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달린다

'빛을 만난 사람' 시각장애 마라토너 차승우씨

등록 2006.12.16 14:06수정 2006.12.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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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산에서 도우미와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는 차승우씨(사진 왼쪽).

남산에서 도우미와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는 차승우씨(사진 왼쪽). ⓒ 김수현

토요일 오후, 남산 산책로에는 3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모여든다. 바로 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 회원들이다. 이들은 목요일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남산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풀코스 100회 완주를 맞은 이용술씨를 비롯해 현재 100여 명의 시각장애 마라토너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철인 3종 경기(트라이애슬론)에 도전, 3시간 44분 16초만에 완주하여 화제가 되었던 차승우씨를 만났다. 시각장애 1급, 청각장애 2급의 장애를 가진 그이지만, 수영 1.5㎞와 사이클 40㎞, 달리기 10㎞의 3종목으로 이뤄진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해낸 것이다.

이제 세계를 향해 달린다

지난 12월 3일에 차승우씨의 첫 국제 마라톤대회 도전이 있었다. 영화 <말아톤>의 모델이 된 발달장애인 배형진씨를 비롯해 8명의 장애인들이 3일 열린 싱가포르국제마라톤에 참가한 것이다.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이 에쓰오일의 후원을 통해, 달리기를 꿈꾸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국제마라톤에 참가시키는 첫 번째 사업이다. 한두 명의 장애인이 외국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온 적은 있지만,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집단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BRI@그동안 풀코스를 24번이나 완주한 차승우씨였지만 적도와 가까운 싱가포르의 고온다습한 기후가 30km 지점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차씨는 "여기서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걸어서라도 가자"는 도우미의 격려와 도움으로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차승우씨의 싱가포르마라톤대회 기록은 4시간 46분. 목표로 했던 4시간 30분대 기록은 깨지 못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만족한다. 내년 2월 두 번째 국제대회 도전이 될 홍콩대회에서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활짝 웃는 얼굴, 그 눈가의 주름만큼이나 밝고 당당하게 세상을 달려가고 있는 차승우씨를 만나보았다.


나도 한번 뛰어볼까?

그가 처음 마라톤을 접하게 된 것은 2002년이다.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서며 "여의도로 마라톤을 뛰러간다"길래, '보이지도 않는 놈이 무슨 마라톤을…'하면서 궁금증에 따라갔던 것이 마라톤과의 첫 만남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마라톤을 하고 있었고, '나도 한 번 뛰어볼까?'라는 생각에 뛰게 되었다. 그리고 10km의 완주. '나도 할 수 있구나!', '내가 10km를 뛰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고 매우 뿌듯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마라톤클럽에 가입을 했고, 뜀박질 인생이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인도 마라톤을 할 수 있다

차승우씨는 어렸을 때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양실조인 줄 알고 음식조절만 하면 되겠지 하고 방치했다고 한다. 5km를 혼자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맨 앞자리에 앉아 칠판에 써놓은 글씨를 보기 위해 머리를 앞으로 당기며 수업을 받았다. 16살이 되어서야 국립의료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시신경위축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현재 그는 종이를 눈에 바짝 갖다 붙이면 큰 활자를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의 시력을 갖고 있다. 제 발아래의 장애물조차 볼 수 없는 시각장애 1급의 장애인이기 때문에 작은 돌멩이나 과속방지 턱에도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는 도우미가 꼭 필요하다. 비장애인 아마추어 마라토너 한 명이 옆에서 함께 뛰면서 장애물이 나오면 피하게 해주고 방향을 잡아준다. 도우미를 잘 만나면 장애물이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도우미를 잘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힘들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뛴다

지방의 마라톤대회에 다니다 보면 예전에 도우미 해주셨던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함께 뛰었던 기억 때문인지 우연히 만나게 되면 서로 매우 반가워하곤 한단다. 참 많은 사람들을 도우미로 만났지만 유독 그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중앙일보배 마라톤 때였다. 당시 모 병원 원장인 김재우씨가 차승우씨의 도우미를 해주었다. 그는 당시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며 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도우미 분이 "나는 힘들어죽겠는데 넌 노래가 나오느냐"며 타박을 하셨단다.

