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마르 무크타르'와 '사담 후세인'

제 2의 후세인 키우는 미국

등록 2007.01.01 13:47수정 2007.0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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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을 표방한 인류최악의 전쟁- 십자군 원정

@BRI@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사형이 전격 집행되었다는 보도는 불과 며칠 전 성탄절 미사를 통해서 "전 세계에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한다"고 했던 교황의 축복이 얼마나 허황된 미사여구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후세인의 사형 집행에 교황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굳이 후세인의 사형 집행에 교황의 성탄 미사 발언을 연관 시키는 이유는 후세인 처형을 바라보는 이슬람 세계의 시각이 이 사건을 단순히 한 독재자를 처형하는 의미가 아닌 기독교 세계의 이슬람 침공 즉 십자군 전쟁의 연장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은 '성지수복'이라는 종교 명분을 기치로 시작되었지만 십자군의 봉기를 촉구한 교황이나 전쟁에 참가한 기사나 제후들의 생각은 모두 달랐다. 그들이 전쟁의 기치로 내세운 '성지수복'은 전쟁에서 앞장서 피 흘리며 죽어갈 농민군이나 일부 기사의 충성심을 제고하기 위한 전쟁 명분의 조작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결과 11세기 이후 무려 열두 차례 이상에 걸쳐 단행된 전쟁에서 신의 정의를 구현한다던 십자군은 약탈과 도시파괴 그리고 인종청소를 위한 학살 등 어떤 군대도 쉽게 저지를 수 없는 끔찍한 만행을 조금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저지르고 말았다.

사막의 라이온 '요마르 무크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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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막의 라이온' 포스터 ⓒ 영화포스터

그 후로 천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기독교 세계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침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세기 초 소위 열강국가의 제국주의 열풍은 기독교 세계의 이슬람 침공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이집트를 점령했고 프랑스는 튀니지를 점령했다.

1910년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침공했지만 압도적인 화력을 갖추었음에도 베드윈 족의 저항에 의해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진다. 베드윈 족이 무솔리니의 침공에 맞서 무려 19년을 버틴 데에는 '요마르 무크타르'라는 탁월한 전술가가 있었다.

영화 '사막의 라이온'은 이탈리아 군의 침공에 맞서 싸운 요마르 무크타르의 투쟁과 죽음을 실화로 담았다. 이탈리아의 명분 없는 리비아 침공은 리비아 주민을 격분시켰고, 학생을 가르치던 교사를 사막의 전술가이며 투사로 탈바꿈 시켰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군대로 말을 타고 달리는 저항군을 제압하지 못한 무솔리니 군은 사막 수백 킬로에 걸쳐 철조망을 치고 수많은 베드윈 족의 생명을 미끼로 '무크타르'를 휴전 협상 장소에 불러내는데 성공한다. 이 협상은 물론 이탈리아의 속임수였다. 결국 무크타르는 체포 되었고 자신들의 동족이 바라보는 곳에서 교수형을 당한다.

제2, 제3의 후세인을 키우는 미국

교사의 신분에서 외세의 침략에 분연히 맞서 투사가 되어 자신의 백성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해 동포의 지지와 존경을 받아온 무크타르와, 이란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중동의 맹주를 꿈꾼 후세인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미국은 이라크가 '알 카에다'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대량 살상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고 호언했다. 미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라크 국민을 후세인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지 4년이 지나도록 이라크가 '알 카에다'의 배후라는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으며, 다량 보유하고 있다던 대량살상무기는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이라크 주민을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호언했지만 종전 이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내세운 모든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후세인의 처형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후세인의 처형과 처형장면 공개는 이슬람 세계의 기독교 세계에 대한 증오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독재자였던 후세인은 처형당함으로서 순교자가 되었고 그를 순교자로 여기는 모슬램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저항은 계속 될 것이다.

테러 외에는 별 다른 저항수단이 없는 그들인 만큼 극렬한 테러를 자행할 것은 분명 예상된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무리수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폭력은 늘 더 큰 폭력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무크타르의 교수형을 목격한 소년이 그의 안경을 주워들며 투사의 전의를 다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후세인의 처형을 지켜본 수많은 모슬램들이 제 2, 제 3의 후세인이 되기 위해 결의를 다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 끝없는 증오의 악순환에 깊이 빠져들어 무고한 피를 흘리기 전에 이라크에 파병한 우리 젊은이들을 빨리 불러들여야 할 텐데 정말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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