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학교에 와줘. 친구와 심하게 싸웠거든"

[나만의 특종] 사춘기 겪는 아들과의 씨름으로 힘들었던 한해

등록 2007.01.01 09:34수정 2007.01.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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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사춘기이어서 굉장히 예민하고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앞섭니다. 이에 예의 없이 행동하거나 친구들끼리 싸움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집에서 얌전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는 안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긴 방학기간 동안 아이들의 마음이 넓어질 수 있도록 독서 지도를 하시고 아이들과 대화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방학과 함께 아들 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란의 일부다. 가슴 절절이 와 닿는 문구다. 이와 같은 당부를 하기까지 올 한해 겪었던 담임선생님의 심정을 난 누구보다 잘 안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극도의 사춘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아들이 저지른 일을 해결하러 다니다보니 어느새 한해가 저만치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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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게임하기를 원하는 아들을 달래어 펄벅기념관에 다녀왔다. ⓒ 최정애

먼저 1학기 중간고사가 있었던 지난 5월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지금 학교 좀 와야 돼. 내 친구와 심하게 싸웠거든. 내가 많이 때려서 병원 가야 해."

아들의 전화에 이어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가람이와 친구가 싸웠는데 가람이 주먹에 친구 입안이 터지고 치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양호 선생님이 상태를 보셨는데 심각하다고 합니다. 치과부터 가야 할 것 같습니다."

@BRI@순간 피가 멎는 느낌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모범생으로 알고 있던 아들이 친구를 때리다니. 그것도 심하게, 치아가 약해 평생 고생하고 있는 나는 특히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빠, 엄마가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 모은 것을 아들놈이 한방에 날려 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온갖 불길한 예감을 안고 학교로 향했다.

아들 친구의 입에 솜을 문 듯 불룩한 볼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아들과 아들 친구를 데리고 동네 치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아들 친구 부모님이 도착했다. 친구 아버님은 아들을 보자 대뜸 "경찰서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들은 싸움의 원인은 분명 아들 친구가 제공했는데 결과만 가지고 나는 죄인이 되었다.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엑스레이 촬영을 해 보니 치아에 손상이 가지 않아 별 문제가 없다는 것. 친구는 머리가 좀 어지럽고 아프다고 했다. 친구 아버님은 그 결과를 못 믿겠다며 대형 병원에 가서 뇌도 찍어보고 정밀 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치아 같은 경우 지금 당장 문제가 없더라도 후유증이 있으니 추후 문제가 발생하면 보상해 준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했다.

의사는 친구 아버님의 요구에 "엑스레이를 많이 찍는 것은 결코 몸에 좋지 않습니다. 현재 상태로 봐선 별 문제가 없어 보이니 며칠 경과를 지켜보시지요.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회복이 빠릅니다. 머리가 아픈 것은 아마 티격태격하다 충격을 받아서일 겁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가람 학생이 고의로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서로 자식 키우는 사람끼리 한발 이해해 주세요"라고 설득했다.

중간고사를 준비한다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예민해져 있는 아들에게 친구가 뒤에서 툭툭 치며 장난을 걸어왔다고 한다. "그만해"라고 했지만 친구는 계속 쳤다고 한다. 참다못한 아들의 주먹이 친구에게 날아갔다.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친구에게 퍼부은 꼴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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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과 올해 무던히도 싸웠다. ⓒ 최정애

아들 친구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지 "경찰에 넘기겠다"는 아버님의 말에 "저도 잘못했어요"라고 해명했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나라 법은 결과를 가지고 판결을 내리는 예가 많다는 의사의 말에 난 할말이 없었다. 그저 자식 교육 잘못 시켜 죄송하다는 말밖에.

여러 정황을 듣고 난 친구 아버님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며칠 상태를 두고 본 후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는 갔다. 나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맞은 아이 부모가 된다고 해도 후유증을 걱정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추후 문제에 대한 각서를 원한다면 미련 없이 써 줄 생각이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아들 친구 집에서 소식이 없었다. 먼저 전화를 했다.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건강식품을 사 들고 그 집을 방문했다. 친구 어머님은 자식 키우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나를 위로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들과 친구는 서로 예의를 갖추며 돈독해졌다고 전했다.

이 일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또 한방이 터졌다. 지난 8월 아들은 아파트 경비실 유리창을 깬 사건을 일으켰다. 학원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기심에 주먹으로 유리창을 쳐 본 것이 그만 큰 일로 번졌다. 경비원은 경찰에 알리고 경찰은 부모를 소환하고 나는 불려가 심문을 받고 보상을 해 주었다. 경찰은 아들에게 "스트레스가 쌓이면 운동으로 풀어야지. 유리창에 화풀이하면 안 된다"는 말로 다독거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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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와 혼혈아동들을 위해 부천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했던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의 모형 인형 앞에서 ⓒ 최정애

이외에 예민해져 있는 아들과 나의 일상은 다툼의 연속이었다. 92년생인 아들과 62년생인 나는 30년 세대 차를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조용히 책읽기를 원하는 나, MP3와 컴퓨터게임 등 영상물에 빠져 있는 아들, 두툼한 방한복을 사기 원하는 나, 가볍고 고상한 디자인을 택하는 아들, 된장국에 야채 먹기를 권하는 나, 달착지근하고 입맛을 자극하는 패스트푸드를 먹겠다는 아들, 진득하게 앉아 깊이 파고드는 공부를 했으면 하는 나,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아들….

이런 견해 차이로 유난히 올해 아들과 나의 목소리는 커졌다.

"엄마, 왜 이래. 뭐든 엄마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내 생각대로 할거야."

그 전까지는 내 말이라면 이유를 달지 않고 따랐다. 그러나 어느새 내 키만큼 자란 아들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엄마는 쇠퇴하고 있다"며 나를 놀렸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 언니에게 올 한해 힘들었던 아들과의 한판을 하소연했다. "딸은 엄마의 처지를 이해할 것 같다. 딸 키우는 일이 아들보다 훨씬 쉬울 것 같다"는 내 말에 딸 둘을 둔 선배는 "무슨 소리? 딸도 딸 나름이다. 나는 사춘기 딸 키울 때 가슴에 울화가 치밀어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예민한 아이들의 감성을 잘 어루만져야지. 안 그러면 나쁜 길로 빠진다"고 충고했다.

차비가 없어 10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라면이 최상의 간식에다 방과 후면 논과 밭에 나가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던 내 중학시절을 더듬어본다. 그 때는 사춘기 '사'자도 모르고 자란 것 같다. 지금 아들이 겪는 사춘기는 호사처럼 들린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세월은 변했다.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 저문 한해 부디 내년에는 아들과 나의 문화 충돌의 골이 좀 더 좁혀지기를 염원한다.

덧붙이는 글 | '2006 나만의 특종'

덧붙이는 글 '2006 나만의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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