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는 얼굴들

새 해가 되기 전에 제자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등록 2007.01.01 11:46수정 2007.01.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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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기억되는 얼굴들이 있다. 그 기억되는 얼굴이 아주 오랜만에 찾아주었다. 제자들이다. 졸업하고 근 5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그것도 선생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새벽 한 시까지 기다리다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맘이 절로 든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아이도 있고,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해 알아보는 아이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서 밤 10시 30분 쯤 전화가 걸려왔다.

@BRI@"선생님, 저 진아요. 지금 어디세요?"
"웬일이니? 지금 대전."
"웬일은요. 선생님 보고 싶어서죠. 지금 정숙이랑, 민애랑, 미선이랑 선생님 보고 싶다고 함께 있어요."
"좀 늦을 것 같은데… 12시쯤이나 도착할 것 같다. 넘 늦지 않겠니."
"그냥 기다릴게요. 애들이 선생님 보고 싶다고 난리에요."
"알았다. 혹 12시 넘으면 그냥 가고 내일 낮에 보자."
"안돼요. 내일 민애랑 서울 올라가야 한대요. 선생님 오실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진아의 전화를 받고 대전에서 전주로 내려오는데 차도 밀리고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진아 녀석은 끊임없이 전화기를 울려댄다. 혹 그냥 집에 가고 내일 보자고 할까봐서인가 보았다. 전주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해서 또 전화벨이 울린다.

"지금 어디세요?"
"거의 다 왔다."
"장소를 옮겼으니 오시는 데로 이쪽으로 오세요."
"알았다. 근데 인마. 전화 좀 작작해라. 운전을 못하겠다."

전화 좀 그만하라고 하면서 다시 다음 날 보면 안 되냐고 하니 펄쩍 뛴다. 녀석의 과장기가 보일만큼.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자고 있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씻고 나니 피곤이 확 밀려온다. 눈꺼풀도 축축 늘어지는 것이 그냥 이대로 잤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채듯 또 전화벨이 울린다.

"빨리 안 오고 뭐하세요. 지금 몇 시간 째 기다리고 있단 말에요. 안 오면 집으로 쳐들어갈 거예요."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 되어간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니 네 녀석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민애에요."
"저 누군지 아세요? 학교 다닐 때 안 좋아해서 모르는 건 아니죠."
"모르긴 왜 몰라. 넌 눈웃음 잘 치던 민애. 넌 요리한다고 했던 정숙이, 넌 볼 통통한 미선이, 그리고 요쪽은 방방 뛰는 우리 양실장. 근데 미선인 살이 많이 빠졌다. 예뻐지고."
"아니, 미선이만 예뻐졌어요. 나도 예뻐졌는데…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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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의 만남이 모두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 김현

아이들과 만남은 5년 만이다. 양실장이라 부르는 진아는 졸업 후 몇 번 봤지만 나머지 셋은 졸업 후 처음이다. 그런데도 금방 학창시절로 돌아가 어색함이라곤 하나도 없다. 몇 마디 주고받으며 반가운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진아가 케이크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웬 케이크? 오늘 누구 생일이니?"
"선생님이요. 오늘이 선생님 생일이에요."
"생일 지난 지가 언제인데 무슨 생일이야."
"참, 선생님도. 5년 만에 만났으니 오늘이 선생님 생일이에요."

그리곤 주인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더니 케이크에 양초를 꽂고 불을 붙인다. 그리고 축하노래를 부른다.

"선생님, 촛불 끄세요."
"야, 그러지 말고 우리 모두 끄자. 우리 모두의 생일이나 마찬가지인데."
"정말 그러네. 자 그럼 다함께 불을 끄는 거예요."

다 큰 여자 넷에 조금은 나이든 남자 하나가 작은 촛불을 향해 입을 모으고 불을 끄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그 틈에도 정숙이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역시 아이들의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순발력이란 기막히게 빠르다.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르더니 진아가 주인을 부른다. 접시에 케이크 한 조각을 덜어주면서 '우리 선생님 생일 케이크니 맛있게 드세요' 한다. 으이구, 저 능청이라니. 암튼 진아의 능청에 우린 다시 한 번 웃는다.

모처럼 만나 고 3 때에 있었던 이야기, 그때 감춰뒀던 이야기, 담임인 나 몰래 꿍꿍이를 펼쳤던 이야기,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 이야기, 그리고 반 아이들을 떠올리며 얘는 이랬느니, 쟤는 저랬느니 하며 풍성하게 웃음꽃 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가 다 되어간다. 그러자 진아가 졸립다며 가자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야, 너희들 이렇게 만나 좋은데 좀 더 있다 가거라' 했더니 민애와 정숙이, 미선이가 킥킥거리며 '오늘 우리 선생님 우리 만나 기분 되게 좋으신가 보다. 야, 조금 더 있다가 가. 넌 어찌 인정머리가 없냐' 하며 은근히 면박을 준다. 후후 역시 이 녀석들은 내 마음을 아는구나 싶어 진아를 빼놓고 넷이 건배를 하니 진아가 토라진 표정을 지어 다시 한 번 웃음이 돈다. 그 웃음을 한 아름 가슴에 안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새벽공기가 우리를 맞는다.

"선생님, 반창회 때 다른 아이들이랑 꼭 뵈어요."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우리 선생님 새해엔 살도 좀 찌시구요. 알았죠?"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어서 들어가세요."
"그래 너희들도 건강하거라. 잘 들어가고."

택시를 태워 보내기 전에 아이들과 아쉬움 반 흐뭇함 반으로 인사를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한참 있으려니 금방 문자가 온다.

"선생님~ 오늘 만나 뵈서 정말 좋았어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담에 학교 가서 연락드릴게요. ^^"
"선생님 오늘 만나서 참 좋았어요. 조심히 들어가시구요. 항상 건강하세요!! ^ ^"

아이들에게 문자 답장을 해주며 돌아서는데 '아, 이 맛에 훈장 노릇 하는가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늦게까지 잘나지도 않은 선생 만나기 위해 기다려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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