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처형, 수니파에 '집단적 기억' 될 것

미국, 과거를 잘 다루는 지혜 필요하다

등록 2007.01.01 12:22수정 2007.01.01 13:08
0
원고료로 응원
2006년 12월 30일의 후세인 처형 뉴스는 3년 반 전의 후세인 체포 소식과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체포 당시 후세인의 모습은 한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독재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잠시나마 인간적 연민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 한 국가의 주권을 무시한 강대국의 교만한 행동에 분노하기도 했다.

특히 많은 아랍권 사람들과 무슬림들은 미국이 주도한 이런 행동을 아랍권과 이슬람에 대한 깊은 증오를 표시하는 것으로 해석했었다. 사형장의 후세인 역시 끝까지 저항했지만 초라해서 또 다시 인간적 연민을 자아내게 했고, 한 나라의 주권 행사와 이슬람 종교 의식을 무례하게 외면한 사형 강행은 아랍권과 많은 무슬림들에게 다시 서방과의 종교적, 문화적 골을 깊게 느끼게 만드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후세인 처형이 체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라크인들, 특히 수니파에게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매일 수 명에서 수십 명까지 소중한 생명들이 이라크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 되었다. 시체들이 나뒹굴고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울음과 고함이 섞인 괴성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소리가 되었다.

사실 최근 몇 달 동안 민간인, 군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2007년에는 이라크에서 더 이상 살육이 없기를 전 세계가 바라겠지만 후세인 사형으로 그런 희망은 확실히 우리에게서 더 멀어져 버린 것 같다.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BRI@부시는 2006년이 가기 전에 후세인을 세상에서 없애 이라크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마치 한 해가 끝날 때 지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에 대한 다짐들을 하듯이 과거는 보내고 2007년에는 이라크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리라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격한 저항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추가 파병으로 일단 사태를 진압하고, 이라크가 치안유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그런 다음 정권을 이라크에 이양한 후 군대를 철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대충 알려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청사진이다.

그러나 이번 후세인 사형으로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더욱 더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 힘들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시의 세계관은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이다. 그의 말대로 "후세인 처형이 당장 이라크에서 폭력이 종식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라크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인 것이다. 미국이나 부시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다소 좀 무리하더라도 과거는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력 분쟁에서 근본적인 요인은 항상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과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계획도 같이 세워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는 역사적인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이해가 뒤섞인 '집단적 기억'을 말한다. 그중 어떤 것들은 상대에 대한 편견이나 과장되고 왜곡된 해석까지도 포함한다. 그런데 점점 더 종파 간 집단 간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를 조심스럽게 다루어도 시원찮을 형국에 부시는 잊을 수 없는 '과거'를 하나 더 추가시킨 것이다.

인도 출신 심리학자인 카카르(Kakar)는 인도 내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을 다룬 그의 책 <폭력의 색>(The colors of violence)에서 폭력의 기폭제가 되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적 기억에 의지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가장 나쁜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 공유하면서 분노를 키운다. 검증되지 않은 과장된 이야기나 문화적 편견들도 집단적 기억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분노를 다지는 데 한몫 한다.

평화갈등연구학 분야의 두드러진 학자이자 국제분쟁 조정자 중 한 사람인 레더라크(Lederach)는 무력 분쟁 종식과 함께 10년, 20년 후 미래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움은 물론, 지속적인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10년, 30년, 100년 전 과거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에 의하면, 집단적 기억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의해 심각하게 유린당한 사건으로 과거에 일어났지만 세대를 초월해 전해져 현재의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집단적 기억에 의지해 한 집단은 과거에 자신들을 유린했던 집단에 대한 보복이나 폭력을 정당화시키게 된다.

동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많은 무력 분쟁들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이러한 집단적 기억이었고 이것이 무자비한 폭력과 살육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다. 물론 이런 집단적 기억은 아주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니고 유고 내전과 르완다에서의 대량 학살 같은 최근의 충격적인 사건들도 포함한다. 이런 집단적 기억들은 사법적 처리와 화해 노력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언제든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게 된다.

부시는 많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특히 수니파에게 잊을 수 없는, 그리고 대대손손 이어질 새로운 집단적 기억을 선사한 셈이다. 과거 독재자였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후세인은 종파간 분쟁이 가속되고 있는 이라크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진 수니파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제 사형이 그를 순교자로 만들어 줌으로써 최절정의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수니파 무장 세력들은 자신들의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후세인 사형 사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후세인이 집단 학살로 시아파와 쿠르드인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 주었고 이젠 부시가 상황이 공평해질 수 있도록 수니파에게 하나의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라크에서 종족 간, 집단 간 무력 분쟁이 격화되고 각 집단이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벌써 일어나고 있는 보복성 공격이 이런 상황을 잘 예견해 준다. 결국 미국은 무력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먼 과거는 물론 가까운 과거에 근거한 이라크 집단들의 집단적 기억을 잘 다스려야 하는 형국에 분쟁의 씨앗을 하나 더 심어 놓은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공격을 시작했을 때 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이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발을 들여 놓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런 예상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2006년을 마무리하면서 미국이 저지른 또 하나의 정책 실패로 세계는 2007년에도 많은 이라크인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라크에서 죽어갈 것이란 끔찍한 예상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