그가 100km를 처음 뛰던 날에는 눈이 왔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낮 1시 정도까지 뛰어야 했는데, 아침이 되니 눈이 너무 쌓여서 뛰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부산에 50년만의 폭설이 내렸던 해였다.

옆에서 뛰던 사람이 "힘들면 택시 타고 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죽어도 목표지점에 도착해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눈이 오니 길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먹을 것도 주면서 더욱 응원해주었다.

하얀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며 '골인 지점에 들어가면 저 눈밭에 한번 누워 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골인.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벌렁'하고 누워버렸다. 놀란 의사와 간호사들이 쫓아왔다. 그는 태연하게 "저 괜찮아요. 그냥 누워보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했단다.

그리고 2002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었다. 4시간 12분의 기록. 당시에 뛰면서 생각했던 건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것뿐이었단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풀코스 완주 25회, 100km는 3회, 50km 6회, 하프는 40~50회 정도 정도를 뛴 중견 마라토너가 돼 있다. 지난 10월에만 풀코스를 4번이나 완주했다고 하니, 국내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 거의 모두를 섭렵한 셈이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다

어느 날 TV에서 외국 지체장애인이 철인 3종 경기 완주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 보며 그는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철인 3종 경기에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영의 발차기부터 차근차근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철인 3종 경기 1인자인 박병훈씨를 만났다. 차승우씨의 코치가 된 박씨는 꽤 무서운 스승이었다. 그가 힘들어서 지친 내색을 할 때면 "할 거야, 말 거야!"하며 호되게 훈련시켰다.

사이클을 할 때는 도우미 김규영씨가 앞에서 코치인 박병훈씨가 옆에서 함께 자전거를 탄다. 수영을 할 때도 옆에서 도우미가 함께 수영하면서 방향을 잡아주고 다른 선수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서 수영할 공간을 확보해준다.

철인 3종 경기는 바다수영 1.5㎞와 사이클 40km, 그리고 달리기 10㎞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사이클 속도가 시속 30km를 넘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부상도 많은 편이다. 지난 6월 4일 경기에서만 해도 6명이 다쳐서 실려 갔을 정도다.

처음은 항상 어렵다

처음으로 사이클 대회에 나갔던 날. 대관령 아흔아홉 고개를 자전거를 타고 넘어야 하는데 기어 바꾸는 것도 모른 채 나갔던 터라 매우 힘들었다. 내 무게 중심 때문에 자전거가 자꾸 오른쪽으로 쏠리는 통에 도우미가 왼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얘기해야 했다. 이후 자전거 실력도 점차 늘어 기어조작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니 좀더 수월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a 차승우씨.

차승우씨. ⓒ 김수현

철인 3종 경기에 나가기 위해 이렇게 1년간 준비를 했다. 이 도전기에 관심을 둔 한 촬영팀이 옆에 붙어서 1년간의 도전과정 모두를 촬영하기도 했다. 내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특집방송에서 차승우씨의 철인3종 경기 도전과정이 모두 공개될 예정이라 한다.

시각장애 마라토너들의 활동도 왕성해져서 차승우씨뿐만 아니라 풀코스 100회 완주한 이용술씨 기사도 많이 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차씨는 "이용술씨를 만나면 경쟁심이 생겨서 완주 기록이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마라토너로서는 훌륭하지만 나처럼 철인 3종 완주는 못했지 않은가. 그래서 경쟁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라며 특유의 밝은 웃음을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용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 기자로서 취재/작성한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시각장애인용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 기자로서 취재/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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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도서관 기획홍보팀에 근무하며 시각장애인에 대한 기사를 주로 작성해왔으며.이후 교육업체 및 기업 홍보를 담당하며 알게 된 지인들을 통해 도움이 될만한 교육 소식을 취재하여 종종 나누었습니다. 현재는 한국어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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