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 뱀 잡았어!

[호주에서 열달16] 스네이크 핸들러 집에서 뱀 잡기

등록 2006.12.31 18:45수정 2006.12.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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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BRI@2005년 말부터 열 달간 호주를 여행하며 재미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물론이고 <오마이뉴스>에 '호주에서 열 달'이라는 꼭지로 연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만 들려주면 다들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바로 두 달 동안 뱀 잡은 이야기!

호주에서 첫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rganic Farm, 일손이 필요한 현지 농가가 자신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제도) 생활을 할 때였다.

말도 잘 안 통하는 해외에서 이름도 생소한 우프를 처음 시작한 때라 언니와 나는 겁을 잔뜩 먹고 있었는데 나의 첫 우프 호스트인 얍과 제다는 이런 걱정을 싹 씻어 주었다. 나와 같은 우퍼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게스트하우스만 보아도 그들의 자상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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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핸들러인 얍이 직접 잡아온 뱀을 들고 있다. ⓒ 김하영

묵직한 자루 속에 설마... 뱀?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얍과 제다가 어떤 전화를 받자마자 황급히 차를 타고 나가더니 한참 후에 돌아왔다. 얍은 앞뜰에 묵직해 보이는 요상한 하얀 자루를 내려놓았고 제다는 우리가 방금 뱀을 잡았다며 방에 들어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다. 그렇다면 자루 속, 저 꿈틀거리는 게 설마… 뱀?

얍이 묶인 자루를 풀자, 뱀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었다. 얍은 끝에 집게가 달린 기구를 이용해 뱀의 머리를 잡아채더니 다시 손으로 뱀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자 뱀은 금세 얍의 팔을 둘둘 감아 올라갔는데 그 두께와 길이가 어마어마했다.

이를 거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던 언니와 나는 겁에 질려 덜덜 떨었는데, 얍과 제다는 뱀을 이러 저리 살피고 사진을 찍느라 신이 났다. 한 술 더 떠 우리 보라고 유리문 바로 앞까지 뱀을 들이대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 사람들 뭐야?'

그런데 겁을 먹은 게 우리만은 아니었나 보다. 뱀은 얍의 팔에 매달린 채 그만 오줌을 싸고 말았다.

정부 지원으로 뱀 잡는 스네이크 핸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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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과 같이 스네이크 핸들러인 제다는 얼마전 크리스마스에 가정집에서 뱀을 잡아서 호주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 호주 채널7뉴스

일단, 이 사람들은 왜 뱀을 잡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호주는 야생동물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뱀을 잡아 죽이는 것은 불법이다. 얍과 제다가 살고 있는 탬버린 마운틴은 국립공원인데, 그 산에 살고 있는 뱀의 수가 아주 많다.

그래서 뱀이 가정집이나 업소에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때 개인이 뱀을 잡아 죽이면 안 되고 뱀을 잡는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와서 뱀을 잡아다가 뱀이 살만한 지역에 다시 놓아준다.

뱀을 사랑한다는 얍과 제다도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정식 이름은 '스네이크 핸들러(snake handler)'. 탬버린 마운틴에만 총 5명의 스네이크 핸들러가 있는데 모두 자원봉사 성격을 띠고 있어 뱀을 잡는데 사례는 받지 않는다.

실제로 얍은 그 지역 환경보호단체장이었다. 자격증을 따는 데 드는 돈은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해주므로 개인은 200호주달러(약 15만원)만 내면 된다고 한다. 뱀을 잡을 때 필요한 특이한 기구와 자루도 정부가 지원해 준다.

희안하네~ 뱀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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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뱀을 잡아 자루에 넣으면 다른 사람은 재빨리 자루를 묶어야 한다. 자루를 풀자 슬그머니 머리를 내놓는 뱀. ⓒ 얍

얍과 제다는 뱀을 잡으면 항상 집에 가져와 이리저리 살피고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긴 후에 다시 산에 풀어주었는데 그들의 사정이 어떻든지 간에 나는 뱀에 치를 떨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저번 것보다 두 배는 더 큰 뱀이 잡혀 들어왔다. 길이가 2m가 넘었다. 그런데 뱀이 너무 커서일까 이상하게 이번에는 뱀이 별로 무섭지가 않아 한번 만져 봤는데 전혀 징그럽지 않았다. 그냥 동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세 번째로 잡혀온 뱀을 들고는 사진까지 찍기에 이르더니 그 다음부터는 얍과 제다를 도와 직접 뱀을 잡으러 나가기에 이르렀다. 물론 내가 직접 잡은 것은 아니고 자루를 들고 있다가 뱀을 넣으면 재빨리 묶는 역할이었다.

같은 뱀이 같은 집에서만 세 번씩 잡힌 적도 있고 30분 혈투 끝에 잡은 뱀도 있었다. 또, 결국은 뱀을 찾지 못하고 찝찝하게 돌아선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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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한테 잡힌 뱀이 겁에 질린 나머지 오줌과 똥을 싸버렸다. 꼬리 옆 검은 물체가 뱀의 똥. ⓒ 김하영


뱀도 겁에 질리면 오줌 싸버려

내가 뱀한테 이렇게 급 친근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뱀도 사람한테 잡히면 다른 동물들처럼 겁에 질려 오줌을 싸거나 똥을 싸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연민을 느꼈다고나 할까. 특히 뱀은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뱀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그동안 겉모습만 보고 뱀이 징그럽고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뱀의 얼굴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고 체온을 느낄 수 없어 우리가 더욱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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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과 제다가 키우는 새끼 뱀이 막 벗은 허물. 눈과 입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다. ⓒ 얍


안방에는 뱀이, 냉동실에는 쥐가?

얍과 제다는 뱀을 잡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며 학교에 교육용으로 선보이는 등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라고 했는데 우리가 떠난 후 정말로 실행에 옮겼다. 다 자라면 키가 2m 50cm가 넘는 코스탈 카펫(coastal carpet snakes)종 새끼 두 마리를 정식 허가를 받고 집에 데려왔다. 수족관을 개조해 안방에 두고 뱀을 넣어두었다.

정말 재밌는 사실은 1주일에 한 번씩 밥으로 쥐를 줘야 하는데 그 쥐는 냉동된 채로 애완동물가게에서 판매한다. 그 쥐를 사다가 자신들의 집 냉동실에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 실온에서 해동시킨 후 뱀에게 준단다. 해동시킬 때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는 않는다니 천만다행이다.

덧붙이는 글 | '2006, 나만의 특종' 응모합니다.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6, 나만의 특종' 응모합니다.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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