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가슴에서 벗어날 그날을 기다립니다

추석장 보다가 아내와 다투었습니다.

등록 2006.10.05 10:16수정 2006.10.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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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아내가 자랑스럽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추석 떡값 받았어요.”
“그래? 얼만데?”
“10만원요.”
“야, 많이 받았네.”

어느 날, 아내는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추석 때 떡값을 준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아내는 추석 떡값으로 얼마를 받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였습니다.

“최소한 5만원은 주겠죠? 5만원 받으면 과일도 좀 사고 나물도 좀 사고 해야지.”

떡값 받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더니 오늘 드디어 그 떡값을 받아왔습니다. 아내는 지체없이 비용 계산에 돌입합니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배 한 상자 사는 데 3만원, 쇠고기 1만원어치, 떡고물, 나물, 기타 해서 1만원. 송편 만들 쌀은 집에서 불려서 하면 되고.”
아내의 셈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5만원이면 되네. 그럼 나머지 5만원은 어떻게 하지?”
“일단 통장에 넣어야겠다.”
아내의 자문자답이 이어집니다.

“응, 그래 그렇게 해.”
5만원 가지고 추석장을 볼 수 있을까 싶지만 추석 떡값까지도 아껴보자는 아내의 알뜰함에 저는 슬그머니 동의를 표시합니다. 마침 얼마 전에 여수에 있는 누나가 생선을 많이 보내 주어서 올해는 생선 사는데 돈들일 필요가 없으니 어쩌면 가능하기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기분이 흐뭇해졌습니다.


저녁에 추석장을 보러 갔습니다. 출발하기 전, 아내와 저는 어느 곳에서 추석장을 볼 것인가에 대해 상의를 합니다. 어디서 장을 봐야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의논하는 것입니다.

“추석장 보러 어디로 갈까?”
아내와 저는 몇몇 시장을 거론해 가며 저울질을 하다가 과일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장은 과일에 지출되는 비용이 제일 클 듯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a 과일 도매시장 내부

과일 도매시장 내부 ⓒ 홍용석


a 주인을 기다리는 갖가지 과일

주인을 기다리는 갖가지 과일 ⓒ 홍용석


과일을 도매로 파는 그 시장은 추석 과일을 준비하려는 사람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습니다. 평소 잘 가는 가게로 가서 배 두 상자를 싸게 샀습니다. 한 상자는 저희 식구 먹기 위해서, 다른 한 상자는 처가에 드리기 위해서 샀습니다. 과일은 다행히 아내의 예산 범위 내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일단 성공입니다.

a 식료품 코너

식료품 코너 ⓒ 홍용석


다음은 식료품 코너로 갔습니다. 식료품 코너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추석이 가까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a 시금치를 사고 있는 아내

시금치를 사고 있는 아내 ⓒ 홍용석


우선 고기 코너로 가서 쇠고기 조금하고 돼지고기를 샀습니다. 다음에 어머님과 강민이가 좋아하는 잡채요리를 하기 위해 당면과 시금치, 버섯을 샀습니다. 그리고 요리에 필요한 참기름과 간장을 샀습니다.

생선 코너를 돌다보니 냉동 명태살이 보입니다.

“명태살 사다가 전 부쳐 먹어요. 추석인데.”
아내는 이미 쇼핑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시간이 흐를수록 물건으로 쌓여가는 쇼핑 카트가 제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하였지만 여기까지는 아내의 말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a 시식코너에서 '동그랑땡'을 먹고 있는 아들

시식코너에서 '동그랑땡'을 먹고 있는 아들 ⓒ 홍용석


쇼핑을 하는 동안 아들 강민이는 동그랑땡 시식 코너를 돌면서 맛난 것을 챙겨먹고 있습니다. 돈까스, 동그랑땡을 특히 좋아하는 강민이는 마트에 올 때면 꼭 이곳을 들릅니다.

아내는 분주히 이것저것 집어다 쇼핑카트에 집어넣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이미 아내의 예산을 훨씬 초과한 것 같습니다. 쇼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내가 배추를 사러 가자고 합니다. 김치를 담가야 한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내를 따라 갔습니다.

야채 코너에서 배추가격을 본 아내는 입을 벌리고 맙니다.
“배추 한 포기에 4천원이래요. 비싸서 못 사겠어요.”

“그래? 그럼 사지마.”
약간 짜증이 나있던 제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김치도 없이 어떻게 밥을 먹어요?”

이번에 제가 더 큰 소리로 맞받아쳤습니다.
“그럼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배추를 사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배추가 비싸다고 엄살 좀 부리려던 아내는 뜻밖의 저의 행동에 잠시 멀뚱하게 쳐다보더니 쇼핑카트에서 몇 가지를 들어냅니다. 명태살 하고 그외 꼭 필요하지 않은 몇 가지를 다시 진열대에 갖다 놓고 옵니다. 그리고는 배추 두 포기를 가져옵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추석장보기가 끝이 났습니다. 식료품 코너에서는 애초의 예산을 훨씬 초과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맛있는 동그랑땡을 많이 먹었으니까요. 아내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흘끔 아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것 외에는. 그 약속이 지켜지길 기대했던 제가 잘못이지요. 아내 입장에서는 멀리서 시어머님이 와 계시니 반찬에 신경이 쓰일 것입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이번 추석은 강민 엄마가 받아온 떡값으로 지내게 되었네? 요긴하게 참 잘 썼다.”

아내는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배추가 이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여수 형님네한테 배추 좀 보내달라고 해야겠어요.”

“그래, 그렇게 해.”

아내와 다투고 난 뒤 생각해 보면 늘 제가 잘못했습니다. 늘 제가 마음이 좁았습니다. 오늘도 괜한 것 가지고 제가 속 좁게 행동했습니다. 언제나 이 빈대가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a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 ⓒ 홍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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