 4명으로 구성된 진실화해위 조사3팀(팀장 한성훈)이 6일부터 8일까지 산청 현지에 머물면서 각종 증언을 듣는 등 현장조사를 벌인다. '시천·삼장양민학살사건 피학살자 유족회'(회장 정맹근)와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대책위원회'(실행위원장 서봉석)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산청군수 "제대로 진상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이재근 산청군수는 "뒤늦게나마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진상조사를 추진한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군청과 군의회는 이와 관련해 할 일이 있으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설명회에서 정맹근 회장도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지구상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57년전에 일어났지만 그동안 어디에도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왔다"면서 "6살 때 그 일을 당하고 지금은 환갑을 넘어 63살이나 되었다, 그동안 유족으로 처참하고 가슴 아픈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진상조사를 한다고 하지만 걱정도 많다"며 "진실화해위의 규모가 작고 예산도 부족해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질 지, 괜히 시간만 끌다가 유명무실하게 돼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주게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서봉석 위원장은 "아직 유족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여기에 와서 죽었는지 영문도 모르고 있다"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당파를 떠나 엄정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술인 조사는 비공개로 진행

한성훈 팀장은 현장조사의 배경과 진행방향을 설명하면서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이 억울함이 있었지만 하소연하지 못한데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조사개시 결정은 그동안 진상을 밝히겠다고 나선 유족회와 군의회 등의 노력이 컸다"고 밝혔다.

한 팀장은 ‘시천·삼장사건에 '외공리사건'을 포함시킨 배경에 대해, "동일 사건은 아니나 같은 지역이고 비슷한 시기에 사건이 발생했다"며 "위원회의 조사규칙에 보면 이같은 경우 병합·분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외공리 사건의 경우 유족도 나타나지 않았고 알려진 가해 혐의자와 조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을 비롯한 어르신들의 건의사항을 듣는 순서가 진행되었다. 그러자 좌석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 가슴에 묻어 놓았던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박병용(73)씨는 "외공리 사건이 일어났을 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당시 마을이장이 사람들을 모아 무덤을 덮으려 갔고 사람들이 옷이 새까맣게 돼 내려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류근조(60)씨는 "가막골 골짜기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묻혀 있었고, 당시에 젊은 사람이 사람의 머리를 발로 차고 내려왔다는 말도 전한다"고 말했다. 조재현(62)씨는 "6·25 당시 '빨갱이' 집안도 아니었는데 할아버지가 국군에 의해 총살되고 숙모도 총살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번 진상조사 대상에 포함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설명회가 끝난 뒤 4명의 조사관들은 2층에 마련된 조사실에서 신청인을 대상으로 이들의 진술을 들었다. 이 진술청취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8일까지 계속된다.

a 산청 시천·삼장양민학살사건 피학살자 유족회 정맹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산청 시천·삼장양민학살사건 피학살자 유족회 정맹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덕산초교 뒷산 유해 발굴 여부 검토

시천·삼장사건과 외공리사건 진상조사와 관련해 유해가 묻혀있는 무덤을 발굴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높다. 현재 외공리 소정골에 미발굴 무덤 5기가 있고 덕산초교 뒤편 등 여러 곳에 유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상훈 팀장은 "유해 발굴 여부는 검토단계로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고 전국적으로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서너곳의 유해발굴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여러 집단매장지 가운데 덕산초교 뒤편도 발굴 대상지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한 팀장은 "발굴하려면 현장 접근성이 쉬워야 하고, 유해를 발굴해서 신원을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며 "경비 문제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발굴 5기가 있는 외공리 소정골에 대해 한 팀장은 "외공리 사건은 유해를 발굴하더라도 신원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든다"고 밝혔다.

시천·삼장사건은 1949년 7월 18일 보병 제5사단 제3연대 제2대대 소속 1개 소대 병력(37~40명)이 '빨치산'이 출현했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소탕하기 위해 출동·이동하는 도중에 발생했다.

이 부대는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속칭 설통바위 부근에서 매복 중이던 빨치산의 총격을 받고 소대병력 전원이 사망했다. 이후 국군은 사건 발생 인근 지역 주민 중에 빨치산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고 판단, 4월 18일 신천초교 부근에서 50~60명의 청장년들을, 7월 22일 덕산초교 뒷산에서 100여명의 주민들을 사살했다. 그 뒤 1950년 2월경까지 2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공리사건은 1951년 2월 하순과 3월 중순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일보>(1960년 4·5월 기사)와 <부산일보>(1960년 4월 기사)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다. 이들 기사에는 군용트럭을 앞세운 버스 행렬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진실화해위는 외공리 사건에서 700여명이 희생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 서봉석 외공리사건대책위 실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서봉석 외공리사건대책위 실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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