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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들의 인생...

영화 속의 노년(101)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06.09.18 14:02최종업데이트06.09.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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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포스터>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 윤수는 아침이 제일 무섭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스스로를 방기(放棄)한 채 살아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 문유정은 세 번째 자살 기도 후에 깨어나 아침에 떠오르는 커다랗고 둥근 해를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살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났고, 서서히 두 마음이 만나면서 서로에게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짧지만 세상 누구와도 나누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길에 나뉘어 설 수 밖에 없었지만 같이 한 그 시간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세 명의 나이 든 여자가 나온다. 나이나 겉모습으로 봐서는 모두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별 공통점은 없다. 살면서 서로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 문유정과 윤수로 인해 그들은 이어져있다.

모니카 수녀는 문유정의 고모이며 사형수 윤수를 교화하려 애쓴다. 삶의 방향도 목표도 놓아버린 조카를 윤수에게 데려가는 것도 모니카 수녀다. 사형수의 거친 저항도, 조카딸의 아픈 반항도, 그보다 더한 어려움도 다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며 끌어안는다. 수도자 본연의 자세이긴 하겠으나, 사람들 마음 뒤편을 꿰뚫어보고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따뜻하게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나이 듦의 미덕이기도 하다.

문유정의 어머니는 자기를 중심에 놓고 그 외의 것은 모두 불필요하고 성가신 것으로 치부하는 이기적인 노인이다. 딸로 인해 자기 인생을 펼 수 없었다는 원망만 있을 뿐, 딸이 겪은 죽음과 같은 고통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하고 남 탓을 하며 가시 돋친 삶을 산 그 인생이 행복했을 리 없다. 주변 모두에게 군림하며 겉으로만 대우받으며 살아온 인생에 남아있는 것이 있을 리 없다. 화려하고 다 가진 것 같지만 텅 빈 노년이다.

윤수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어머니인 박할머니.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분노와 원한 속에서도 용서해 보려는 마음을 먹는다. 무엇을 해도 딸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할머니는 윤수에게 자신이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죽지말고 살아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너 하나라도 편히 보내려고 그런다'는 할머니.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을 할머니의 마음을 이렇게 만들고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월이 가져다 준 그 인생의 깊이, 그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정함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모니카 수녀, 문유정의 어머니, 박할머니 모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담고 있다.겉보기에 깨끗하거나, 팽팽하거나, 초라하거나 할 뿐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그들 살아온 인생을 속마음에 그대로 새겨 놓았다.

평생 수도자로 살아온 노인, 화려하고 윤기 흐르게 살아온 노인, 까칠한 몸고생 마음고생 속에 살아온 노인, 그러나 그들의 속은 겉모습과 같기도 또 다르기도 하다. 문유정의 어머니와 박할머니의 속마음을 짚어보며 두 사람 모두를 향해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노년의 본 모습이야말로 어떠한 치장도 화장도 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정직한 거울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예쁘고 멋지게 생긴 젊은이들이 행복한 시간었다고 여기는 그 모든 시간의 두께가 모여 노년을 이루는 것이기에, 노년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깨우쳐 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 / 감독 송해성 / 출연 강동원, 이나영, 윤여정, 정영숙, 김지영, 강신일 등)

2006-09-18 14:0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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