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봉 수원 화서 주공아파트철거대책위원회 규찰부장. 유지연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던 장씨는 그날의 폭력 사태에 관한 대목에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철거 용역업체 직원 500여 명과 경찰병력 4개 중대, 그리고 소방차까지 동원된 강제 철거였다.
집에서 쫓겨난 장씨를 비롯해 화서 주공아파트 세입자들은 얼마동안 목욕탕에서 생활을 했다. 목욕탕 생활이 어렵게 됐을 때 철거민들은 가수용 단지와 국민임대아파트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며 수원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2000여 세대가 거주했던 화서 주공 아파트 주민 95%는 세입자였다. 그리고 세입자들은 대부분 노인들과 비싼 집 값을 낼 형편이 안 되는 도시 빈민들이었다. 강제 철거 전, 세입자들은 이주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시청에 요청했다. 그러나 세입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간경화를 앓고 있는 장씨는 노숙 투쟁 이후 건강이 더 악화 됐다. 빨리 입원치료를 받아야하지만 싸움을 멈출 수 없다며 300일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진 철대위 홍보부장은 "95%의 세입자가 희생을 당하는 건 옳지 않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 중요하지만 내 집에서 살 수 있는 기본권이 명시된 헌법보다 중요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씨는 몇 개월 전까지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던 평범한 주부였다. '투사'로 변신한 이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기본권 같은 걸 모르고 살았다. 나도 강제철거 당하기 전까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는 주거권을 주장할 수 있고, 가수용 단지와 국민임대아파트 같은 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곁에서 눈을 감고 듣던 안석훈씨는 "아이들 학비 걱정 없이 공부시킬 수 있고, 집세 걱정 없이 내 집에서 살 수 있는 날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최근 공무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1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철거민들의 비닐 천막. 한 겨울의 바람을 막기는 힘들지만 이마저도 저녁에만 설치가 가능하다. 유지연
"경찰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들"
강제철거의 상처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수원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8가구 중 아이들은 총 4명. 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5살 여자아이와 6살 남자아이,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된 두 명의 아이들이다.
한창 예민한 시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여학생 혜영(가명)이는 낡고 허름한 비닐천막 안에 전기장판을 깔고 8명이 누워 잠자는 상황을 하고 있다. 숙제는 수원 시청 앞 가로등 아래 마련된 자리에서 한다.
중학교 1학년 태준(가명)이와 6살 태식(가명)이는 부모와 이웃 어른들이 용역업체 직원들과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태식이는 "경찰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강제철거의 충격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으며 아직도 밤이면 경기를 일으키고 오줌을 싼다.
태권도를 하고 있는 태준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에도 흥분하며 적의를 드러냈다. 누구라도 유심히 자신들을 보고 있으면 용역업체 직원으로 여기고 방어태세를 갖춘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죽여버린다"는 말이 자주 튀어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몇 철거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스티로폼 위에 국과 반찬 몇 가지가 올려졌다. 순식간에 밥상이 차려졌다.
"여기서 먹으려니까 어색하지? 그래도 좀 들어봐."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에서 밥을 먹으려니 어색했다. 그러나 찌개, 김치와 함께 몇 숟가락 먹다보니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철거민들의 빨래. 인도에 널려 있는 빨래는 먼지가 가득하다. 유지연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바람을 피할 비닐 천막이 설치됐다. 얇은 비닐 몇 겹과 스티로폼 위의 담요와 전기장판이 한겨울 철거민의 잠자리다. 불편한 몸으로 천막 치는 일을 돕던 장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다투는 가족이 부쩍 늘었어. 벌써 헤어진 가족도 있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고 투쟁하는 건데, 가정이 깨지고 난 뒤 대책이 나오면 뭐하겠어. 제발 가정의 평화가 깨지기 전에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야.”
장씨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16일 시청의 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성공회대학교 웹진 INK 7.0에 유사한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추가 취재하여 내용을 변경,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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