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WAYS'엔 인생의 고단함이 따뜻하게 녹아있다

와인의 농익음이 주는 행복

검토 완료

장동언(ringrin)등록 2006.09.27 17:55

영화의 한 장면(사진) ⓒ 장동언


red wine [피노누아]는 재배하기도 까다롭고 익은 포도송이를 따서 다루는 과정도 까다로운 품종으로 만들어진 고급와인이다. 이 와인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보살펴주면 최고의 와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말보다는 내면으로 다가서며 정성을 다하듯이 말이다. 반면 [시라]는 통 속에서 3년 이상만 숙성되면 그윽한 맛과 향을 품어낸다. 어디서건 적응력이 뛰어난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이라 어떤 자리에서 건 아주 잘 어울리며 자유스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에겐 이 시라가 '딱' 이다.

그럼 white wine은 어떠할까. 내게 화이트 와인을 말하라면 [화이트보르도]를 손꼽는데 이 와인은 드라이하면서 포도 특유의 풍부한 맛을 지녔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숙성이 될수록 맛과 향이 더 깊게 우러나고 와인의 당도가 높아지며 색깔도 진해져 간다. 하면 이 와인은 마음이 너그러우며 항상 이해심이 풍부한 사람 즉 영화 [SIDEWAYS]에 등장하는 마야 같은 와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인 [소비뇽블랑]은 허브 향이 켠켠이 베어나는 아주 가벼운 와인으로서 숙성이 될수록 포도의 안 좋은 부분들이 와인의 맛에 섞여져 나오므로 숙성이 되기 전에 마셔버려야 된다. 그러고 보면 계기만 되면 분출되는 성을 발산하려하는 잭의 성격과 닮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자, 그럼 단 며칠이라도 와이너리 포도주를 만드는 캘리포니아의 농가를 여행하며 포도주에 흠뻑 취하고 시름을 잊어버리면 어떨까. 세상살이가 힘들고 버겁지만 숙성된 와인처럼 인생도 시간이 가면 함께 숙성된다. 그래, 아마도 그게 인생인 것 같다. 그런데 어디 인생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쉽게 이루어진다던가. 아니다. 삶은 그래서 힘겹고 버거운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사진) ⓒ 장동언


영화[SIDEWAYS]의 줄거리...

친구와 함께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40이 넘은 중년 친구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러나 볼품없이 꺾여져 가는 오늘날의 여정은 결코 여유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끔 CF에 출연한 탓으로 배우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여자를 꼬시는 잭[토머스 헤이든] 그는 주변머리 없는 성격 탓으로 부인과 2년 전에 이혼하고 오직 와인으로 시름을 달랜다. 그리고 여자 앞에서는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위인 마일스[폴 지아매티], 이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포도주단지를 여행하며 와인 맛도 즐기고 골프도 치며 운이 좋으면 멋진 여자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첫 번째 들린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마야[버지니아 머드센]와 [미시시피의 유령] 에 출연한 레인메이커[마일스]에게 인사를 하자 잭은 멋진 여자라며 어서 꼬시라고 부추긴다.

다음날 와인 시음장에서 잭은 스테파니[샌드라 오 / 캐나다 출신의 한국계배우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부인]를 만나 뜨거운 열애에 빠진다. 물론 토요일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그러나 티격태격 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이들 두 사람은 평상시처럼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잭이 여행에서 얻은 건 결혼이라는 하나의 단어, 그는 콘돔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보다는 결혼의 이익이 더 크다는 계산을 얻었던 것이다.

반면 마일스는 전처의 결혼과 친구의 결혼도 지켜보았고 하여 이젠 학생이나 가르치며 밥이나 먹고사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라한 몰골로 집으로 향했으며 도착했을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다름아닌 마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마일스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사랑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는 달려간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으로.

인생사는 [피노누아] 와인이기도 하고 [소비뇽와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테루아]처럼 인생사도 거친 시련이 따른다. 예컨대 [SIDEWAYS]는 한 잔의 와인을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인생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달콤쌉싸름한 사랑의 묘약이다. 사랑의 본질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이 돼야 제격이듯 와인도 알맞게 숙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제 맛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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