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부래옥잠은 그렇게 고운 꽃을 피우곤 하루를 마감합니다

등록 2006.08.14 12:00수정 2006.08.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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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래옥잠이 고운 자태를 막 드러내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서로서로가 안정적인 삼각편대를 하고 있습니다.

부래옥잠이 고운 자태를 막 드러내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서로서로가 안정적인 삼각편대를 하고 있습니다. ⓒ 이규현

정말 무더운 날씨입니다. 지루한 장마 뒤 오는 무더위 탓인지 뜰 안에서 잘 커 왔던 구절초가 왠지 모르게 축 처지더니, 끝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맙니다. 가슴 한켠이 아려 다시 새 이파리 내놓지 않을까 싶어 며칠간 놔두고 보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전염된 듯 활력이 좋은 옆의 구절초마저도 시듭니다.


밭작물들도 난리가 났습니다. 고추농사를 정말 잘 짓던 이웃 아짐은 역병으로 다 죽어버린 고추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계십니다. 약을 쓸 방법도 없다고 합니다. 탄저병이나 다른 거라면 약이라도 써보는데 이건 기상과 관련된 부분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안타까운 여름날이 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벼들은 장마통에 웃자라면서 걸렸던 도열병이나 잎집무늬마름병 등에서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역시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나 봅니다. 매미의 울음소리와 계곡에서 즐겁게 노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름날의 존재이유를 말해주는 거 같습니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옹기점에 들렀습니다. 그동안 장독대를 마련하지 못했었는데 장독대를 마련하고 보니 깨진 항아리 뚜껑들이 몇 개 있어 구입 차 들른 것입니다. 그런데 옹기점에 가서 보니 장독대의 기능들이 변화발전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선 쌀독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보이고요. 또 수반이 되어 어리연, 물양귀비, 물아카시아, 물배추 등 많은 수생식물들의 공간으로 바뀐 것들도 보입니다. 하여 우리도 삶의 여유를 느끼며 곱게 피어나는 물양귀비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수반용까지 곁들여 사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전부터 키워왔던 부래옥잠하고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a 물양귀비도 시시각각 꽃잎이 열립니다.

물양귀비도 시시각각 꽃잎이 열립니다. ⓒ 이규현

함께 사가지고 온 퇴비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고운 황토를 깔았습니다. 뿌리를 내리게 해준 후 조심조심 물을 부어도 맨 바닥에 깔린 퇴비가 떠오릅니다. 한참을 놔둔 후 물이 가라앉은 뒤 떠 있는 퇴비들을 거둬내니 보기가 좋습니다.


a 저 보다 더 꽃잎이 닫혀 올라오고 있는 걸 보고 아이를 데려다 주고 왔는데 이렇게 피고 있었습니다.

저 보다 더 꽃잎이 닫혀 올라오고 있는 걸 보고 아이를 데려다 주고 왔는데 이렇게 피고 있었습니다. ⓒ 이규현

아침에 일어나보니 신기하게도 꽃대가 올라와 벌어지려 합니다. 아이를 데려다 주려 현관을 나서니 부래옥잠 또한 같이 꽃대를 올립니다.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어떤 현상도 보여주지 않더니 자고 일어난 아침에 지고지순한 자신의 모습을 저렇듯 살짝 드러냅니다.

때 묻지 않은 순록의 꽃대위에 보랏빛 옥잠이 예쁜 꽃망울을 막 터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 고운 순간을 촬영하고자 하는데 학교에 늦는다며 아이가 보챕니다. 얼른 다녀와서 찍어도 늦진 않겠지 하며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데 그 30분 정도의 시간은 벌써 옥잠화를 70% 이상 개화시켜놓았습니다.


물양귀비도 마찬가지로 고운 꽃잎을 활짝 열고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들어 뜨거운 땡볕에 어디 나돌아 다닐 엄두가 나지 않을 뿐더러 고3 아들이 있어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이렇게 고운 꽃들을 보게 해주니….

부래옥잠과 물양귀비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하여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고 들여다보며 즐기는데 아뿔사! 오후가 되니 지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a 중앙 꽃잎에는 성화인지 아니면 우주소년 아톰인지, 혹은 벌이나 나비를 유인하기 위한 것인지 아름다운 무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훈장처럼...

중앙 꽃잎에는 성화인지 아니면 우주소년 아톰인지, 혹은 벌이나 나비를 유인하기 위한 것인지 아름다운 무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훈장처럼... ⓒ 이규현

부래옥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찌 보면 성화가 타오르는 듯하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우주소년 아톰을 연상시킵니다. 왜 하필 꽃잎 중에서도 중앙 부위에 저런 고운 무늬가 자리하고 있는지, 벌이나 나비 등을 유인하기 위한 것인지 등등. 제가 가지고 있는 실력으로는 아직도 의문투성이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래옥잠의 놀라운 수질 정화능력과 번식력에는 정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부래옥잠은 깨끗한 물에서보다는 더러운 물에서 훨씬 더 잘 자란다고 합니다. 아울러 한 계절에 한 그루가 350만 그루까지 번식할 수도 있다니, 정말 대단하죠. 그렇게 놀라운 번식력과 생명력을 가진 부래옥잠의 꽃이 고작 하루 피고 만다니 너무도 아쉽기만 합니다.

a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에도 이렇게 꽃잎은 활짝 피어 납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에도 이렇게 꽃잎은 활짝 피어 납니다. ⓒ 이규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려 온 세월이라면 가을 국화처럼 오래 동안 예쁜 자태를 보여주면 좋으련만, 뜨거운 땡볕 견뎌내며 피어 올린 부래옥잠의 꽃은 고작 따지면 반나절을 못 견디고 맙니다.

우리에게 적당한 아쉬움을 남겨주면서 더욱 사랑해 달라는 말일까요? 아니면 더러운 물을 정화시키느라 쇠진한 나머지 꽃을 지켜나가는 에너지가 고갈된 탓일까요? 또 그것도 아니면 우리 자신들을 한 번쯤 되돌아보면서 너는 너의 그 더러움을 어떻게 정화시켜 어떤 모습으로 꽃을 피워 어떻게 져 가고 있느냐고 묻는 것일까요? 마음은 이런저런 생각과 아쉬움 속에 젖어 있는데 동산 위로 둥근 달이 훤하니 떠오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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