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담긴 도장들정민호
성당을 나오는데 관광객들이 내게 손을 내민다. 뭔가 해서 보니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다. 설마 나에게? 악수를 하자고 다가온다. 민망하게, 얼떨결에 악수 세례를 받았다. 이런, 너무 쑥스러운데.
마침내 성당을 나왔다. 다시 돌아보니, 내가 오던 길이 보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소심했었다. 갈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 때문에 뒤척거리는 밤도 여러 번 보냈다. 길 가다가 칼 맞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고, 길 잃어서 인생 꼬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언어 하나 못하는데도 스페인 간다고 할 때, 친구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아니면 나중에 영어라도 제대로 공부해서 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무모하게 비행기를 타버렸다. 그리고 결국 이곳까지 무사히 왔다.
이 길에서 스요시와 드림팀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헤이버그 할아버지와 미츠에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그들에게 배려를 배운 것도 행운이었다. 그들과 물 한 모금 나눠 마신 것도 행운이고 음식 하나 나눠먹은 것도 행운이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잠을 잔 것도 행운이고 스페인의 파티에 참가한 것도 행운이었다.
이곳에서 장 마리의 연주를 들은 것도 행운이고 눈물을 흘린 것도 행운이었다. 그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아는 내가 자랑스럽다. 또한 이 행운을 놓치지 않은 내가 사랑스럽다. 내가 자랑스럽고 내가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내가 되겠지?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내 가방 끈 고쳐주던 프랑스 할머니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부엔 카미노! 산티아고 가는 길, 무모한 여행은 끝났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계속된다. 이제부터 이 길에서 배운 것을 내가 가는 길에서 꼭 실천하리라. 부엔 카미노! 내가 미처 걷지 못한 길을 다시 걷기 위하여 올 때, 이 다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걸어야겠다.
산티아고, 고마워, 다시 올 때까지 무사하게 있어라!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위하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미 걸었던 사람들과 앞으로 걸을 사람들을 위하여. 부엔 카미노! 웃으며 돌아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끝났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많으니까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신발끈을 고치고 다시 걷는다. 무모한 여행은 계속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로 유명하다. 야곱 성인이 스페인 서북지방인 갈리시아 지방에 묻혀 있어서 종교인들은 이 곳까지 걸어서 가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종교적 이유가 아닐지라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걷기'의 즐거움을 가득 누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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