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에는 '분대장'들이 있다

[육군훈련소 경험담 ②] 일생에 한번은 마주치는 '분대장'들에 관한 이야기

등록 2006.11.05 09:15수정 2006.11.0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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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한 나의 훈련소 체험수기 '중대장님, 제가 숨긴 라이터 찾아주십시오'가 지난 주말에 <오마이뉴스>와 포털사이트의 메인화면에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그럼으로써 역시 예상치 못했던 많은 반응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두 번이라는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어쨌든 겨우 4주 훈련 다녀오면서 그런 글을 쓰기까지 나 역시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서 2년이라는 시간을 군에서 보내는 많은 현역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전제를 남겼지만, 사실 포털사이트에서는 글을 끝까지 읽지 않는 독자들도 많다. 필자의 취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비난하는 일부 네티즌들에게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나는 포문을 열고 싶었던 것이다. 4주 훈련을 다녀온 필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판국에, 5주 훈련을 경험하고 자대배치 후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오죽할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글을 통해 그 많은 이야기들을 끌어올리고 싶었고,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도 다양하다. 개인 블로그나 포털 사이트의 많은 게시판도 있고, <오마이뉴스>에 기자회원으로 가입해서 나처럼 직접 기사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기사가 되느냐"는 반응을 보인 독자들도 있지만,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코너는 원래 그런 개인적이고도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기사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알고 있다.

게다가 나의 글은 개인적인 글이면서도, 반드시 그렇게 규정지을 수만은 없는 글이다. 매주 월요일에는 현역병들이, 목요일에는 보충역들이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받는다. 저번 주에 갓 입소한 우리 아들들과 형제들도 훈련소에 입소해 첫 주말 종교행사를 다녀와 초코파이가 왜 그렇게 맛있는지 느꼈을 것이다. 다가오는 월요일에도 또 누군가가 입소해 군생활을 시작한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면, 인정해야 할 군의 변화된 모습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고민과 토론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당연히 더 많은 것을 알 수 밖에 없는 현역 경험자들의 글들이 여러곳에서 올라오길 기대해본다.


훈련소에는 '반말'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도 따뜻함이 있었다, 존중과 배려라는...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정감어린 인사...
누가 군대가면 욕설을 배운다고 했던가. 존칭어를 쓰는데..."


"여러분이 그토록 경계했던, 여기의 분대장들은 여러분에게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잠을 줄였고, 여러분의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하여 쉬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


이 구절들은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받게 되는 '병영일기'라는 일기장의 처음과 끝부분에서 볼 수 있는 말들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는 슬슬 공감가게 됐고,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맞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육군훈련소는 '상호 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라는 모토를 내걸면서 많은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일조점호가 있기까지, 훈련소 내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육군가'와 '육군훈련소가' 다음으로 나오는 노래는 그 '상호 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노래 '바꿔 나가요'다. 일부 동료 훈련병들이 참 좋아하던 노래였다. 그 이유는 "유일하게 노래다운 노래(?)"라는 것인데, 성량이 풍부한 여성 보컬이 현대적인 분위기로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모토에 걸맞는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상호 존중하는 언어 사용"이다. 구체적으로 군대 예절에 걸맞는 존칭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도 그렇지만 최근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는 이들은 단 한번도 부당한 언어나 무례한 반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훈련병들을 관리하는 분대장(조교)들도 꼬박꼬박 존칭어를 사용해야 한다.

폭력이나 부당한 얼차려도 그렇다. 단 한대도 맞아본 적도 없고, 과한 얼차려도 받아본 적이 없다. 군은 훈련을 받고 나라를 지키러 가는 곳이지, 일부 남성들이 인터넷에서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구타'를 당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따뜻한 집과 떨어져 고생하는 많은 현역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유지해야 하는 변화다.

분대장, 나중에 만나고 싶어지는 그들

내가 평소의 지병 때문에 연대 의무과에 입실해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훈련병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한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었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분대장이 그를 거의 업다시피 해서 데려오던 상황을 보게 됐다.

