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두 번 벌초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방치되는 묘지를 볼 때마다 씁쓸함이 가슴을 누른다

등록 2006.09.26 17:41수정 2006.09.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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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릇재 중턱에서 촌부가 벌초를 하고 있습니다.

가릇재 중턱에서 촌부가 벌초를 하고 있습니다. ⓒ 장동언

아버지를 따라 잔디를 깎으면서 / 마음을 깎는다. / 서투른 솜씨, 손을 벤다. / 붉은 피가 방울방울 돋는다. / 흙에 떨어지는 피 / 50년을 더 웃자란 마음을 벤다. - '벌초' 배인환


봄과 가을에 무덤의 잡풀을 베어서 깨끗이 하는 것을 우리는 벌초라고 한다. 벌초는 예로부터 명절 전 돌아가신 분의 무덤을 찾아 깨끗이 정리한다는 사전 문안의 의미도 있지만, 이는 제사, 성묘, 차례, 굿 등과 함께 전통 유교사상에서 유래가 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실상 수년 전부터 벌초의 문화도 많이 달라져 이젠 예초기가 없으면 벌초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따라서 재래식 낫 등으로 벌초에 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만도 아닌 듯하며, 굳이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에겐 금전의 교환만으로서 벌초대행업체가 이를 대신하여 해결하니 정말이지 참으로 편한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벌초자체를 부정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인하여 조상을 찾지 않는 비정한 양심가가 새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벌초가 대대로 내려 온 미풍양속의 하나인데 비해 오늘날 저려오는 가슴에 담긴 쓰린 얘기 한 토막을 나는 어렵게나마 풀어놓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얘기인즉, 얼마 전 웬 부부가 자신의 조상 산소에 벌초를 하러왔다가 산 능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묘소 앞에다 달랑 사과 한 개와 소주 한 잔을 부어놓고는 황급히 절을 한 뒤 내려오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묘소는 자손이 이미 벌초를 단정하게 해놓은 상태였다.

이를 지켜보던 마을의 노인 한 분이 그들에게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으니 "부친의 함자가 OOO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노인이 산꼭대기를 가리키며 "자네 부친의 산소는 저기 저 산꼭대기에 있는 걸로 아는데 왜 진입로에서 가까운 달봉이 아범 묘소에다 절을 하고 내려오는고?" 하니, 부부 중 남편 되는 자가 대답하기를 "저기 산꼭대기에 있는 제 부친의 산소에까지 올라가 벌초를 하고 내려오려면 너무 멀고 힘들 것 같아 생각 끝에 다른 이의 묘소에다 예(禮)나 갖추고 돌아가는바 이는 죽은 귀신은 다 똑 같은지라 아무데서나 절을 하고 예를 갖추어도 괜찮을 듯해서 입니다"라고 하더란다.

하면 마을노인이 벌초에 대한 본질을 까맣게 잊고 그저 편안하게 생각한대로 묻는 족족 대답하는 그 사내의 말에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 산소를 찾지 않는 이도 태반이건만, 그나마 그렇게라도 찾아주는 그 사람의 사려 깊은 용기를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까.


무릇 벌초하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은 하루가 다르게 울창해져서 쉬이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여간 힘들지 않고 보면 깊은 산 속에 산소가 있는 자손들이 이를 핑계 삼아 벌초를 하지 않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날이 묵어가는 묘지들을 볼 때마다 그 자손들을 생각함에 앞서 씁쓸함이 가슴을 누르는 건 어찌하랴.

장례의 문화가 다양하게 달라져 가는 오늘날이지만,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 번인데, 우리 힘들지만 모난 생각 떨쳐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조상님을 받드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기사에 나오는 부부 이야기는 김천시 공원관리사업소장 김정식님께 전해 들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에 나오는 부부 이야기는 김천시 공원관리사업소장 김정식님께 전해 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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