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비판 언론인 아들 파라즈의 죽음

사회운동가 가족을 겨냥한 군부의 '보복 행위'

등록 2006.11.18 19:47수정 2006.11.20 16:51
0
원고료로 응원
11월 8일은 파키스탄에서 비판적 언론인이자 사회활동가였던 나비드의 아들 파라즈가, 그가 태어난 나라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들과, 그의 가족과, 그가 태어난 땅의 슬픔을 힘으로 만들어야 하는 날입니다.

[파라즈 어머니 인터뷰] "아들 이름 확인한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어요"

a 파라즈의 글을 읽고 있는 어머니

파라즈의 글을 읽고 있는 어머니 ⓒ 진주

그 날은 시인 조안 엘리아(Joan Elia, 1931.12.14-2002.11.8) 2주기 기념일이었어요. 파라즈(Faraz)는 그 시인을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파라즈는 아버지에게 이 시인에 대한 방송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이 방송프로그램은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서 방송이 진행되는 것인데, 파라즈의 방송은 그 프로그램 중에서도 정말 좋았어요.

아이는 방송을 마치고 나서 학과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겠다고 했어요. 남편은 아이와 함께 퇴근하려고 했지요. 아이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해서 남편은 잠시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30분이 넘게 기다려도 아이가 오질 않아서 남편은 아이를 찾으러 화장실로 갔지요. 그런데 아이는 보이질 않았지요. 남편은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친구들과 공부하러 가버렸다고 생각하고는 화가 잔뜩 났어요. 저는 화가 났지만 아이가 연락하길 기다렸지요.

아이가 사라진 지 3일째 되는 날(2004년 11월 10일), 남편은 여전히 일하러 나갔어요. 그런데 다른 직원이 와서 사무실 건물 벽 부근에 사체가 발견되었다고 전달했어요. 누군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지요.


남편이 늘 그런 일들을 해왔기 때문에 바로 내려가서 둘러보았지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경찰들도 있었어요. 남편은 사체 근처에 갔다가 경찰에게 신원을 확인해보라고 하고선 돌아섰어요. 경찰은 주머니를 뒤져서 신분을 확인했지요.

FARAZ AHMED. 남편은 다시 돌아섰어요. 이름이 뭐라구요? FARAZ AHMED. 그 사람 이름은 그게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남편은 가까이 가서 이름을 확인했어요. F.A.R.A.Z. A.H.M.E.D.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남편은 한참을 서 있다가 시체를 확인했지요.


나중에 병원에서 손톱까지 모두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았어요. 믿을 수가 없고 당황스러웠지요. 아이의 온 몸은 구타와 고문의 흔적들로 엉망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전화를 받았답니다. "아들에게 사고가 났습니다."


수사와 사체부검 대신 고문과 폭력의 흔적들

파라즈의 온몸은 고문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목은 완전히 부러지고 코는 완전히 두개골 쪽으로 밀려들어가 있었습니다. 나비드는 인근의 지나(Jinnah) 병원으로 사체를 옮겨 확인한 후에야 눈앞에 있는 이 처참한 시신이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았습니다.

나비드는 병원에 사체부검을 여러 번 요청했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는 부검을 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고, 병원과 경찰 그리고 지역 단체장도 아들의 살해자를 찾게 되고 그의 가족들은 도움을 받을 거라고 말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건현장은 제대로 보호되지도 않았고, 죽은 파라즈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와 컴퓨터 내의 자료들, 이메일, 옷가지들, 물건들은 사라졌고, 사체부검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단서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현장에 있는 혈흔은 아무런 단서를 제공하지 못했고, 경찰들은 살인이다, 자살이다 우왕좌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비드가 제대로 된 수사를 해줄 것을 계속 요청하자 경찰과 군 측은 이제 나비드의 아내와 아들까지 협박하고 폭행했습니다.

파라즈가 죽고 한 달이 지난 뒤 둘째 아들이 통학길에 폭행당했고,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네 아버지에게 이 일에서 손 떼 라고 전해." 그리고 또 한 달 뒤, 파라즈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폭행당하고 지갑을 도난당했습니다.

평화를 꿈꾼 파라즈, 저항운동의 희생자가 되다

a 세계청년캠프에 참여한 파라즈(15세, 캐나다)

세계청년캠프에 참여한 파라즈(15세, 캐나다)

파라즈는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습니다. 무엇이든 생각나면 글을 썼고, 시를 썼습니다. 문학과 예술, 미학적 방식을 통해 평화의 모습을 그려내고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 다섯 살 때 세계청년 캠프에 파키스탄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는데 참가자들 가운데 가장 어렸던, 유망한 평화애호가였습니다. 파라즈의 죽음은 아버지의 사회운동에 대한 군부의 끔찍한 보복행위였습니다.

카라치에는 리아리(Lyari, 길이 16.5㎞) 강이 흐르고 있는데, 정부는 2001년 12월부터 이 강 위로 고속도로를 계획했습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계획진행으로, 그 마을에서 100년이 넘게 대대로 살아온 30만명이 넘는 주민들과 최소한 10만여명의 학생들은 집이 허물리고, 학교가 허물어져 쫓겨나갈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국가계획은 군사정권인 무샤라프(Musharraf)가 직접 명령하여 수행되고 있었고, 군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나비드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의 땅값은 고속도로 개발로 더욱 오르게 되어 군부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국가개발계획으로 무조건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강제이주를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에서부터 최근 평택 주민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개발로 인한 이주민이 오랫동안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2002년 1월부터 착수된 이 건설사업에 대해 파키스탄의 50여개 단체가 연합하여 반대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비드는 그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었고, 2002년 7월 무렵 정부는 일괄적으로 한 가족에게 80㎡의 땅과 5만 루피(약 77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주민들은 이주하여 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이주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 저항을 저지하는 데 있어 나비드를 협박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의 아들과 가족을 이용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군부는 무엇이 가장 효과적으로 고통을 줄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파키스탄, 실종과 살인이 멈추길 바라며

a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 낭독(위 사진/왼쪽이 AHRC 위원장 바실 페르난도) 되고 있는 가운데, 나비드(Baseer Naveed, 아래 사진/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가 이를 듣고 있다.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 낭독(위 사진/왼쪽이 AHRC 위원장 바실 페르난도) 되고 있는 가운데, 나비드(Baseer Naveed, 아래 사진/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가 이를 듣고 있다. ⓒ 진주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북부경계지역은 2001년 9·11 이후 1천여명이 실종되었고, 발로치스탄(Balochistan)주는 같은 해 군인이 점령한 이후 4천여명(2005년 12월 통계)이 실종되었습니다.

이곳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군부는 이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수많은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가나 언론인 등이 실종된 것은 1년 반 사이에 1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종사건이 법원에서 다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AHRC;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는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전달할 편지를 낭독하면서 파라즈의 죽음에 애도를 전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언제나 해야 할 일은 파라즈의 죽음을 잊지 않는 겁니다.

잊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다른 파라즈가 생명을 잃지 않도록 작은 행동을 통해 그의 슬픔을 힘으로 만들어 가는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에서는 파키스탄 정부에게 파라즈의 죽음에 대한 조사 및 책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http://www.ahrchk.net/ua/mainfile.php/2006/2048/

*진주 기자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에서는 파키스탄 정부에게 파라즈의 죽음에 대한 조사 및 책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http://www.ahrchk.net/ua/mainfile.php/2006/2048/

*진주 기자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