사실 나도 그렇다. 나 역시 한번 쓰러진 적이 있다. 의식이 왔다갔다 하던 상황이라 나중에야 이야기를 들었는데, 쓰러진 나를 업고 뛰면서 의무과로 데려갔던 사람은 일석점호를 맡고 있던 당직 분대장이었다. 물론 사고가 나면 안된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과거에는 분대장과 훈련병의 관계가 어땠는지 몰라도, 내가 본대로라면 아주 아름다운 관계다. 우리의 눈에도 분대장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보일 정도였던지라 웬만하면 분대장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려 노력한 편이다. 물론 다양한 사람이 들어오는 곳이 훈련소라서 이전 기사에서 이야기한 M군처럼 분대장들에게는 '고문관'처럼 느껴지는 훈련병도 있을 것이고, 필자처럼 병약한 건강으로 본의아니게 분대장들로 하여금 더욱 신경쓰게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훈련을 마칠 때쯤에는 고마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언제 한번 같이 만나서 소주라도 기울이자면서 말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든 분대장들이 있었다. 그중에 말투나 목소리, 유머가 독특한 분대장의 경우에는 훈련병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씩 화제가 된다는 것 역시 한번쯤 기억해볼만한 소재라는 것도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당신의 기억에 남을 분대장이‥"

언젠가 '곽종훈'이라는 네티즌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분대장'에 대해 이야기한 글을 보게 됐다.

"당신들은 한번만 해도 되는 행군을 20번 넘게 한 조교들의 찢어진 발, 그대들이 내무실에 앉아 자유시간이 없다고 불평거릴 때, 편지는 커녕 전화도 못하며 지쳐버린 조교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라는 구절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짜증나고, 지겹고, 외로워도 '자부심'으로 훈련병 앞에 당당히 선다"고 이야기한다.

우연히 알게 된 타 중대의 분대장도 네티즌 '곽종훈'의 글처럼 '자부심'이 그 고된 생활을 버틸 수 있게끔 하는 힘이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분대장들은 육체적으로도 몹시 고단하다. 훈련병들과 마찬가지로 거리가 먼 훈련장을 똑같이 걸어야 하며, 갑갑한 군화를 벗을 시간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훈련병들이 모두 잠이 든 뒤에야 그들도 취침을 시작하며, 기상시간 6시에 반듯한 차림으로 기상을 통제할 수 있게끔 늘 40분 앞서 일어나는 이들도 바로 분대장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초소 근무도 교대로 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의 육체적 고단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곽종훈'이라는 네티즌의 글, 앞서 이야기한 '병영일기'에서 인용한 두번째 글귀도 그래서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든 훈련에 앞서 분대장들은 그와 관련된 절도있고 멋진 시범을 보이는데, 정말 멋있는 시범을 보여준 분대장들은 찬사의 대상이 된다. '병영일기' 속의 두번째 글귀는 그 부분에 특히나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랬을 것이다.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잠을 줄였을 것"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 것을 잘 알기에, 3주차 이상이 되면 '기본적인 예의와 선'을 지키는 선에서, 분대장과 훈련병은 격의없는 사이가 되곤 한다. '군'이라는 특성, 그리고 분대장과 훈련병이라는 관계지만, 사실 알고 보면 또래가 같기에 지켜야 할 것만 지킨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 '격의없는 사이'가 육군훈련소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고, 육군훈련소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인 것 같다. 5주 훈련을 경험하는 현역병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생에 한번은 '그들'과 마주친다

사실, 분대장들에 대한 글은 내가 훈련소 경험담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이다. 인터넷에서 분대장들에 대해 검색했을 때, 의외로 관련글이 적은 듯해서 더 많은 의견을 모아보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분대장을 경험했던 네티즌들의 사연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아무리 글을 쓰더라도 당사자의 생생한 이야기만은 분명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면제를 받지 않는 이상,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부딪치는 그들, 그들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는 우리, 당사자인 그들 모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느꼈을 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 솔직하게 풀어헤쳐보자. 아름다운 이야기와 속상했던 이야기, 되돌아보면 모두가 가치있는 이야기들임이 분명할 것이다. 필자는 그 이야기들이 꽃이 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2. 분대장과 관계없는 이야기라 본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병영일기'에 나온 구절 중 가장 뭉클했던 부분은 바로 이 구절이다.

"여러분의 군장이 무겁다고 이야기하지만,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이라는 무게를 양 어깨에 이고 20년의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1.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2. 분대장과 관계없는 이야기라 본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병영일기'에 나온 구절 중 가장 뭉클했던 부분은 바로 이 구절이다.

"여러분의 군장이 무겁다고 이야기하지만,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이라는 무게를 양 어깨에 이고 20년의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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