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법률구조 소송 당신이 알아서 해라?

무료법률구조는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

등록 2006.11.01 14:29수정 2006.11.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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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조공단은 87년 창설 이후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국가보훈대상자, 소년ㆍ소년가장, 모ㆍ부자 가정,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무료 법률구조 등의 법률 지원을 해 왔으며,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여 국내거주 외국인도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작년 말 경영혁신대상 산하기관 207개 가운데 97개의 부처 산하기관 및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대해 서비스 이용고객 일대일 개별면접을 통해 처음 고객만족도 조사를 한 결과 법률구조공단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현실적으로 시민들이 체감하는 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 서비스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음을 드러냈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법의 보호에서 소외되어 있는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법률구조제도는 현대사회에서는 국가가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이고 더 나아가 의료서비스와 같은 사회복지제도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위 문구는 법률구조공단이 홍보하고 있는 법률구조제도의 개념이다. 그러나 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가 홍보 문구와 달리 부실하다는 것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 고객만족도에서 드러나듯, 실제 이용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럽기 그지없다.

법률구조공단은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권익 보장을 위하여 작년 7월 노동부와 협약을 체결하고 체불피해노동자들에게 민사 소송대리 등의 무료법률구조를 실시하고 있다. 그 지원대상은 ‘임금 및 퇴직금 체불로 인한 피해근로자(국내 거주 외국인 포함)’로 노동사무소 발행의 체불임금확인서를 갖고, 공단에 체불임금 청구 관련 소송대리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a 체불금품 확인원과 소장접수증명원

체불금품 확인원과 소장접수증명원

공단의 홍보 내용대로라면, 국내거주 외국인도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법률구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법률구조를 받기까지 절차적 접근성의 문제라든가, 공단의 전문성 부재는 이주노동자들을 법률구조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역시 위의 문구처럼 ‘법의 보호에서 소외된 이들의 권리구제를 위한 국가의 의무이자, 사회복지제도인 법률구조제도’를 통해 체불임금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하도록’ 요구받았고, 결국에는 "소송을 진행할 수 없다. 당신이 해라"는 담당 직원의 답변을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 쉼터에 퇴직금 문제로 상담을 왔던 인도네시아인 와환과 그 친구들은 지난 5월 노동부 진정을 했었다. 하지만 해당업체는 약 1000만 원에 이르는 퇴직금 지급을 거절하였고, 지난 6월말 결국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었다.


법률구조공단에 무료법률구조를 신청하면서, 소장 작성에 필요한 노동사무소 발행 ‘체불금품 확인서’라든가, 성명과 입ㆍ퇴사일자, 미지급내역 등이 기재된 ‘개인별미지급내역서’, 피고인 주민등록등본 등 공단에서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제출하여 체불임금 청구 관련 소송 대리를 의뢰하고, 그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소장이 접수된 지 근 4달이 지난 지난달 말일, 담당 법무관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개인별미지급내역’과 관련한 뭔가를 노동부로부터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이주노동자들의 체불임금과 관련하여 소액재판을 직접 청구해 봤던 터라, 넉 달이 넘기까지 소액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던 나는, ‘이미 제출한 서류를 다시 제출하라는 이유가 뭔지?’를 물어보려 하다가 "소송 대리를 위임받은 공단 변호사나 법무사가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로 요청하면 될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가, “그럼, 내가 이 사건 맡지 않겠다. 당신이 해라”는 핀잔을 들었다.

담당자의 말에 대해 “민원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하는지, 담당자 이름을 대라”고 요구하자, 전화를 임의로 끊고는 전화 연락을 해도 받지도 않고, 전화를 요구해도 성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답변을 주지 않았다.

소액재판을 청구하는 법무관 입장에서는 '사건이 한두 건도 아닌데, 서류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부족한 서류를 보충하는데 시간을 들이기에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료법률구조는 공단 스스로 밝히듯, 우리 사회 저소득 소외 계층의 권리 구제를 위한 사회 복지적 접근이 필요한 사업이다. 그런 사업을 민원인이 조금 까탈하게 군다고, 담당자가 못 하겠다 전화를 끊고, 연락을 기피하는 것은 책임 있는 공기관의 태도가 아니다 싶어 법률구조공단에 다시 연락을 취해 답변을 요구했다.

결국 저녁 퇴근 무렵 수원법률공단지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런데 지부장은 “대화중에 법무관이 감정이 상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이해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어 왔다. 궁색한 변명 중에 더 어이없었던 것은 “다들 변호사가 될 사람인데, 무료 소액재판을 맡다 보면, 어떤 때는 18만원 못 받았다고 도와달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건은 많고 인원은 없고 어렵습니다”라며 애로점을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변호사가 될 사람의 입장에서는 18만원 아니 100만 원, 1000만 원도 큰 돈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최저임금에 준하는 생계비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절박하기 그지없는 돈이고, 그런 돈이나마 받아보겠다고 무료법률구조를 신청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무료법률구조를 국가가 베푸는 혜택 정도로 생각하고, 제기되는 민원 중 성가신 것은 무시해도 좋다고 여기는 것은 시민 사회적 권리에 대한 침해요, 권리 구제를 위한 절차적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며, 짓밟음이나 다름없다. 법률구조공단은 ‘왜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고객만족도가 낮은 지’를 곰곰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기복 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고기복 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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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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