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컨테이너 박스에서 평생 살아야지"

[인제] 불볕 더위 속에서 찾은 수해 현장

등록 2006.08.09 14:04수정 2006.08.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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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해로 폐해가 된 강원도 인제군의 국도를 한 할아버지가 걸어가고 있다.

수해로 폐해가 된 강원도 인제군의 국도를 한 할아버지가 걸어가고 있다. ⓒ 허환주

연일 땡볕이고 불볕더위다. 하늘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눈부시게 푸르다.

그리고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주말인 5일에는 50만 명이 넘는 피서객들이 동해 최대 해수욕장인 경포해수욕장을 찾았다. 동해 망상과 양양 낙산 해수욕장에도 각각 30만 명과 16만 명이 몰렸다. 언제 장마와 수해의 피해가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강원도를 찾고 있다.

수해로 집과 소중한 가족까지 잃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척추장애를 갖고 있는 최순자 아주머니는 남편의 보청기를 찾았을까. 그리고 황순주(37)씨는 바람대로 실종된 남편의 사체를 찾았을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5일, 수마가 지나간 인제군 덕산리와 덕적리를 찾았다.

'폭격맞은 길'에는 아직도 방역차가 연기를 피우고

강원도 인제군 덕적리와 덕산리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덕적리로 가기 위해 가리산리에 들어서면서 당황했다. 여전히 폭격맞은 듯한 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차는 자갈투성이 비포장 길을 천천히 달렸다. 차 바닥이 계속 땅에 긁혔다. 마을 주민들은 "이 정도의 도로가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제군은 수해 피해를 복구하는 일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굴삭기로 산사태로 떠내려 온 돌무덤을 치우고, 쓰러진 전봇대를 세워 끊어진 전기를 연결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전기 공사를 하는 인부들은 계속되는 복구일이 고된지 "언제 일이 끝나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이 없었다.

숨막히는 무더위 속에 방역차가 하얀 연기를 피우며 우리 차를 앞서 갔다. 어릴 때 보곤 처음 보는 방역차였다.


한참을 가다보니 10여명의 군인들이 계곡에서 기계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혹시나 수해로 지뢰가 떠내려 갔을까봐 수색하고 있는 것이었다.

낮엔 절절 끓고 밤에 덜덜덜 추운 '컨테이너 박스마을'

a 끝내 남편의 보청기를 찾지 못한 척추장애인 최순자 아주머니.

끝내 남편의 보청기를 찾지 못한 척추장애인 최순자 아주머니. ⓒ 허환주

가리산리에서 산을 넘어 덕산리에 도착했다. 마을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평평하게 다져진 채 뜨거운 태양을 받고 있었다. 대신 그 옆에 22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들어섰다. 집을 잃은 덕산리 22가구는 이곳에서 살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마을'에서 척추장애인 최순자(50) 아주머니를 만났다.

지난 7월 20일 만난 최씨 아주머니는 수해로 무너진 집에서 청각장애인 남편의 보청기를 찾고 있었다. 그동안 아주머니의 얼굴은 많이 밝아졌지만 보청기는 끝내 찾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결국 중고 보청기를 구했어요. 하지만 그것마저 얼마 전에 고장이 나 결국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있죠. 보청기 값이 100만원이나 해서 살 엄두도 안나고…. 그냥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죠."

남편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없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 답답해서 혼자서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때 온다고 했다. 컨테이너 안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땀이 비오듯 흘렀다. 최씨 아주머니는 이런 기자를 보며 웃었다.

"낮에는 컨테이너가 뜨거워 안에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낮에는 나무 밑에서 더위를 피하고 저녁에 컨테이너로 돌아가요. 하지만 밤에는 전기장판을 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추워요."

컨테이너 박스 마을에는 목욕탕이 없다. 물이 나오는 곳은 각자의 컨테이너 박스 안 싱크대 뿐이다. 땀이 많이 흘러도 씻을 데가 없어 밤이면 삼삼오오 모여 개울가에서 목욕을 한다고 했다.

사라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된 남편 이명길(45)씨를 찾던 황순주(37)씨를 만나러 갔다. 황씨는 컨터이너 박스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실종된 이명길씨의 아버지 이학이(89)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학이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자식을 찾지 못해 안타깝고 서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a 수해로 실종된 아들 이명길씨의 시신을 찾지 못해 울먹이는 이학이 할아버지.

수해로 실종된 아들 이명길씨의 시신을 찾지 못해 울먹이는 이학이 할아버지. ⓒ 허환주

"내 인생에서 이런 물난리는 없었어. 지금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포기했지만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손자 세 명은 아직까지 자기들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어."

실종된 이씨에게는 8살 딸, 5살과 3살 된 두 아들이 있다. 세 아이는 나무 그늘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가져온 통닭을 먹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매미를 줄기차게 울고 있었다. 바로 옆 도로에서는 차가 지날 때마다 뽀얀 먼지가 일었다.

최순길(71) 할머니는 취재하러 마을을 찾은 기자에게 연신 고맙다며 "식사는 했느냐"고 계속 통닭을 권했다. 최씨 할머니는 38살부터 혼자 덕산리에 살았다.

"여기서 수십 년을 살았어. 다른 데 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지. 현재 정부에서 수해민들에게 1400만원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어떻게 집을 지어. 그냥 앞으로 죽을 때까지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아야지."

최씨 할머니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새 냉장고, 가스레인지, TV 등이 있었다. 기업과 관공서 등에서 구호 물품으로 보낸 것이다. 최 할머니는 "평생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새 물건"이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착하고 고맙다"고 눈물을 훔쳤다.

다시 마을 조성한다지만, "수천만원 어디 있나"

a 수해 '덕'에 새 전자제품을 처음 써본다는 최순길 할머니가 울먹이고 있다.

수해 '덕'에 새 전자제품을 처음 써본다는 최순길 할머니가 울먹이고 있다. ⓒ 허환주

인제군은 폐허가 된 덕산리에 다시 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15평 규모의 집을 지어 주민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인제군청 민원봉사과에서 일하는 최찬현씨는 "집을 분양받으려면 총 30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정부 지원금 9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은 주민들이 대출을 받거나 본인이 부담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부분 노인들인 수해민들은 "다 떠내려갔는데 수천만원이 어디 있나, 그냥 컨테이너에서 죽을 때까지 살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날 덕산리 마을에는 국민은행 동부지역본부(본부장 팽진선) 관계자 200여명이 자원봉사를 나왔다. 이들은 3주째 주말마다 덕산리를 찾아 주민들과 함께 복구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인제가 지역구인 박세환 국회의원도 이날 덕산리를 찾았다. 박 의원은 "고생이 많다"며 주민들과 악수한 후 바로 자리를 떴다.

취재를 마치고 덕산리를 떠나 때 기자의 마음은 무거웠다. 하루 와서 취재를 하고 바로 돌아서는 게 미안했다. 이런 기자에게 주민들은 억양있는 강원도 사투리로 말했다.

"더운 날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강원도까지 와서 고생이네요.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 하는데, 다 떠내려가서 뭐가 있어야….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a 아직 복구되지 않은 강원도 인제군 수해 현장을 5일 찾았다.

아직 복구되지 않은 강원도 인제군 수해 현장을 5일 찾았다. ⓒ 허환주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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